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불고 선물 받고 축하 받는 날이 바로 생일이다. 그날만큼은 어디에서나 축복을 받는 행복한 날이다. 국가에도 생일이 있다.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날이란 뜻의 ‘건국일’이다. 우리나라는 건국기념일 대신 개천절을 챙긴다. 오는 10월3일은 단기 4351년 개천절이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 중의 하나인 7월4일,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일인 개천절은 그 어느 국경일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천절은 나라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던 시대, 일제강점기에 제정되었다.

    개천절의 개천(開天)은 ‘하늘이 열린다’는 뜻이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처음 건국한 것을 이른다. 우리 조상들은 단군에서 시작된 역사를 자랑스러워 했다. 하늘 신의 자손인 단군으로부터 이어져 온 고조선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천행사를 열어 감사함을 전했다. 하늘이 열렸다고 여긴 음력 10월 즈음이면 수확한 햇곡식을 하늘, 땅, 바람, 비의 신에게 바치고 절을 올렸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고려 중기 이후 몽골의 침략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다양한 외래문물이 들어오면서 제천행사는 그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각 집안의 조상을 기리는 제사로 축소되거나 행사 자체가 사라지면서 단군과 한민족의 정신이 점점 잊혀진 것이다. 

    단군 이야기가 부활한 건 일제강점기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면서 외교권을 박탈하고, 우리나라를 탄압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을 분열시키려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국민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힘이 필요했다. 독립운동가인 나철 선생은 그 답을 ‘단군’에서 찾았다. 단군이 처음 나라를 세운만큼 흩어진 민족의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나철 선생은 일제 식민지하일지라도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민족의식을 깨우기 위해 매년 개천절 경축행사를 열었다. 멀리 상해, 만주 등 해외 임시 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투사들도 민족의 얼과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10월이 되면 하늘에 차례를 지내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치른 개천절 행사는 우리 민족을 똘똘 뭉치게 하는 기틀이 되었다. 그러다가 1919 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도로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삼고, 고조선을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정하면서 음력 10월3일이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임시정부는 개천절을 의미하는 건국기원절(음력 10월3일) 외에도 독립선언일(3월1일), 헌법발포일(4월11일) 등을 국경일로 만들어 그 뜻을 새겼다. 10월을 건국의 달로 잡은 이유는 10월 상달에 제천의식이 행해졌던 역사적 전통에서 기인하며, 3일로 정한 이유는 예로부터 ‘3’은 우리 조상들에게 운과 길이 따르는 길수로 여겼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후 건국 기원일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예부터 사용해온 개천절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당시만해도 개천절은 음력이었는데,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부터이다. 10월3일이라는 날짜를 기억하는 게 중요한데 음력과 양력 환산이 복잡해 국민들이 헷갈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항일운동단체들은 개천절을 맞아 태극기 게양을 강조했다. 일제 탄압이 그나마 덜했던 국외의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큰 몫을 했다. 주로 미국 등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나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태극기를 게양하고 개천절 행사를 꾸준히 열어온 결과 개천절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개천절을 중심으로 단합된 민족정신은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고, 결국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개천절을 언급할 때는 단군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단군신화에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곰과 호랑이는 태백산에 거주하던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숭배하던 2개의 부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곰을 숭배하던 부족이 고조선의 시조가 된 단군을 앞세워 적통을 잇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삼국유사와 환단고기 등의 기록에는 단군의 탄생뿐 아니라 그 이전의 신들의 이야기도 함께 언급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4349년 전 10월3일, 하늘의 신인 환인의 뜻을 받은 환웅이 3천명의 무리와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다. 풍백, 운사, 우사는 각각 바람, 구름, 비를 주관하는 이들로 현대식으로 말하면 장관급 관리들로 해석된다.

    이들은 백성들이 풍요롭게 농사를 짓고 질병을 물리칠 수 있도록 지혜를 제공한다. 124년 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우고 1500년간 나라를 유지했다. 단군신화에는 이처럼 우리나라의 탄생과정이 담겨 있다. 단군은 고조선을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각각을 해석하면 홍익인간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며, 이화세계는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붙여서 해석을 하면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며, 모든 만물에 이로움을 주는 참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완성된다.

    단기는 ‘단군기원’의 줄임말이다. 지금도 '2333'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정확히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한 해인 서기 전 2333년을 말한다. 어렸을 때 단기와 서기가 헷갈려 고생했던 일이 떠오른다. 학교 시험에도 간혹 출제되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단기에서 2333을 빼"라는 것이었다. 역으로, 단기는 서기에다 2333을 더하면 된다. 그래서 올해는 2018+2333, 곧 단기 4351년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 단기가 공용연호로 채택되었다가 5·16이 나고 나서 서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단기 연호의 수명은 고작 15년 남짓. 군사정부는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조국의 근대화를 조기에 달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세계와의 통용적인 시간 개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기와 서기를 함께 사용하면 어떨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마다 7월27일 한국전 정전기념일을 앞두고 포고문을 발표해 왔다. 2016년 그는 포고문을 낭독하며 맨 아래 작성한 날짜를 적었다. '주님의 해(the year of our Lord)' 2016년과 '미합중국 독립의 해' 241년. 이처럼 미국의 연호는 서력기원(서기)과 독립기원(독기)을 병기하는 것으로 돼있다. 서기는 알려진 대로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했다고 해서 '아노 도미니(Anno Domini, 주님의 해), 흔히 첫 글자를 따 AD로 표기한다. 독기는 한국으로 치면 단기에 해당된다. 오바마만 그런 게 아니라 역대 대통령 모두 서기와 독기를 함께 사용했다.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후세에 일깨워 주었다. 여기에는 자유와 인권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승화시켰다는 미국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면서도 단기를 푸대접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개천절은 국가가 세워진 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이끈 근본 정신이었고, 한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한 상징이었다. 오늘 개천절에 숨겨진 이야기를 안 만큼 이번 개천절은 조금 특별하게 지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을 던졌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떠올리며 잠깐의 묵념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오는 10월3일 개천절은 우리 민족이 건국을 기념하는 경축일이다. 동시에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건국이념 속에 깃든 인류애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가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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