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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에 대한 오해
2019년 08월 14일 (수) 08:06:56 김현주 편집국장 hjkim@focuscolorado.net
      백투스쿨 시즌이 돌아왔다. 필자의 두 아들도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지난 월요일에 개학을 했다. 아침밥에 도시락, 간식까지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필자는 늦게 일어난 녀석들 때문에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때 큰아들이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서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깜짝 놀란 필자는 학교 가면서 슬리퍼를 신고 가면 어떻게 하냐며 평소보다 더 화를 냈다. 이와 동시에 작은아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또 화가 난 필자는 공부하러 학교에 가면서 왜 모자를 쓰고 가냐고 다시 언성을 높였다. 두 아들은 엄마의 이런 역정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큰아들의 대답은 운동화는 가방에 있고, 교내에서는 다들 슬리퍼를 신고 편안하게 다닌다는 것이었다. 작은 아들은 그 모자를 쓰면 본인이 가장 멋져 보여서 중학교 입학 첫날이라 나름 외모에 신경을 쓴 것이고, 교실에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옥신각신 끝에 결국 큰아들은 운동화를 신고, 둘째는 모자를 벗고 등굣길에 올랐다. 이렇게 개학날 아침의 전쟁은 엄마의 고성에 눌려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필자가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는 또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또래 아이들 중에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슬리퍼를 신고, 패션모자를 쓴 아이들이 제법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복장단정’이었다. 등교할 때마다 교문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선도부 선배들이 손톱 청결, 머리길이, 치마길이를 검사했다. 그래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모자도 교실에서 쓰고 있으면 야단을 맞았다. 즉, 슬리퍼와 모자는 학교내에서는 금기(禁忌)시된 복장 상태였다. 이렇게 어린시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갖가지 제약들은 지금까지도 필자 인생의 금기사항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이 간직된 나만의 금기를 깨려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의견을 달리하곤 한다. 내 친구의 집은 유독 남녀차별이 심했다. 나이 어린 남동생은 아버지와 할머니와 밥상을 같이 했고,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는 방문 옆에 따로 차려진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간 남동생은 형광등이 달린 번듯한 책상에서 숙제를 했지만, 그녀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여전히 동그란 허드레 밥상을 책상으로 사용했다. 친구는 이런 지겨운 차별이 싫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낙방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대학 4년을 꼬박 할머니의 옆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소망은 대학졸업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친구는 외무고시를 쳤고 집을 떠나 서울로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취직하러 가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한사코 앞길을 막는 발언을 해댔다.

      딸년이 잘 되면 아들 앞길에 갈 운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친구는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짐을 챙겼고, 서울에서 1년의 공무원 생활을 하더니 지긋지긋한 집안의 차별 대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며 아예 해외 공무원 생활을 자청했고 지금까지도 해외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녀는 현재 한국 집 생활비의 80퍼센트를 매달 송금해줄 정도로 성공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7, 80년대만 해도 여자들에게 적용되는 금기는 너무도 많았다. 여자는 문턱에 걸터앉으면 안 된다,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 밥상 모서리에 앉으면 안 된다, 제사상 주변에는 얼씬도 하면 안 된다, 다리는 모아서 앉아야 하며, 치마길이는 종아리 정도가 적당하며, 웃을 때는 입을 가려야 하며, 배움의 가방끈이 길면 팔자만 세진다고 했다. 심지어 새벽 자율학습시간에 늦어 택시를 잡아도 안경 낀 여자애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며 택시운전사는 대놓고 싫어했다. 여성에게 뿐 아니라, 밤에 휘파람을 불면 안 된다, 시험치는 날에는 미역국은 먹지 마라 등은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진 또 다른 터부들이었다. 이런 금기 사항들을 미국 친구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화 속에서 그 어떤 공통적인 유대감을 찾지 못한 그는 우리나라를 정서가 전혀 다른, 미개국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아주 오래전 한국의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아무리 오래전이라고 해도 한 때 그러한 정신세계를 가졌던 민족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십 년 사이에 너무도 많은 것이 변했다. 집안에 문턱은 없어진 지 오래여서 우리가 걸터앉을 곳은 사라졌고, 식탁은 널찍해져 모서리에 앉을 이유가 없어졌으며, 제사를 안 지내는 가정도 많아졌고, 더러 지내는 가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핵가족화되면서 함께 제를 지낼 남성의 수가 줄어들어 며느리와 딸도 자연스레 합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혹은 라식 수술을 한 여성들이 늘어나 안경 낀 여자 운운하는 고리타분한 아저씨들도 세월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갔다. 대한민국의 국회에도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등장했고,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의 위원을 위촉하는 지침서에도 여성 30%를 요구할 정도로 세상은 달라졌다. 금기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 해석도, 시대적 진리도, 대중적 속담도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 않는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했던가, 하지만 요즘은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관절염으로 고생할 것이고, 매우 쉬운 일을 뜻하는 ‘누워서 떡 먹기’는 목구멍이 막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조강지처를 내치면 큰 일 난다는 옛 말씀 또한, 절반 이상이 재혼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리 팍팍 와 닿지 않는 문구들이 됐다.

      그 유명한 싸움의 정법서인 ‘손자병법’ 에 나오는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보다 상대의 허만을 찾아야 하며,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해져야 한다는 가르침은 오히려 현대에서는 비겁의 철학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 남자가 가정 일을 도맡아 할 수도 있으며, 남성이 여성 대통령을 받들고,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에게 요구되어진 칠거지악은 현대여성들에게 오히려 솔직함의 매력으로, 동시대에서 졸작으로 천대받았던 금서나 작품들은 지금은 명작으로 바뀌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학교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두 아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개학 첫날부터 괜히 슬리퍼와 모자로 트집 잡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인데 말이다. 나의 오래된 금기 리스트에 아이들을 대입한 것 같아 하루종일 마음이 쓰였다. 이렇다 보니 금기는 자신의 마음 속에 붙잡아 둔 케케묵은 고집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결혼이나 종교, 국가간의 절대적인 금기사항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객관성 없는 사적(私的)인 금기들로 인해 인생 역전의 기회를 놓친 적은 없는지, 그리고 주변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없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곧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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