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 이전의 사사시대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사무엘상3:1). 한마디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그리고 이상(Vision)이 흔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희귀하니 당연히 그 말씀을 통해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일들(Vision)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가 되어버린 이유를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방식이 곧 말씀 희귀 현상을 일으켰고, 하나님의 이상(Vision)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방식은 한마디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였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21:25). 행동하는 기준이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행했던 이유가 ‘왕이 없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는 이 때까지 다른 주변의 이방 나라들과 같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그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것이 말씀(율법)입니다. 왕은 법(말씀)으로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왕 삼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통치를 거부하니 말씀이 희귀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니‘이상’이 보일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바른 삶이 무엇입니까? 늘 말씀을 내 삶의 기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근거와 원동력이 ‘말씀’이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행동하는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내 생각, 내 경험, 내 주관, 내 감정입니까?

       이제는 하나님 입장에서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사시대에 말씀이 희귀했다는 말은 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지닙니다. 성경을 보면 종종 하나님께서 어떤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화가 나시면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창세기16:16).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을 낳고 무려 13년 동안이나 나타나시지도 않고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99세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17:1).‘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행함’은 말씀을 붙들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그 육신의 아들에 푹 빠져 살던 13년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여로보암 2세 때는 가장 타락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8:11)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한 마디로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말씀의 기갈’로 인해 허덕이는 시대였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고, 세상 향락과 부귀영화를 부리는 삶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린 시대였습니다.

      이후 북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을 치달았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입니까?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마태복음4:4)라고 일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버려 두시는 것’(로마서1:24,26,28)입니다. 말씀으로 책망도 하시지 않고 교훈도 하시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가장 큰 축복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내가 잘못할 때 말씀의 책망을 들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말씀에 귀를 여십시오. 들을 귀가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내 소견대로 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찾아오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사무엘상3:21). 그러므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도 나를 향해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사무엘처럼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3:10)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지는 영적인 암흑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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