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신문 기사 마감일이 화요일이다 보니 한반도 ‘운명’을 짊어진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거론하지 못해 안타깝다. 더욱이 세기의 시선이 평양에 집중되어 있으니 다루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아쉬울 것 같다. 시간적 제한으로 인해 정상회담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회담의 중요성을 살펴보겠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여정의 변곡점이 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18일부터 2박3일간 평양에서 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서해 하늘길을 통해 평양을 찾았다.

    4·27, 5·26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후 넉 달 만에 성사된 세 번째 만남이자, 평양에서 열리는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에서 두 정상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삼성, SK , LG, 현대 등 글로벌 기업 총수와 남북 경협 기업인 등 경제계 인사 17명이 포함된 정상회담 수행원 200여 명은 한국시간 18일 오전 역사적 사명을 띠고 평양으로 향했다. 북한의 영접은 특급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공항 영접에 이어 수만 명 시민을 동원하고 카퍼레이드까지 하면서 환대했다. 4·27 판문점선언이 6·12 북미정상회담의 발판이 된 것처럼, 이번 평양회담 역시 2차 북미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의 양대 키워드는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이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세 번이라는 뜻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게임이나 놀이를 할 때도 우리는 삼세번을 외치곤 한다. 즉, 삼세번에 득한다는 것은 세 번째에는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평양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삼세번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북·미관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리스트를 제공하고, 종전선언을 구체화한 다음, 경제협력 분야로까지 남북관계를 확대하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이렇다. 첫 번째는 ‘북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핵 리스트 공개이다. 북한은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미북 정상회담을 마쳤지만, ‘원론적’ 수준의 비핵화 의지만을 보여왔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 코앞의 당면 현안은 북한이 개발을 완료해 보유하고 있는 핵 리스트를 대외에 공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상징하는 조치로, 여기엔 북한의 핵 시설과 핵무기 보유 현황 자료 등까지 모두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공통된 시각이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의 선행 조건으로서의 종전선언과 미국이 주장하는 핵 리스트 신고 등의 실질적 조치 사이에서 어떻게 양측의 간극을 좁히고 '빅 딜'의 성사 가능성을 높이느냐가 '촉진자'이자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는 문 대통령의 최대 과제로 꼽힌다.

    두 번째는 ‘종전선언’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 구두약속’,  ‘비핵화 리스트 제출’,  ‘남북미 종전선언’ 순서로 구상 중인데, 미국은 종전선언을 ‘비가역적 조치’로 비핵화 조치가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의미를 낮게 잡고 있지만 미국측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북한은 미군 유해송환,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등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북한 체제보장의 입구인 종전선언마저 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측을 비난하고 있다.
세 번째는 ‘남북 경제협력’ 방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경협의 경우 ‘의지 확인’ 차원에서만 머물 것이라 전망했다. 이유는 미국과 유엔, 남한, 유럽연합(EU)이 3중 4중의 대북 제재망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남북 경협’을 추진할 경우 남한 정부가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를 위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SK회장, 구광모 LG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급 인사들과 함께 방북한 것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결과로써 남북경협에 대한 구체적 결실은 나오기 힘든 전망이다. 여기엔 북한측이 ‘투자 의사 결정권을 가진 인사가 방북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다.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교류 활성화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진전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상시 상봉소 설치 등이 예상되며, 이 외에도 민간 차원의 교류활성화 정책이 다수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만큼은 북한이 가장 적극적인 부분이어서 결과가 사뭇 기대된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와 미국 분위기는 정반대다. 미국은 평양 정상회담 전날 유엔의 대북제재 집행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미국 유엔 대표부는 안보리 긴급회의를 요청하면서 러시아가 대북 제재 규정을 위반했으며 그 문제를 다룬 안보리 보고서를 러시아가 조작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제재위 보고서 원본에는 북이 제재망을 피해 중동에 무기를 팔았고 중국·러시아 선박과 불법 환적을 통해 금수 품목인 유류를 대규모 수입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북이 이런 수법으로 연간 유류 허용치의 3배에 가까운 140만 배럴을 올 상반기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 차단을 위해 미국은 한국·일본·호주 등 동맹국과 연합으로 대북 해상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정부와 의회, 언론, 전문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최근에 우리 정부가 대북 유화책을 내놓을 때마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상황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북이 핵 시설을 폐쇄하고 핵무기를 없애는 실질 행동을 하기 전까지 대북 제재를 훼손하지 말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1월부터 마련된 한반도 대화 국면이 어느덧 결실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는 순간부터 회담 후반부까지 남북간 ‘화합’을 과시하는 역사적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특히 도보다리 위에서 이뤄진 30분 간의 독대는 남북 정상간 신뢰를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11년 만에 평양에서 이뤄지는 남측 정상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지난 1, 2차 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측과 북측을 각각 오가며 진행된 제한된 형태의 약식 실무회담 성격이 강했다.

    반면 이번 정상회담은 공식 환영행사부터 공연 관람, 환영ㆍ답례만찬, 현장방문 등 정상회담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췄다. 평창올림픽 개최로 한껏 고조됐던 평화모멘텀과 달리 역사적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실무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라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간극을 좁혀내고, 회담의 논의 내용을 이달 말 유엔총회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설명, 북미정상회담 성공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연내 남·북·미 등이 참여하는 정상회담을 거쳐 종전선언까지 이뤄내 '돌이킬 수 없는 진도'를 나가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교두보 삼아 북미관계 개선을 이루고,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룬다는 ‘거대 구상’의 성패가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달려 있다.

    남북한의 8천만 동포는 세계 어느 민족들보다 월등하다. 고작 2백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미국보다도, 역사의 대부분이 전쟁의 흔적으로 뒤덮힌 유럽보다도,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했던 일본보다도 말이다. 우리는 전세계 어느 국가도 흉내낼 수 없고,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당장 통일이 될 수는 없지만, 이번 평양 정상회담으로 인해 통일 조국의 초석이 다져지고, 나아가 남북이 함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 그 어떤 강대국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한반도의 위엄을 가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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