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말하기 대회, 글짓기 대회에서도 여러 개의 상을 받은 첫째가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뒤로는 도통 한국말을 사용하기를 꺼려하고, 둘째 아이가 갑자기 물어본 ‘선데이’를 한국어로 ‘일요일’이라고 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매주 일요일 밤에는 한글로 된 책이나 신문 기사를 읽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큰 애가 읽은 신문기사는 지금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대법관 지명자에 관한 얘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했는데, 이 지명자가 고교시절 파티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FBI가 조사를 시작했고, 이에 민주당과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자에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는 신문기사였다. 여기에는 “모든 결정은 FBI 조사 결과에 달려 있다”,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은 FBI 조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라는 문장이 있었다. 이 중 ‘달려 있다’와 ‘못박았다’라는 동사는 큰 아이가 이해하기에 여간 힘든 단어들이 아니다. 큰아이는 ‘달려 있다’는 나무에 달려 있어야 하고, ‘못박았다’는 벽에 못을 박는다 라는 뜻인데 기사에 나온 문맥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이 기사를 빌미 삼아 고등학교 시절에도 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필자의 의견을 아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했다.

     어렵고 애매한, 다양한 뜻을 가진 한국말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할아버지 시장하시겠다’에서 배고픔을 뜻하는 ‘시장’을 이 곳 아이들은 ‘마켓’으로 인지하기도 한다. 영어의 come과 go의 뜻인 ‘온다, 간다’의 사용도 자주 헷갈린다.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답은 오직 자주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주류사회 및 한인 커뮤니티 취업시장에서 ‘언어’가 두드러지게 경쟁력이 되고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언어로 여겨지고 있는 스페인어를 비롯해 한국어, 중국어 등 두 번째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재 유치를 위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월 1일 기준으로 몬스터 닷컴에서 키워드를 ‘Korean’으로 검색하면 총 327개의 잡 리스팅이 검색된다. 또, 커리어빌더 닷컴의 경우 한국어는 184개이고 중국어는 270개로 한국어 구사자보다 좀더 많이 검색된다. 감안하여 이중언어 가능 구직자들은 정부기관 및 주류 기업에 도전해 볼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언어로 인정되어 온 스페인어를 비롯해 한국어, 중국어 등 두 번째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재 유치를 위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당연한 흐름이다. 

     지난 2013년 한글날이 23년 만에 국가 공휴일이 되었다. 1991년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명목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올해 572돌 한글날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한글 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되새기고 있다. 이처럼 한글날이 창제 500년이 지나서야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의 소중함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디지털 시대가 발전되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표음문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공통 발음기호로 한글을 내세우는 언어학자들이 있을 정도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한글은 우수한 문자학적 가치도 돋보인다. 얼마 전 휴대전화 문자 입력에서 영어 알파벳과 일어 히라가나, 한글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각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60대를 대상으로 각자 공통된 뜻을 가진 문자 내용을 더 빨리 입력할 수 있는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이 진행됐다. 결과는 한글이 영문과 일문보다 빠른 입력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한글 창제의 제자 원리와 관련이 깊다. 이처럼 한글은 문화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 우수한 문자다. 찬란했던 조선 문화의 상징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창제자와 창제 이유를 아는 세계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난주 그룹 방탄소년단은 한국 가수 최초로 뉴욕에서 열린 유엔 정기총회에 참석해 전세계 청년을 위한 연설에 나섰다. 이 같은 소식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외신의 K팝 전문기자는 방탄소년단의 연설에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바로 젊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으며, 미국의 ABC 방송은 방탄소년단에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라고 칭송했다. 한류의 대명사가 된 방탄소년단은 이제 아시아와 북미를 넘어 영국 BBC 최대 인기 쇼 '그레이엄 노튼 쇼'에 출연해, 그 인기를 유럽으로까지 확장한단다.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이미지도 함께 확장될 것이다. 참고로 '그레이엄 노튼 쇼'는 레이디 가가, 오아시스, 톰 크루즈, 베네딕트 컴버배치, 데이비드 베컴 등 전 세계 인기 스타들이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방탄소년단의 활약으로 전세계는 한국말 한국문화 한국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말과 노래를, 음식과 문화를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가 짙다. 

    사실 고유한 글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여 곳 남짓하다. 한 민족에게 글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이에 자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세계가 인정한 한글이지만 정작 한국인의 한글 사랑은 그다지 깊지 않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의 지나친 학구열은 가나다보다 ABC를 먼저 배우게 했고, 한국어 만화보다 영어로 된 만화를 접해야 귀가 트인다며 한국말도 못하는 세살배기 아이에게 영어 만화영화만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은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된다. 공문서, 도로 표지판, 유적지 표석 등에 글자가 틀린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의 언어 파괴 현상은 심각하다.

    신조어가 난무하고 이모티콘, 줄임말 등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문법상 잘못된 표현, 틀린 맞춤법이 예사로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욕설, 은어, 비속어 사용은 도를 지나쳤다.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쓰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길거리 간판이나 상표명, 단체이름, 전문용어 등에 외국어가 범람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를 피할 수는 없지만, 한글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데 꼭 외국어를 써야 할 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은 한인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영어를 걱정한다. 필자도 아이의 학년이 높아지면서 영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한국어로 일기를 쓰게 하고 한국 동화책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의 영어 읽기, 쓰기 성적은 영어만 사용하는 다른 미국 아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꾸준한 한글교육이 결코 영어 성적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제 영어만 잘하는 아이들이 잘나 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인들도 모국어를 하지 못하고 영어만 하는 2세들을 ‘바나나’라고 비아냥거린다. 외모는 동양인인데 속은 백인인 아이들의 모습을 바나나에 비유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모욕을 감내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이 미국땅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들의 몫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말을 해야 한국식의 사고를 공유할 수 있다. 또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은 부모와의 절대 공감대를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 또한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한글공부를 더 열심히 시켜볼 작정이다. 글을 못 읽은 국민들을 ‘어엿비’ 여겨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깊고 높은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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