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익산으로 가는 리무진버스 시간표를 보았습니다. 창구 직원은 버스를 타지 못할 수도 있으니 타는 곳에서 버스표를 직접 구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짐은 항상 8개였습니다. 부치는 짐 4개와 개인이 들고 타는 가방 4개였습니다. 우리는 카트에 가방들을 실고 리무진버스 정류장으로 달렸습니다. 간신히 공항 리무진버스를 탔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할 틈이 없었습니다. 휴대 전화를 빌려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앞좌석 등받이에 WiFi가 된다는 표지를 보았습니다. WiFi를 연결하고 ‘카톡’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 고속철(KTX)을 탈 기회가 있었는데 고속철 안에서도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간 이유는 장인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에는 장인께서 사용하셨던 여러 가지 의료기구들이 있었습니다. 거의 대여한 기구들이었습니다. 입원하신 후에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침대, 휠체어, 그리고 욕창매트 등을 반납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석션(Suction), 기관지 치료기, 산소호흡기 등도 빌려 쓴다고 합니다. 의료기구들은 대부분 보험 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병원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광판에 제가 탈 버스의 도착 시간이 나와 있었습니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벤치에 앉았습니다. 겨울 벤치가 따뜻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이 벤치의 지붕에 태양전지 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미국 신학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몇몇 목사님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가면 저를 초대하곤 합니다. 서울역의 한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다 모일 때까지 Coffee House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중앙에 플라스틱 접시처럼 보이는 것이 덮여있었습니다. 눌러보았더니 쑥 올라왔습니다. 올라온 원통 옆을 보니 충전 콘센트(Concentric Plug)들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서울역에서 사당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사당역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호매실’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습니다. 한 사람이 교통카드를 카드인식기에 대고 버스에 오르면 밖에 있는 전광판에 남은 좌석수가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 버스를 타면서 교통카드를 인식기에 대었더니 작은 금액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궁금해서 동행한 분에게 물었더니 환승했기 때문에 장거리 추가 요금만 받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시외버스 안에 전광판이 있었습니다.

        이번 정차할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을 오디오로 알려줄 뿐만 아니라 전광판의 비디오로 알려주었습니다. 정거장을 안내하는 중간 중간에 상품광고를 했습니다. 익산의 택시 기본요금은 2,800원입니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잔돈을 거슬러 주는데 번거로웠습니다. '교통카드(T-Card)'로 택시요금을 결제하니 아주 편했습니다.
장인께서 입원하신 병원을 뒤로하고 선교지 에콰도르로 향했습니다. 오늘(2월 10일, 주일) 오후에 대학과정 수업만 마치면 이번 사역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새벽 2시에 장인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장례를 목사 사위가 집례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알아봤습니다. 주일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 편이 가장 빨랐습니다.

       에콰도르 키토에서 밤 비행기를 탔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덴버에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급히 장례예배 순서 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메일로 받은 예배순서 지를 한국에서 수정하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다시 수정하여 한국으로 보내 출력하기로 했습니다. 급히 여행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그제(2월 9일, 토) 친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손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었습니다. 병원이 다운타운에 있었습니다. 교통체증으로 가는 길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공항으로 가야 하나 손자를 보고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손자를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비행기 출발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밤에 도착했습니다. 밤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인천 공항에 2월 13일(수) 아침 6시 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비행기에서 3일 밤을 보낸 셈입니다. 마침 이종미 찬양선교사님이 아들과 함께 공항에 마중 나오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의 차로 오전 7시에 공항을 출발하여 익산 장례시장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이 다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장례예배가 끝난 후 물어보니 남자들의 상복은 빌려 입은 후 돌려주는 양복이고, 여자들의 상복은 일회용을 구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상복은 한 벌에 2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급히 평상복 위에 목사가운을 입고 입관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눈이 쓰려 글씨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입관예배를 마치고 급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곧바로 천국환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종미 선교사님께서 입관예배와 천국환송예배 시 조가를 불러주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오후에 교도소 사역이 있으셔서 마치자마자 출발하셨습니다. 장지에서 천국입성예배까지 마쳤습니다. 비행기에서 3일 밤을 보내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세상이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다들 변화에 뒤처지면 탈락된다는 불안감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영원한 가치인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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