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참 많이 나오는 말이‘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죄와 세상과 짝하며 살기에 바빠 하나님을 등지고 한없이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인생들을 향한 안타까운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돌아오라!’이 부르심 속에는 하나님의 애타는 기다림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맞아주실 준비를 다 하시고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집 나간 둘째 아들,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돌아오기만 하면 두 팔 벌려‘웰컴’해 주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또다시 돌아갈 용기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았던 약 350년간의 사사시대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사무엘상 7:3)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네 단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전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전심으로’(all your hearts)는 온 마음을 다하여 회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돌아오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몸은 돌아온 것 같은데 마음은 그냥 제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구약 요엘서에 보면 마지못해 회개하는척 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서 2:12-13) 진정한 돌아옴의 출발은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우상을 제거하고’돌아가는 것입니다.‘우상’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도록 우리들의 발목을 잡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버려야 할 우상이 있었습니까? 예,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입니다. 여기서‘이방 신들’은‘바알’(사무엘상7:4)입니다.‘바알’은‘풍요의 남신’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만 목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섬기는 신입니다.‘아스다롯’은‘미의 여신’입니다. 몸짱 얼짱으로 육신을 꾸미고 살아가는 데에 만 정신 팔린 사람들이 섬기는 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자마자 이 두 신에게 푹 빠져 져버렸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도 이 두 신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 두 욕망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돌아왔으면‘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라고 할 때‘향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쿤’인데,‘확립하다’‘고정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마치 항구에 정박한 배가 닻을 내려 풍랑에 휩쓸리지 않게 하듯이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참 변화무쌍하고, 믿지 못한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언제 또다시 우상에게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마음이 가면 몸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도 자신을 죽이기 위해 뒤를 쫓는 사울 왕을 피해 굴속에 숨어 있으면서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편 57:7) 여기‘확정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똑같은 ‘쿤’입니다. 다윗은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지속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돌아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종이 주인을 섬기는 행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진정한 돌아옴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을 때 그 열매를 맺습니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몸도 역시 예배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 말고 또 섬기는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면 내 마음과 몸은 예배의 자리를 떠나 그것에게 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므로 돌아옴의 최종적인 자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회개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예배의 자리는 현실적으로 또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닙니까? 진정한 돌아옴은 먼저 마음이 하나님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과 실천이 뒤따릅니다. 진정한 돌아옴은 또다시 죄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내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 진정한 돌아옴의 열매는 맺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맞아주실 준비를 하고 말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기꺼이 용서해 주실 준비를 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돌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그 마음을 외면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라는 가사처럼, 오늘 나는 돌아갈 면목이 없어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공로 의지하고 담대하게 일어나 그분께도 돌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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