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에 수 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때마다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하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몇 개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문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아주머니가 신문의 벼룩시장 코너에 구인광고를 부탁하는 전화였다.“포커스죠? 구인광고 공짜죠?”로 시작했다. 내용은 대 여섯 줄 정도의 지면을 할애해야 할 정도의 긴 내용이었다. 그러더니“내가 말한 것 다시 읽어봐”라고 하길래 읽어주었고 그 아주머니는“이름이 뭐야?”라면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고, 첫마디를 제외하고는 반 말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이름까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통화 내내 들리는 음성도 상대방을 하대하는 딱딱한 목소리 톤이었다.

신문의 벼룩 시장 코너는 무료란으로 한인사회를 위해 신문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는 한인 동포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이긴 하다. 하지만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자신은 베풀지 않는 이기적이고 건방진 심보를 왜 다른 사람은 당연하게 받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공짜라서 그런가 보다. 한국 사람들은 물건 가격이 싸면 일단 제고나 하자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다가 같은 종류의 물건에 비싼 가격 딱지를 붙여 놓으면 더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비싸고 부담스러워야만이 조심스럽게 대하고, 구입한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굽실대고, 없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한국인의 숨은 근성과 일맥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신문사입니까”라는 확인도 없이 다짜고짜“표지에 나온 스포츠 기사 어디에 있어”라면서 반말을 해댄 사람이 있었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다그치면서“어디에 있냐고?”라고 다시 한번 말을 잘라먹었다. 어이가 없어“지금 어디서 반말을 하십니까”하고 정색해서 말을 하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이뿐 아니라 자신들이 필요해서 하는 광고를 문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문사를 먹여 살리는 대단한 사람인양 신문사에서 온갖 예의를 갖춰 줄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선생님, 사장님… 이라고 쩔쩔 매달려 달라는 분위기이다. 또, 가끔 자신의 소견과 다른 기사가 게재될 때면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단체장이 말이다. 자칫 언론사를 핫바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경고문을 보내는 분위기가 될까 우려되어 여기서는 단지 전화하는 예절이 어긋났다는 것으로만 마무리를 짓고 싶다. 더구나 이런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 때문에 예의 바른 다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휴대전화도 일반화 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반응이 너무나 빠르다.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간접 통화의 고통은 간접 흡연보다 짜증스러워서 정신건강엔 더 해롭다. 갑자기 몇 년 전 워싱턴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난다.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큰 소리로 휴대폰 통화를 하다 한 여자가 체포된 일이 있었다. 이 여성은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동안 휴대폰으로 약혼자에게 욕설을 퍼붓다가“목소리를 낮추라”는 경찰의 제지를 받았지만 이 여자는“어떻게 통화를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대들었고, 경찰은 그녀를 바닥에 넘어뜨려 수갑을 채웠다. 당시 이 여자는 임신 5개월의 몸으로 거칠게 체포당하고도 여론의 동정을 별로 얻지 못했다. 하물며 당시 워싱턴 포스트지 여기자가 이 사건을 소재로 쓴 칼럼은 오히려 고소하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경찰이 이 여자에게 내린 혐의는‘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였다. 이와 맞물려 몇 년 전 일본서 열린 미디어 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사회적 이동전화기’가 생각난다. 이 휴대폰은 필요이상으로 큰 소리로 통화를 할 경우 뺨에 전기 충격을 주도록 설계됐다. 앞으로 흡연 구역처럼 따로 통화구역이 정해질지도 모른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이 이런 희극적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화통화는 얼굴 없는 만남이다. 얼굴 표정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기 쉽다. 좋은 말만 해도 사람들의 입을 돌아 돌아 들으면 나쁜 말로 변해 있을 때가 많은데, 전화하면서 괜한 오해를 부르지 말자. 언짢은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서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남에게 부탁하는 내용이면 더욱 정중한 어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에서 텔레 마케팅으로 성공을 이끄는 기업이 많은 이유도 이러한 전화 커뮤니케이션의 예절을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친절은 베푼 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