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앙일보 덴버지사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다. ­­한인사회 규모를 고려하면, 주간포커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중앙일보까지 발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도 컸을 뿐 아니라 필자 스스로도 일간 신문을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콜로라도 한인사회에도 미주 한인 언론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 두 일간지는 폐간 직전까지 광고비와 구독료를 받아 챙겼으며, 안내 문구 한 줄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두 일간지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이었다. 일명 ‘먹튀’ 언론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일간 신문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필자는 덴버지사 오픈을 앞두고 더욱 주저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장학금 수여식을 치르면서 그동안 흔들렸던 필자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번 장학생 시상식으로 인해 콜로라도에서 중앙일보에 대한 이미지가 쇄신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리소문 없이 폐간하면서 광고주로부터 돈만 챙겼던 신문사가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는 언론사의 이미지로 탈바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두어 달 전 미주 본사 측으로부터 해피빌리지라는 단체가 미주 중앙일보사를 통해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덴버지사에도 그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크게 기뻐하지 않았지만,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나간 뒤 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신이 났다. 물론 주간포커스 신문을 통해 나간 공고를 보고 중앙일보 장학생에 신청을 한 학생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콜로라도 학생들에게 공짜 돈이 생기는 일이라는 생각에 내심 즐거웠다. 10년을 넘게 주간포커스를 운영하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러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오롯이 장학금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지급한 내역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중앙일보라는 대언론사를 등에 업고 보니 이곳에서 모금활동을 벌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만 불이라는 금액이 선뜻 나온 것이다. 그리고 미주 본사 또한 순수하게 덴버지사를 믿고 그 역할을 할당해 주었다. 그 결과 콜로라도에서는 5명의 장학생에게 2천 불씩을 지급하게 되었다. 한인 인구가 훨씬 많은 시애틀과 달라스와도 같은 수준이어서 덴버 한인사회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심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했는데, 장학금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서류들도 얼마나 정성껏 준비를 해왔는지 폐기하기가 아까워 시상식을 끝낸 지금까지도 필자의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장학금을 신청한 15명의 학생 중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4년 내내 올 A의 성적을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정도니 한인 학생들의 경쟁력은 정말 대단했다. 공부 잘하는 한국 애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기만 했는데,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필자도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있어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기에,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이번에 장학생으로 선정된 학생들은 콜로라도 대학교,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스쿨오브마인즈, 아리조나 대학교, 덴버대학에 진학했다.

      이들 중에는 전교 일등의 성적으로 졸업생 대표로 발탁해 졸업생 연설을 했는가하면, 레터용지가 부족할 정도로 수상 경력을 가득 채운 이도 있었다. 또, 한국말이 능숙해 한국학교에서 봉사하면서 고교시절 내내 한인사회와 연계해 온 기특한 친구도 있었으며, 특출한 학업성적과 자신만의 신념으로 약학과를 지망한 친구도 있었다. 특히 미국인 가정에서 자신의 삶을 당차게 이끌어가고 있는 입양아 친구는 주변 이들로 하여금 더 큰 격려의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지난주 토요일 장학금 수여식에서 만난 이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선택한 학교와 전공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런 당찬 모습으로 인해 주어진 장학금의 의미가 더욱 빛났다. 시상식을 마치고 미국인 부부가 “생후 6개월 때 쉘비를 입양했다. 우리에게 쉘비와 같은 아이를 보내준 것은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조금이나마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이렇게 큰 장학금을 주어서 정말 감사하다 ” 는 소감을 필자에게 전했을 때 장학금을 전달하는 필자로서는 더없이 뿌듯했다.

      그동안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도 봉사단체나 종교기관을 통해 다양한 장학금이 지급되어 왔다. 가장 보편적인 장학금은 대학 입학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이다. 록키마운틴 한인라이온스 클럽은 장학금을 수여하는 일을 30년이나 넘게 이어 오고 있다. 또, 한인기독교회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지도 벌써 7년째가 되었으며, 한인리커협회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워싱턴디씨에서 창립되어 지난 50년간 활동해 온 한미장학재단도 올해부터 덴버지부를 통해 콜로라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여기에 덴버 중앙일보가 한발을 들여놓았다. 이렇게 꾸준하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학 학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한인을 비롯한 대부분 가정에서 장학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신청자 모두에게 장학금을 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비록 이번에 장학생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장학생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했기에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더 많은 기관들을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의 기부 문화가 우선 정착되어야 하며, 이를 실행할 정당한 단체도 필요하다. 이번에는 중앙일보를 통해 장학금이 지원되었지만, 미래를 위해서 콜로라도 한인사회가 독자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되길 바란다. 나아가 굳이 장학금 대상자를 대학 입학예정자 혹은 대학생으로 제한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않고도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청년들을 후원하는 또다른 개념의 장학금 제도를 미주 한인사회 최초로 콜로라도에서 실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장학금 신청 시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성적증명서가 장학생 선정에 당락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다소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장학 제도 또한  보편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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