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퍼내고, 그렇게 태워서 지구의 체온을 높여대더니 세계가 온난화(엘니뇨)의 폭염 속에 허덕입니다. 우리나라 온도는 연일 40도(화씨105-110도)의 불가마속 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사막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문명이란 불필요한 필수품을 무제한 만들어낸다”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835-1910)이 이미 한 말입니다. 대량생산에 따른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상품의 계획적 노후화는 이미 자동차회사의 생산방식이 되었지요. ‘폐기처분 날짜가 정해진’즉 요즈음은 모든 제품이 특정 시점에 와해되거나 수리 불능 상태가 되도록 설계되고 있습니다. 그래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적당히 쓰다 버리는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고의적 낭비와 계산적 낭비가 세계 선진국 경제의 핵심 요소입니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높이고자 제품을 의도적으로 소모품화한 결과 지금 세계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폐기물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폐기물을 미국 영토에 나란히 펼쳐놓는다면 1평방 마일 당 56명의 국민이 54톤의 쓰레기에 파묻혀 있게 되며, 거기에는 일인당 폐차 3대, 폐타이어 25개, 병 8,500개, 깡통 1만7천개, 플라스틱 1톤, 종이 8.5톤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현재 매년 3억 4천만 톤의 고체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 과학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은 생물권에 버려지는 공해물질의 결과로 오존층이 최고 16.5%까지 파괴될 것을 경고합니다. 로마클럽(실업가,경제학자,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적 연구 제언 그룹)의 성장한도(The limits of Growth) 보고서는 우리에게 절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줍니다.

    현대 문명의 ‘성장병’이 종식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결국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선진국은 특히 우리나라는 빨리 소비경제에서 보호경제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현대 문명은 소유욕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행복한 삶이란 부(富)의 축적에 있고 그래서‘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터무니없는 허풍이 난무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통념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며, 그 결과 현대사회의 부에 대한 욕심은 삶의 진실과는 동떨어진 정신질환이 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세계의 속도는 우리의 단절감과 소외감을 가중시킵니다. 따라가자니 힘들고 안 따라가자니 불안합니다. 컴퓨터도 열심히 배워보지만 거기에 구원은 없습니다. 부에 대한 욕심과 속도의 살벌한 경쟁 속에 탈출구란 없어 보입니다.

    이때 기독교적 단순성은 현대의 이 열병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그것은 우리의 강박적 부절제에 제 정신을 찾아주고, 흥분에 들뜬 정신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단순성을 통해 우리는 물질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은 쓰는 것이지 모으는 게 아닙니다. 돈은 쓸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다시 한 번 사람이 소유물보다 중요해집니다. 기독교적 단순성은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하는 생태계 파괴에 응수하기 위해 모든 크리스챤에게 주어진 소명(召命)입니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모든 개념이 혼동되고 왜곡될 때 하나님의 단순한 진리(말씀)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심 개념은 바로 <철저한 의존>입니다. 우리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며 자립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소유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나니...(약1:17) 신앙이란 전적 의존입니다. 내 것, 내 힘, 내 능력 안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무식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단순성이란 철저한 이 의존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신뢰의 영(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월드비젼의 간사로 세계를 뛰어다니며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 한비야는 10년간 배낭 하나로 온 세계를 여행한 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배낭 하나면 족하더군요’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마8:20) 예수 그리스도는 편히 누워 쉬실 곳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계실 곳은 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이 말씀에 담긴 의미는 엄청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배 고프고 목 마르고 헐벗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를 건설한 윌리엄 펜(1644-1798)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다’ 크리스챤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은 주님과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주님과 발맞춰 걸을 때 우리는 내 힘으로 나를 챙기고 내 뜻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욕구의 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범사에 단순함(Simple life)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행복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