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둘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셋째, 꼭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먼저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므로 거미와 같은 인생이며, 두 번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남에게 피해도 유익도 안 주는 자기 위주의 사람이므로 개미와 같은 인생이요, 세 번째 꼭 있어야 할 사람은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므로 벌과 같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6월 초에 홍해 심포지엄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벌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임마누엘교회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분(이건주 장로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33년(198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그해 여름에 저는 리야드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부터 하나의 통지문을 받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종교성이 외국인 교회 지도자들을 사찰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직들의 권유로 종교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오하시스 계곡에 자리 잡고 있던 M 건설현장 숙소로 피신을 하게 되었고, 이건주 소장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은신을 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소장님에게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종교경찰에 의해 체포가 되고 구금이 된다면 은신처를 제공한 소장님과 회사가 책임 추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저를 10일 동안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건주 장로님을 벌과 같은 인생으로 소개하는 것은 제가 그분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분은 말기 암과 투병을 하면서도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8년 동계 올림픽이 한국에서 진행될 때에 외국인 선수들과 관광객의 안내를 맡아서 봉사를 하셨고, 지금도 중동 지역 사람들과 교제를 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변화와 성장을 경험합니다. 칼융은 이 만남에 대해 “두 사람의 만남은 두 가지 화학 물질의 접촉과 같다. 그 접촉 속에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모와의 만남을 통해 생명과 DNA를 물려받고, 스승을 통해 지성과 인성을 배우며, 친구와 배우자를 통해 우정과 사랑을 배우고, 그리고 세상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만남을 통해 성공과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만남을 통해 실패와 슬픔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만남은 나(너)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섭리적이며 기적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보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모든 만남을 우연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모든 만남을 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기적은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고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울(큰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투철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며, 종교적 특권을 누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리 강했고, 율법을 범하는 사람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엄격한 율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을 체험한 후에 변화가 되었습니다(행9:3-19). 그 후 이름을 바울(작은자)로 개명을 하였고, 전 인류를 선택받은 이스라엘과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구분하던 그가 모든 사람은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롬3:10). 그래서 어거스틴은 사울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차라리 죄인 되어서 겸손한 것이 낫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면서 꿀벌과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시119:103)을 전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달콤한 기복 신앙이나 번영 신학이 아니라 철저하게 복음적이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울과 같이 율법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무슬림들입니다. 저는 이슬람 세계에서 생활할 때에 그들의 종교적 열심에 도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들과 같이 매일 다섯 번씩 기도를 하고, 일 년에 한 달을 금식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슬람을 깊이 연구하면서 그들의 열심이 사울의 종교성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행위 구원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은혜 구원을 믿고 있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벌과 같이, 바울과 같이 섬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슬람은 경계하되 무슬림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한 대로 “구체적인 생활속에서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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