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한 미국인이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너희 나라에서 말 죽이는 동영상을 봤냐”라고 대뜸 물었다. 처음에는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그래도 똑같은 질문이었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 :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가 제주도의 경주마들이 도살 당하는 현장을 유튜브에 공개한 것을 봤냐는 말이다. 이 영상은 약 4분 정도의 분량인데, 은퇴한 경주마들이 작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강제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해당 영상은 페타 조사관이 2018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10개월 동안 위장 잠입해 9차례에 걸쳐 촬영되었다. 인부들은 도축장에 도착해 트럭에서 내리길 거부하는 말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내려치고, 몽둥이로 찔러 강제로 도축장으로 밀어 넣는다. 경마장에서 바로 도살장으로 온 것으로 보이는 말도 목격됐다. 그렇다면, 어쩌다 은퇴 경주마들은 도축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을까. 한국마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해마다 전국 경마장 3곳에서 2700마리의 경주마가 경기를 뛴다.

       이 가운데 다치거나 성적이 부진한 말 1600마리가 은퇴한다. 보통 승용마나 번식마 등으로 다시 팔리지만, 수매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수백 마리가 말고기, 마유크림을 만들기 위해 도축된다고 한다. 이 영상을 보면 마음이 아픈 정도를 넘어 쓰리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는 점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서는 안 되며, 도살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스위스 정부는 지난해 동물보호법을 고쳐서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서 요리하는 관행을 금지시켰다. 기절시킨 뒤에 요리를 하라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바닷가재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자는 뜻이 담겼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산 바닷가재를 요리 전 얼음과 함께 두는 것은 불법이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새우·게·가재를 비롯해 문어·낙지·오징어 역시 고통을 느낀다는 과학적 연구결과에 바탕을 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번 페타의 잠입 취재로 인간의 오락을 위해 살던 말들이 도축장 앞에서 구타당하고 무자비하게 끌려가 도살당하는 영상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은 한단계 더 추락했을 것이다. 얼마전 큰아들이 학교에서 상급생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상대 아이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자세한 이유가 알고 싶은 필자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어떤 것이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제서야‘개고기를 먹는 민족’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순간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한국의 소수만이 즐기는 문화가 해외에서는 큰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멍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년 초복이 가까워지면 한국의 광화문에서는 식용 개고기 찬반 집회가 열린다.

      지난해에는 6백여 명 넘게 참가했다. ‘개 도살은 문화가 아닌 악습’ 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 건너편에는 개 사육 농민 단체인 대한육견협회가 개를 가축으로 지정하고, 식품화해야 한다며 맞불집회에 나섰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필자는 보신탕은 개인 취향에 따른 먹거리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식용 개고기 반대 집회를 한다고 해서 개고기를 먹겠다는 사람들이 사라질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신탕을 먹기 원하더라도 집회까지 열어 대대적으로 떠들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해외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회를 열어 시끄러워질수록 영상에 담길 것이 뻔하고 방송과 동시에 해외에 사는 사람들은 진실공방을 떠나 개 먹는 야만인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우리 대한민국은 개 먹는 나라로 유명해져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미지가 한국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우리 2세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니, 어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몇 년 전 미국내 한 공중파 방송에서 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다룬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격동의 시기인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 장면이 나왔는데,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도망가는 시민들과 뒤쫓는 진압군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한국의 모습을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경주마 도축과 개 먹는 사람들의 존재도 같은 맥락이다. 영상에 담겼으니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이 오랫동안 거론될 것이다. 누구나 변명은 한다. 우리는 ‘내가 했던 행동은 나쁜 의도가 아니었으며, 설령 나쁜 결과에 이르렀다고 해도 몰라서 저질렀다’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곤 한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빨리 시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가장 먼저 시정되어야 할 현안은 무엇일까. 한인회, 노인회, 상공인회, 체육회 등의 활성화일까? 아니라고 본다.

      가장 시급한 사안은 노우회관을 본연의 역할로 되돌리는 일이다. 지난 1월, 주간포커스를 고소한 노우회관의 바비김과의 재판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주간포커스는 개인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 차원에서 바비김과 노우회관을 기사로 다루었다. 두 번째, 바비김은 노우회관을 70만불에 팔려고 했고, 그는 10년 전 한인회관을 매각할 때도 비슷한 수법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세 번째, 바비김은 노인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후원금을 받아 만들어놓은 노우회관을 정작 노인들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렌트를 놓아 그 수익을 횡령했다. 이는 엄연한 범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 모든 사안은 한인사회의 ‘공적’문제이다. 한인사회에서 후원금 모아 노우회관을 만들어놨더니, 정작 노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흑인과 히스패닉계 교회에 렌트를 놓아 그 돈으로 자기들끼리 먹고, 나눠 쓰고, 때로는 횡령까지 했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은 느꼈는지 일 년에 두어번 정도 한인사회 행사에 2백불 선의 후원금을 보냈다. 벌어 들인 렌트비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금액을 후원금 명분으로 둔갑시켜 한인사회에 봉사하는 척했지만, 이는 결코 봉사의 형태가 아니다.

     단지 가늘게라도 이름을 유지하기 위한 계략에 불과하다. 이미 검찰에 노우회관 조사를 찬성한다는 한인이 4백여 명을 넘었다.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이처럼 단시간내에, 그리고 간절하게 서명 운동에 동참한 사례는 없었다. 이런 대의를 가벼이 여기는 무엇이 있다면, 이 또한 한인사회 내 공공의 적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다. 주간포커스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사회 부패를 들출 이유가 없다. 언론으로서 한인사회의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 사명감이 바탕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합심해서 지금의 잘못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노우회관의 역사는 앞서 언급된 말 도축과 개 먹는 사람들과 같은 류의 오명으로 남을 게 자명하다. 우리 2세들이 학업을 마치고 자랑스럽게 한인사회에 컴백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수치스러운 역사를 하나씩 하나씩 바로잡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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