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이 만났더니 전 세계가 들썩거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주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했다. 이를 두고 전 세계 언론은‘2차 미북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의 방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향하는 길에 기자들에게“양국이 북미정상회담 장소를 협상하고 있다”면서“2차 미북정상회담 일정을 머지않아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 지 이틀만에 이뤄졌다. 지난해 북·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만난 뒤 김정은이 달라졌다”고 공개 경고하자 한동안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면서 다시 밀월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는 양쪽 모두에서는 두 정상이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 나갈 것이며,‘중국은 북한의 믿음직한 후방'이라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북·중 수교 70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정은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일정 직전에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했다. 미북정상회담에 앞서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만남이다. 이번 방문에서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확실한 윗선의 대우를 했다. 중국 CCTV가 북중 정상회담을 방영하면서 김정은이 시진핑의 발언을 받아 적는 모습을 일부러 서너 차례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마치 중국 주석의 훈시를 지방관이 메모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북에서 신의 존재와 다름없는 김정은이 누구 말을 받아 적는 장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중국 CCTV는 김정은이 시 주석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는데, 그 환대와 관심 부분을 '관화이(關懷)'라고 표현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이는 관심과 배려에 감사했다는 뜻이다. 즉 김정은을 슬쩍 '아랫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더구나 이번 방중은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대남·외교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대남·대미 사업을 총괄하는 김영철 당 통일전선 담당 부위원장과 북한의 외교 사령탑인 리수용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등이 동행했다. 특히 김영철은 이번 방중 수행단 명단에서 첫 번째로 호명돼 주목받고 있다. 작년 5월 2차 방중 때는 리수용에 이어 두 번째였다. 김영철이 이번에 처음으로 리수용보다 먼저 호명된 것은 김영철의 북한 내 위상과 역할이 높아졌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미국이 기피하는 김영철을 첫 번째로 앞세운 부분이다. 이는 미국의 제재·압박에 북중 공조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북중이 가까워질수록 한미동맹도 탄탄해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대북 제재를 감시하기 위해 해상 초계기와 군함을 일본에 보내기로 했다. 북핵과 함께 중국 팽창을 막으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국은 애매한 처지에 놓여 김정은과 트럼프만 쳐다보고 있다. 6·25 이후 한국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안보를 지켜왔다. 그런데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트럼프와 김정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각각 친서를 교환하는 동안 문 대통령과 트럼프가 전화 한 통 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현실은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말을 쓰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에게까지 소외당하는 대한민국은 '시 황제' 소리를 듣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어떤 대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역사관을 피력한 사람이다. 중국은 1861년 외교 전담 부서를 만들기 전까지 주변국과 동등한 관계로 마주 앉은 적이 없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할 때 한반도가 어떤 운명을 겪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중국은 주한 대사에 하급직을 보내고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를 두 차례나 테이블 하석에 앉혔다. 그 자리는 홍콩 행정장관이나 지방관이 주석에게 보고하는 자리 배치였다. 그 무렵 방중한 일본·베트남·라오스 특사는 시 주석과 대등하게 나란히 앉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방중한 문 대통령까지 노골적으로 홀대받았다. 길들이려는 시도가 명백한데도 우리 정부는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사드(THADD) 배치에 대하여 중국 정부가 격렬하게 반발하자, 중국 정부에 미국의 MD체계, 사드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등의 세가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즉 3불(不)로 주권까지 양보하려 했다. 그런데도 한국과 북한 모두 제 발로 중국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중국 TV가 시진핑 앞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어떤 모습으로 방영할 지 염려스럽다.

     1차 미북정상회담의 결과는 어땠는가. 1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김정은에게 안겼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미국 영향력을 줄이려는 중국도 원하던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도 돈 문제로 보는 인물이다. '동맹'을 중시하던 매티스 국방장관도 물러났다. 그 틈을 북중이 놓칠 리 없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북핵과 대중 무역 협상에서 성과를 얻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한국 안보를 재앙에 빠뜨릴 엉뚱한 결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동조가 소원해지고 동시에 중국의 입김이 커질 경우 북한은 중국을 등에 업고서 터무니없는 배짱을 부릴 수 있고, 한반도 문제가 자칫 미중 간 전략적 대결의 협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올해도 자신이 주도하는 정상외교를 꿈꾸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거드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남북 경협은 우리에게 예비된 축복이며 우리 경제에 획기적인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국제제재로 당장 할 수는 없지만’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부터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김정은이 노리는 것은 지난해 초부터 6·12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진 외교 라인일 것이다. 중국의 지원과 한국의 동조를 얻은 상태에서 미국을 상대로 담판 외교에 나서겠다는 태도다. 중국과 한국이 자기편이라는 생각에 기고만장해질 경우 김정은의 외교는 비핵화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한바탕 쇼가 될 수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미국인의 안전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곱씹어 봐야 할 걱정스러운 발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초점이‘완전한 비핵화’에서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로 옮겨가는 징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에 어려움을 겪으면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제거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할지 모른다는 관측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런 불길한 예상이 현실화되면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김정은 정권에 마냥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자칫 방심했다간 조만간 열릴 북미간 2차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트럼프의 돌출 행동을 막으려면 어떻게든 한·미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하자 미국에선 바로 "미국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북핵 폐기를 위한 노력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미국은 북핵 폐기의 유일한 지렛대인 제재를 한국이 기회만 있으면 흔들려 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남북관계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