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힘이 있습니다. 나를 사용하면 즉시 효과가 나타납니다. 나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혼자서 만날 수도 있고, 둘이나 여럿이 동시에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내 앞에서는 부드러워지고,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하면 담대해지고 여유도 생깁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좋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나를 많이 가져도 절대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많고 어른들에게는 적습니다. 나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웃음’입니다.

웃음을 표현하는 영어단어는 ‘smile’(미소)과‘laughter’(깔깔 웃는 것)가 대표적입니다. 여기 덧붙여‘simper’(거만한 웃음),‘smirk’(능글맞게 웃는 것),‘grin’(싱긋이 웃는 것),‘titter’(은근히 웃는 것),‘snicker’(반쯤 놀라며 웃는 것) 등이 있지만 잘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와는 달리 동양에서의 웃음은 일소(一笑, 한번 웃고 마는 것), 대소(大笑, 입을 딱 벌리고 웃는 것), 실소(失笑,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 목소(目笑, 눈웃음 치는 것), 망소(妄笑, 망령된 웃음), 냉소(冷笑, 차디차게 웃는 것)등 그 종류가 한 둘이 아닙니다. 거기다 홍소(哄笑, 크게 웃는 것), 고소(苦笑, 쓴웃음), 담소(談笑,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 교소(嬌笑, 교만하게 웃는 것), 조소(嘲笑, 비웃음), 가가대소(呵呵大笑, 큰 소리를 치면서 깔깔 웃는 것), 미소(微笑, 빙그레 웃는 것) 까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습니다.

성경에는 웃음(laughter)과 기쁨(gladness)이란 단어가 무려 544회나 등장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기뻐하며 사는 것에 참 관심이 많습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에게“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리보서 4:4)고 강한 명령문을 사용하여 권면했습니다. 마음의 기쁨은 얼굴의 웃음으로 나타나고 표현됩니다. 그리고 웃음은 생각을 초월하는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잠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에 이슬 같으니라.”(잠언19:12) 이 말씀속의 ‘그의 은택’에 대한 공동번역의 해석을 보면 ‘그의 웃는 얼굴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의 웃은 얼굴이 백성들에게 이슬같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임한다는 의미겠지요.

잠언의 또 다른 말씀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17:22) 이 말씀에는 ‘마음의 즐거움’과 ‘심령의 근심’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게 양약이 되는가 하면 뼈를 마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양약은 치유나 건강을 의미합니다. 힘을 상징합니다. 마른 뼈는 건강을 잃고 생명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웃음을 통한 의학적 치료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에서는 웃음을‘정신적 조깅’라고 강조하면서 엔도르핀 치료를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웃음에 대한 연구는 10세기 이슬람 철학자인 아부 하이얀 알-타우히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실상 의학적 효과에 관해서는 최근에야 규명됐습니다. 성경의 기자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 웃음이 의학적 효과가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성경은 웃음의 의학적 효과에 대해 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항상’ ‘다시 말하노니’ 웃어라고 명령했을 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양보다는 동양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웃음’에 대한 용어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속에는 웃음이 참 인색한 것 같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건강하고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건강하려면 늘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심각함과 긴장감 그리고 중압감을 유머 한방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웃음의 감각’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웃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에 보면 “웃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시며...”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레이건 대통령을 그 어떤 전직 대통령보다도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그 이유는 웃음을 사랑하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881년 3월 30일 존 힝클리의 저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긴급 후송되어서도 그는 너무 놀라 사색이 되어 병원으로 달려온 부인 낸시에게 “여보, 내가 머리 숙이는 것을 깜박 잊었구려.”라고 유머 한마디로 아내를 웃게 만들 줄 아는 웃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웃을 일보다 얼굴 찡그리고 살 일이 더 많은 요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 복음의 기쁨이 우리들의 마음에 넘쳐흘러 거룩한 ‘웃음의 전염병’을 퍼트리는 진정한 ‘웃음 치료사’들이 됩시다. “웃은 얼굴은 화살도 비켜간다!”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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