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의 명분 아래 뉴스에 등장한 인물들 중 드물게 첫인상이 강건하고 소신 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3성 장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었다. 그런 그가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거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지난주 투신자살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거로’라는 유서의 문구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 전 사령관의 죽음으로 인해 야당 정치권은 오랜만에 뜻을 모아 현정권의 특정인 짜맞추기식 수사를 강력 비난하고 있다. 국민들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현 정권을 향해 질타하고 있다.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당시 기무사 내에 '세월호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유가족들의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지난달 초 해당 의혹에 대해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 등을 도모하기 위해 TF를 구성·운영하고 카카오톡 잠금장치 활용까지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유가족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사령관은 지난달 2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 포토라인에 선 그는 “우리 부대 및 부대원들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임무수행을 했다”고 반박했다. 그래도 검찰은 이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영장은 기각됐다. 그로부터 나흘 뒤 그는 오피스텔에서 투신했다. 아들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검찰의 지인 접촉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 전 사령관이 투신한 서울 송파구 문정동 오피스텔 바닥에는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고인에게 감사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놓여져 있다. 검찰은 이 전 사령관이 세월호 유족들에게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사찰을 지시하고 경찰청으로부터 진보 단체 집회 계획을 수집해 재향군인회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기무사가 만든 보고서 대다수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를 차단하라'거나 '사찰 논란이 없도록 무분별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런데 검찰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 짜맞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근 군과 법원 관련 수사 때문에 검찰청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일을 지시한 윗선을 대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하소연한다. 원하는 말을 해 주면 선처하겠다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한다. 특정인을 겨냥한 수사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기존에 알려진 유서 외에도 자신의 심경을 담은 또 다른 유서를 작성해 생전 자신의 측근에게 넘겼다. 그는“오래 전 일이어서 거의 잊고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인 4.19일부터 CIA 등 미국, 캐나다 정보기관 방문을 위해 계획된 공무 출장도 급거 취소하고 구조 활동에 전념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볼 때 이런 마음은 더욱 심해진다”며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기무사가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불법 사찰행위를 계획, 실행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사령관은 기무사 부대원 내에도 세월호 사고 희생자 2명의 유가족이 있었고, 사령관 재임 중 단 한번도 대통령 독대는 물론이고 어떠한 대면보고도 하지 않아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심 갖거나 연루될 필요가 없었던 위치에 있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지만, 전역 이후 복잡한 정치상황과 얽혀 제대로 된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모처럼 여러 비즈니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즈음에 이런 일이 발생해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고,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으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이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중앙고와 육군사관학교 37기 동기동창이어서 친분이 두터운 탓에 생전에도 괜한 오해를 받을까봐 무척 조심했었다. 그리고 그는 군을 사랑하고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던 강직한 군인이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해군 병력 68만명을 투입하고, 1만대 가량의 군 장비를 투입했다. 정말 사심 없이 일을 했는데 이렇게 비춰지고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영장이 기각돼 매우 좋아했으나, 영장 재청구나 주위 사람에 대한 수사가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국군기무사령부의 주요 임무는 군사기밀의 보안 지원, 방첩활동, 군 및 군과 관련된 첩보 수집·처리, 특정범죄 수사 등이다. 특정범죄에는 군인 및 군무원에 대한 형법상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이적의 죄,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죄 및 암호 부정사용죄, 국가보안법 위반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위반죄, 국가보안법 위반자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죄 등이 해당된다.

     민간인에 대해서는 대적 군사기밀 누설죄, 간첩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의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의 안보와 존폐를 위협하는 것들을 긴밀하게 조사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우리 군과 군의 통솔권자인 대통령과의 관계도 당연히 연계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기관의 특성상 현 정권과 협조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응당한 행태일 것이다. 설령 세월호 유가족 사찰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정보 기관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그들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전 기무사령관 두 명의 운명은 참담하다. 한 명은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목숨을 끊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적폐 수사가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압수수색은 수백 차례에 달하고 100명 넘는 사람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장·차관급만 30명 가깝다고 하고, 한 부처 출신 수십 명이 한꺼번에 조사받고 기소되기도 했다.

     성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고,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흘려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인민재판식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몇 년 전 일을 뒤지다 혐의가 나오지 않으면 10년 전 일을 뒤지고, 구속됐다가 풀려나면 또다시 구속하겠다면서 별건 조사가 거듭됐다. 전 정권에서 안보실장을 지낸 사람의 경우엔 이 정권 출범 이후 각기 다른 6가지 사안에 대해 저마다 다른 혐의로 검찰, 감사원, 청와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미 여러 사람이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수사받던 현직 검사가 지난해 11월 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투신 자살했고, 그 며칠 전에는 그 검사와 국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변호사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방산 적폐'로 찍혀 수사받던 기업 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지만, 수사에서 정작 방산 비리는 나오지도 않았다.

     검찰이 과잉수사를 통해 노리는 바는 ‘거물 표적’이다. 검찰은 몇 차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일찌감치 윗선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거론한 바 있다.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의 경우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윗선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진술에 의존하지 않고 물적 증거로 범죄의 실체를 밝히는 게 검찰이 할 일이다. 궁박한 처지에 몰린 피의자를 압박해 필요한 진술만을 얻어내려는 것 자체가 검찰 적폐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미리 결론을 내린 뒤 무리한 수사를 통해 결론을 꿰맞추려 하고 있다. 적폐수사라는 게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조치인데 지금의 세태는 적폐수사로 인해 적폐가 다시 만들어지는 형국이다. 더 이상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그리고 빤히 보이는 짜맞추기식 적페청산도 여기서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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