지난 9월 14일 새벽 4시경에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있는 아람코의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석유 단지에 여러 대의 드론이 날아와서 자폭 테러를 감행했다. 그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산업의 핵심 유전인 두 곳이 당분간 가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드론 공격의 배후에 대해서 미국이 이란을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예멘의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있는 후티 반군이 자기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티 반군이 예멘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드론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이란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후티 반군과 이란 정부가 연합하여 동일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한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역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영토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아부하 국립공원이 있다. 그곳은 타이프에서 시작되는 알 히자즈 산맥의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3,000m의 고산 지대다. 그 지역은 열사의 나라답지 않게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아부하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공원에는 향나무 냄새가 가득한 숲속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토담집들이 있다. 건축 양식이 유네스코가 문화재로 지정한 Old Sana의 흙벽돌집과 유사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시조인 Abdul Aziz Ibn Saud가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을 정복(1930)하기 전에는 그 지역이 예멘의 영토였다. 지금도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예멘인은 빼앗긴 땅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걸프전 당시(1990) 예멘 정부가 영토 문제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며 사우디아라비아에 반기를 들었었다.

       둘째, 정치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정부를 도와서 반군을 소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멘은 1839년에 영국의 속국이 되었다가 1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이 북예멘을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지배하에 두게 되므로 분단이 시작되었다. 독립된 북예멘에서는 군부가 쿠테타로(1962)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부를 수립했으나, 왕정을 수호하던 자들이 저항을 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때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왕당파를 지원하여 수도 사나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남예멘이 1967에 독립을 한 후 남북 예멘의 지도자들이 모여 통일을 논의하였고, 1990년에 통일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예멘 지도자 알리 살림 알베이드가 권력 분배 문제로 불복하므로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예멘 북부 산악지역에 거주하던 후세인 알 후티가 1994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시아파의 무장단체인 후티(Houthi)를 조직했다. 그 후 후티 반군은 2014년 9월에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2015년 1월에 대통령궁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맹주로 하는 순니파 아랍 연합군이 예멘의 후티 반군 소탕에 참전하게 되었다. 셋째, 종교적으로 뿌리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순니파와 시아파의 반목은 4대 칼리프였던 알리가 AD661년에 급진파 무슬림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순니파는 무함마드의 혈통과 관계없이 이슬람 원로들이 선출한 칼리프를 인정하였으나,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며 사위인 알리와 그의 자손만을 칼리프로 인정하였다.

       두 종파가 깊은 원한을 갖게 된 것은 AD680년 10월에 알리의 둘째 아들 후세인이 시아파의 3대 칼리프로 취임하기 위해 72명의 추종자를 대동하고 이라크로 가다가 카르발라에서 순니파 칼리프 야지드 1세가 보낸 군대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와하비야 운동을 추구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왕 무함마드 이븐사우드가 카르발라를 점령한 후 2000여 명의 주민을 처형하고 이맘 후세인의 묘와 성소를 파괴하므로 순니파와 시아파의 적대감이 더욱 심화되었다. 필자는 이슬람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첫째, 전쟁은 집단 이기심의 발로라는 사실이다. 나인홀드 리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개인은 선한데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사회는 악하다고 했다. 사실 전쟁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인 정부와 국가가 기득권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영토 확장, 자원 확보,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야망 때문에 전쟁을 선호한다.  둘째, 전쟁은 한 집단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 미국의 심리학자 월리엄 제임스는 세계에서 전쟁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전쟁이 가진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단을 단결시키며 대립 구도를 강화 시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후티 반군을 공격하면서 아랍 순니파 국가들과 결속을 다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셋째, 용서가 없는 종교는 사교(詐巧) 집단일 뿐이다.  어느 종교이든 종파는 있기 마련이다. 데이비드 렌스베르거(David Rensberger)는 이것을 섹트(Sect)라는 단어로 규정하였다. 섹트는 일반적으로 동일 종교 집단 내의 다른 교파에 대해서 혹은 일반 사회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의 대립 상태에 있는 집단을 말한다. 1세기 교회들도 어느 정도 섹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초기에 크게 다투고 갈라섰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협력했다(갈 2:1). 우리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선교적인 차원에서 알라를 믿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용서 없는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인지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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