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멕시코의 국경지역인 티후아나에서 캐러밴(Caravan)의 몇 명이 미국 쪽 국경에 접근했다는 이유로 미군 경비병들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어린 아이들은 기침과 비명을 질러댔고, 국경지대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멕시코의 밀레니오 TV는 캐러밴의 일부가 국경 철책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 미터 거리의 미국 쪽 쇼핑몰에서는 연말 세일시즌을 맞아 수많은 쇼핑객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배고픈 아이들의 비명소리, 가여운 여성들의 기침소리로 전세계는 인도주의적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국민 우선주의가 바탕이 된 합법적 이민 개혁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러밴은 원래 사막을 오가던 상인들을 뜻하던 용어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중앙 아메리카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캐러밴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국경을 향해 걸어온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출신 사람들이다. 난민 중 대부분이 중남미 국가 중 살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온두라스 출신이다. 캐러밴은 지난달 12일 경 온두라스를 출발했을 때만 해도 15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과테말라 들을 거치면서 무려 6천여 명 규모로 늘어났다. 한때는 만 명 정도에 육박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캐러밴 행렬에 합류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이다. 이들은 3,600 킬로미터를 하루에 12시간씩, 45일간 걷고 걸어 미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노숙은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화물차를 잠깐 얻어 타기도 하고, 때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국의 국경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티후아나 보호소에서 샌디에이고 도심까지는 차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이들 앞에는 지나온 것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다. 보호소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국경에는 철조망이 쳐진 10m 높이의 국경 장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또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난민 신청서를 내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고도 힘든 여정을 선택했을까. 답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조국은 부패가 심하고 마약 조직 갱단이 무법천지로 날뛰고 있어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단 하나, 미국의 시민이 되는 것 뿐이었다. 일단 미국 국경까지 가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캐러밴의 목표였다. 거대한 행렬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을 들어가보면 다들 각자 사연이 있고 꿈도 있다.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며 국제 노동자임을, 아이들의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캐러밴은 이렇게 험난한 여정을 택했지만 망명심사라는 더 큰 장벽과 마주섰다. 하루에 100여명 정도 망명신청을 받아주지만 이 또한 형식에 불과할 뿐 아니라 심사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의 형편이 딱하다고 무작정 받아줄 수는 없다. 가난이나 갱단의 폭력을 피하기 위한 상황은 적절한 망명 요건으로 간주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정책 기조로 지지층을 결집했고, 합법적으로 이민 오는 사람들에 대해 불공평하다면서 캐러밴에 대한 입국거부 의사를 정확히 표명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이 미국 국경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그들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고, 캐러밴 안에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필요하다면 군대까지 파견할 의사를 피력하면서 이들이 국경에 도착하기 전부터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또, 지금까지는 망명 신청서를 내면 미국 내에서 대기하고 결과를 기다릴 수 있었지만, 캐러밴에 대해서는 미국 입국 자체를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 행렬을 '침략'에 비유하며 강한 적대감을 보이면서, 캐러번 사태가 3주가 지난 지금 국경에는 중무장한 국경순찰대에다 현역 군인까지 배치되었고, 언제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공식화한 상태다.

     미국은 이처럼 이들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지만 갈 곳이 없는 이주민들 또한, 국경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러다 보니 이들이 머물러 있는 멕시코 접경 도시 티후아나도 곤경에 빠졌다. 정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6천 명의 이주민을 계속 수용하기 어렵고, 현지 주민과의 충돌까지 빚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실제로 국경이 폐쇄되면 접경 관광도시 티후아나는 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티후아나 시장이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도움을 공식 요청했다. 티후아나 시는 캐러밴이 몰려들자 시내 스포츠시설 등을 개방했으나, 많은 이민자들이 머무르기에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수백 명이 화장실 한 곳을 쓰는 등 위생과 임시 거처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지만, 주민을 위해 쓸 재원도 없는 마당에 캐러밴 이민자들을 위해 예산을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온두라스에서 미 국경을 향해 행진을 벌여온 캐러밴은 멕시코를 관통하면서 중간에는 여러 마을에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구성원 숫자가 불어난데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체류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티후아나 시 당국 등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티후아나 시장은 캐러밴 사태에 대응해 멕시코와 맞닿은 미국 남부 국경 일부를 폐쇄할 수도 있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에 대해 "매우 심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티후아나 시에는 미국으로 출퇴근하면서 근무하는 수천 명의 근로자가 있는 데다 티후아나 시 재정이 미국에서 유입되는 관광수입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어 국경 폐쇄가 현실화하면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에는 티후아나 주민들이 캐러밴이 머무는 시설 주변에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이다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시 당국은 캐러밴 지원금으로 하루에 3만달러를 쓰고 있어 곧 시 재정이 바닥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던 중 캐러밴에 참여했던 7백여 명이 이번 주부터 귀국 의사를 밝히고 있다. 보호자 없이 캐러밴 행렬에 참여했던 어린이 25명은 비행기 편으로 본국에 돌아갔다. 살인, 강도, 납치 위협까지 이겨내며 멕시코를 통과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고국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티후아나 보호소의 환경이 열악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정책도 미국 입국 희망을 저버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 폐쇄까지 고려하며, 망명심사가 끝날 때까지 멕시코에 머물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망명신청 신규 접수를 더디게 처리하는 지연책을 쓰면서 수개월 동안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40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던 불법이민자 수가 올 들어 증가세를 보이자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에 지급하는 연간 지원금 5억 달러도 삭감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캐러밴을 막는 데 근본적인 처방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국을 불허하더라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온 그들에게 인도주의적 배려는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 보니 불법이민자 한 명당 체포·기소·추방비용에도 수천 달러가 필요하며, 캐러밴 입국을 막기 위한 국경수비대 5,900여명의 병력이 45일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도 최소 7,2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캐러밴 귀국 지원 프로그램을 위해 미국 국무부 산하 인구· 난민·이민국은 120만 달러의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비용들을 모두 모아 단발적인 지원보다, 그들의 모국 정착을 돕는 지원 프로그램이 오히려 비용 대비 효율적일 수 있다. 지원금이 끊기면 더 많은 캐러밴이 몰려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법적 이민 체계를 지키기 위한 트럼프 정부의 노력, 국민 보호를 위한 캐러밴 입국 금지령은 자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캐러밴 사태는 국가가 국민을 더 이상 보호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고, 이에 국민이 자기의 국가를 스스로 포기한 상황이다.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사실상 자기의 국가도 포기한 국민들을, 다른 나라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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