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에서 처음으로 한인 테니스 대회를 지난 주말에 개최했다. 인생에서도 항상 반전이 있듯이 테니스 코트 위에서도 어김없이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으며, 대회장으로서 선수들의 진지하고 배려깊은 열정에 감동받았다. 예전에 필자가 한국일보 덴버 지사에 근무했을 때에 미주 한인사회의 가장 큰 골프대회라고 불리는 ‘백상배 골프대회’를 콜로라도에서 처음으로 오픈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일보 덴버 지사를 관할하고 있었던 시카고 지사의 명령에 의해 선택의 여지없이 대회를 개최했었는데, 호응도는 예상외로 좋았다. 지금은 자주 열리지만, 15년전에 열렸던 그 백상배 골프대회가 콜로라도에서 한인 골프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필자에게 골프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골프는 비싼 스포츠로 각인되어 있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골프는 한인사회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미국이라는 넒은 땅에서 골프는 손자와 할아버지가 함께 즐기는 가족 스포츠이며, 캐디팁 걱정없이 라운딩을 할 수 있어 소시민을 위한 스포츠이고, 그린피 부담이 적은 골프장이 많아 자주 쳐도 경제적 부담이 적은 생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골프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우뚝 섰다. 박세리를 시작으로 크리스티나 김, 박인비, 신지애, 리디아 고, 유소연, 전인지, 박성현 등 세계 랭킹을 휩쓸고 있는 우리의 여자 선수들을 보면서 골프는 매우 친근한 스포츠가 되었다. 이 때문인지 콜로라도의 여성 골퍼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해 지금은 남자 골프 인구를 넘어섰다는게 중론이다. 물론 남자 골퍼들의 골프 사랑도 지속적이다.

     이렇게 한인들이 꾸준히 골프의 매력에 푹빠져 있을 즈음 혜성처럼 등장한 ‘정현’ 선수가 우리의 관심을 테니스로 돌렸다. 정현의 4강 진출이 확정되던 지난 1월 한국 및 전세계 언론은 정현을 헤드라인으로 다뤘고, 특히 한국경제 TV는 "정현 4강, 축구보다 테니스 더 감동”이라는 타이틀로 보도했을 정도로 그의 쾌거를 높이 샀다. 대한민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은 올 1월 2018 호주테니스 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달성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의 4강에 진출한 것이라 여간 떠들썩한게 아니었다. 또, 테니스의 황제라고 불리는 ‘로저 페더러’와 결승 진출 승부를 앞두고 있었기에 테니스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여기서 잠깐, 페더러가 누구인가, 테니스 팬이 아닌 사람조차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하다. 237주 연속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여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 기록을 세웠으며, 현재 305주간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스포츠 전문가들과 비평가들, 전·현역 선수들에 의해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그가 대한민국의 루키와 붙는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흥분했었다. 이후 한국은 본격적으로 테니스에 열광하게 되었고, 그 열풍으로 인해 이곳 콜로라도에서도 테니스 대회가 열리면서 콜로라도 한인사회에도 테니스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대회는 미 프로 테니스협회 소속 김재경 코치와 KTCC 그리고 덴버 한인테니스 동호회가 콜로라도 테니스 동호인들의 저변확대와 건강한 한인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힘을 합쳐서 준비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점검한 탓에 경기 진행도 매끄러웠지만, 무엇보다도 우천으로 인해 몇 번씩 대회 일정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참가신청팀 전원이 참석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당초 4월 20~21일에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두 번이나 날짜를 바꿔야했고, 예상보다 참가팀이 많아지면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코트를 찾아야 해서 대회장소도 세번이나 바뀌었다. 이러한 변동 사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은 제시간에 딱 맞춰서 대회장에 도착해 대진표를 확인하면서 몸을 풀었다. 대회 첫째날에는 예선전이 치뤄졌다. 아버지와 아들, 자매, 형제, 친구들이 팀을 이뤄서 호흡을 맞췄다. 콜로라도에서 몇 명 안되는 명품 몸짱들도 대거 출전하여 테니스 실력을 뽐냈다. 역시 테니스는 매너가 중요한 스포츠였다. 경기 동안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더니, 휴식시간에는 서로에게 웃음을 건네고 농담도 하면서 서로의 실력을 칭찬하는 매너도 빠뜨리지 않았다. 총 44명의 22팀이 출전을 했고, 큰 부상없이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본선 진출을 한 10팀은 보기만 해도 쟁쟁한 기운이 전해졌다. 테니스라면 웬만큼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팀들이 모인 탓에 대회장 열기는 더욱 후끈거렸다. 저녁 7시에 경기를 모두 마칠 예정이었지만 박빙으로 전개된 대회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번 대회 출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효한의원의 김효씨와 한인 입양아 출신의 정병대씨 팀의 실력을 최고로 꼽았다.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의 소유자인 김효씨, 강한 스윙과 빠른 발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테니스를 사랑하는 정병대씨의 눈빛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 예선전을 지켜본 이들은 파워풀한 움직임과 짜임새 있는 팀워크를 높이 사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동산 리얼터로 잘 알려진 박성재씨와 그의 파트너 김명철씨도 지목했다. 누가봐도 이 두 팀은 대회를 위해 열심히 연습이 되어 있었고, 젋고 강력했다.

     하지만 노련함이라는 무기로 승부수를 띄운 노장들 앞에서는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첫번째 결승진출팀은 김광영-최진영씨 조였다. 무릎 부상을 안고도 결승에 오른 김씨는 1953년생으로 올해 66세이며, 최씨 역시 59세로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또 다른 결승 진출팀은 수퍼 최씨와 조성연씨다. 5년 전 두 번의 대수술을 받고 허리에 철심까지 박아 넣었다는 수퍼 최씨는 1952년생으로 올해로 67세이며, 그의 파트너인 조씨도 59세로 결코 젊은 나이는 아니다. 특히 조성연씨는 동호회 내에서 가장 꼴찌 실력을 가졌다고 해서 많은 설움을 받았다는 뒷얘기를 우스개로 풀어놓을 정도로 그의 테니스 실력은 주목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승에 진출한 팀들은 이렇게 부상투성이의 노장들과 실력이 부족해서 참가하는데만 의의를 가져야 했던, 사실상 버린 카드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생의 반전 드라마를 쓰고 말았다. 결국 참가선수 중 허리수술까지 받은 최고령자와 최저 실력자가 만들어낸 앙상블이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 버린 카드가 젊은 선수들을 모두 꺾고 히든 카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그들의 결승전은 노련함 속에서도 강했고, 스피드 속에서도 우아했다. 이렇게 제1회 콜로라도 한인 테니스 대회는 ‘노병과 신병’이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15년전에 주최했던 백상배가 이 곳 한인사회내 골프대회를 활성화시킨 촉발제 역할을 한 것처럼, 이번 테니스 대회가 콜로라도 한인들 사이에서 테니스의 활성화를 위한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경기내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새로운 한인 테니스 문화를 정착시켜준 제1회 콜로라도 한인 테니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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