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이 16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45개국에서 17,000여명의 선수들이 40개 종목, 465개 경기에서 메달 경쟁을 했다. 대한민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선수 811명, 임원 236명이 참가해 금 49, 은 58, 동 70개 종합 3위의 성적을 올렸다. 비록 목표인 2위 수성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조국을 위해 뛰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97㎏에 출전한 조효철은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했었다. 간신히 30살이 넘어서야 첫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조효철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8강에서는 이마가 찢어져 이마에 붕대를 감고 결승에 올랐다. 그의 붕대에는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뒤범벅됐지만, 결국 중국의 디샤오를 5 대 4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수영 김서영의 금메달은 한국 여자 수영계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대회 한국의 유일한 수영 금메달이었다. 김서영은 처음부터 1위로 질주, 단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고 2분08초34로 대회 신기록과 한국 신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웠다. 그는 “죽어라 하면 1등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했다”라며 “터치패드를 찍는 순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럽다”며 울었다. 손바닥이 아플정도로 응원했던 관중들도 함께 울었다. 여자 100m 허들 정혜림의 삼세번의 도전도 대단했다. 두 차례의 아시안게임에서 무관의 설움을 딛고 세 번의 도전 끝에 정상에 올라 ‘아시아의 허들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녀의 나이 서른 둘이다. 한국 육상이 이번 대회에서 따낸 유일한 금메달이기에 더욱 값지다.

    한국 체조의 저력을 뽐낸 김한솔과 여서정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씩을 수확했다. 김한솔은 도마에서 마지막 마무리 동작을 하지 않아 아쉽게 2관왕에 실패했지만, 여서정은 아버지인 여홍철 교수와 함께 체조에서 ‘부녀 금메달’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도 아시아경기 단체전 2연패를 이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 남자 54㎏급 금메달을 목에 건 김태훈은 한 체급 올려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해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선수들의 선방은 대단했다.

    그런데 국내외에서 대한민국의 금메달, 특히 남자 선수들의 금메달에 진정한 박수를 쳐주지 못하는 이유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1일 남자축구 결승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차지하자 “손흥민 군대 안가도 되겠네”라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사실 이번 경기는 한일전이 아니라 손흥민이 병역 혜택을 받느냐 아니냐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 축구 3·4위 전에서 한국이 일본과 붙었다. 비등할 거란 예상을 깨고 우리가 2대0으로 이겼다.

    일본 쪽이 뼈 있는 말을 했다. "군 면제 받으려고 뛰는 한국팀은 당해낼 수 없다." 미국 TV도 툭하면 '병역' 얘기를 꺼냈다. 몸싸움이 벌어지면 "한국팀이 악착같이 덤빈다"고 하고, 경기 뒤엔 "군대 안 가게 된 걸 축하한다"고 비꼬았다. 이번 아시안게임도 상황이 비슷했다. 경기 내용이 아니라 '손흥민 군 면제'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영국 BBC가 한국 축구팀 소식을 낱낱이 보도했는데, 한국 축구대표팀이 우승을 확정하자 "손흥민은 한국 남성에게 주어진 2년의 병역의무를 아직 이행하지 않았고, 한국이 우승을 못하면 군에 소집될 상황이었다"면서 "2200만 파운드로 손흥민을 영입한 소속팀 토트넘은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불확실성이 종식됐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팀에서 뛰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서 병역 면제를 받은 박주영 이름까지 이런 기사에 오르내렸다. 미국의 폭스스포츠도 "손흥민이 금메달을 얻지 못했다면, 군 입대로 그의 커리어는 ‘재앙’이 됐을 것"이라면서 "수백만 달러를 버는 축구선수가 운동복이 아니라 군복으로 갈아 입었을 수도 있었다"라고 손흥민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운동선수 병역 특례는 45년 전 도입됐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딴 양정모부터 900명 가까이 대상이 됐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1990년 이후로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입상한 사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로 입상한 사람’은 체육요원으로 편입된다. 체육요원은 4주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3년 동안 메달 딴 종목에서 활동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인정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는 '4강'도 해당됐다. 문화예술계도 국내외 유명 콩쿠르 우승자, 무형문화재 전수자 같은 '예술요원'이 대상이다. 국제 바둑대회를 휩쓴 이창호 9단도 그 범주에 들어갔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얻어 ‘합법적’으로 병역특례 대상이 됐다.

    이승엽, 임창용 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봤다. 예외적인 사례도 있었다. "이 정도면 군면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에 정부가 호응한 경우인데, 대표적인 것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병역법 시행령에 관련 조항이 없지만, 4강 신화를 쓰자 병역 특례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이에 따라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등이 4주 기초군사훈련으로 군 복무를 대체했다.

    당초 병역면제 제도는 국력이 미미하던 시절 '국위 선양'이나 '문화 창달' 차원에서 생긴 제도이다. 하지만 갈수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팀의 경우다. 실력이 확실히 부족한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했던 과정도 논란이 되었지만, 경기에 한번 투입시키고 금메달 쾌거에 합류되어 병역면제의 혜택까지 누리게 된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야구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병역미필 선수로 팀을 꾸렸다가 '병역 면제 원정대'라고 빈축을 샀고, 어떤 축구 선수는 '4분 뛰고 면제'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또, 예술·체육인에만 혜택을 주는 작금의 병역특례 제도는 불공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중예술인과 기능올림픽 입상자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5월에 이어 3개월 만에 '빌보드 200' 1위 정상을 차지하면서 K팝 역사를 새로 쓴 그룹 방탄소년단도 국위 선양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특례혜택 대상이라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맏형인 김석진은 손흥민과 동갑인 1992년생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이 천문학적 경제 효과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로 꼽힌 성과도 국제 스포츠대회 금메달 못지 않다는 것과 국가 대표로서가 아니라 개인 이익단체에 소속되어 나온 성과는 다르다 라는 입장도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이로 인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1회 입상으로 병역 혜택을 주기보다는 국제대회 성적을 마일리지화 해 병역특례를 적용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시적으로 한번 뛰어준 선수보다는 꾸준히 뛰어 이바지한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비록 1등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뛰어 일정한 점수가 될 때 혜택을 주는 것이 한탕주의도 없애고 열심히 하는 많은 선수를 계속 배출해낼 수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체육·예술인들의 재능과 기량을 중단시키지 않으면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이 신속히 검토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비록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뒤지고, 병역특혜 논란도 일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이다. 축구와 야구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에 국민정서상 국가 순위가 무의미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금메달 리스트들에게만 환호와 박수를 보낼 일은 아니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승자이다. 더 이상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아니길 바라며, 이번 대회를 위해 오랜 시간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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