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에게는 이런 질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사무엘상 강해를 위해 성경을 묵상하면서 생긴 질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들이 하나님에게도 중요할까?’세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로 판단해 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이런 기준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거 없으면 죽고 못 살지만 하나님께는 무용지물일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장면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17:45) 다윗에게는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칼과 창과 단창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이 믿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식 없는 한나는 자식 있는 브닌나로 말미암아 괴롭힘을 당했지만 결국 만군의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인생역전을 단행해 주시지 않습니까? 사무엘상 1장에는 사무엘 선지자의 아버지 엘가나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에브라임 땅에서 사는 레위인이었습니다. 엘가나는 적어도 일 년에 한차례 이상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성막에 나아가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사무엘상1:3) 그런데 엘가나가 예배드리러 올라간 실로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직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실로에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성막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적어도 다윗이 불레셋에 빼앗긴 법궤를 자신이 살고 있는 다윗성에 모시기까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인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엘가나와 엘리의 두 아들은 같은 레위지파 사람들일지라도 현직의 위치가 달랐습니다. 엘가나는 무명의 레위인으로서 숩 땅의 라마라는 시골 촌 동네에서 파묻혀 사는 촌사람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 잘 둔 덕분에 중앙 무대인 실로의 성막에서 당당하게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뿐만 아니라 사사의 역할도 감당하는 당시로서는 무시 못할 지위에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 중에서 누가 더 가치 있고 자존감이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때때로 세상은 사람들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지위를 가지고 어떤 성과와 업적을 내는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께도 이런 세상적인 기준들이 중요할까요? 엘가나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중에 누가 더 경건합니까? 엘가나는 촌사람이고 엘리의 두 아들은 중앙 성소의 제사장이니까 이들이 더 중요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자들입니까? 이것은 세상의 기준에 따른 우리의 선입견입니다. 시골 촌 동네에서 교인들도 별로 없이 목회하는 목사는 지지리도 못난 목사고, 서울 한 복판 큰 대형교회에서 수천수만의 교인들을 거느리고(?) 목회하는 목사는 잘난 목사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평가 기준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시골 촌사람 엘가나가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까? 제사장들인데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불량자’(사무엘상2:12)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을 왕으로 택하실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셨던 이 말씀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16:7)는 말씀은 사무엘상의 핵심을 이루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자인가 가난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가난에 처하게도 하시고 부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 속에 어떤 하나님 뜻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처한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 하실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전긍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싸워 이기게 하시고, 능히 헤쳐 나가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없는 자을 들어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이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내 수준에서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눈으로,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 앞에 비굴하지 않습니다. 쩨쩨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친히 이 세상 만물들을 다스리시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외치며 나갔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시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브닌나처럼 없는 자를 괴롭히는 못난 짓 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에게 정직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 앞에서도 정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가 꼼수를 부려도 결국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루시고 밝히 드러나게 하시고 역사해 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진정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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