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부인과 두 딸의 갑질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자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두 딸을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켰고, 대한항공에 전문 경영인이 맡는 부회장직을 신설하였으며, 한진그룹 차원의 준법위원회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둘째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불거진 이후 열흘 만에 내놓은 수습책이지만 성난 여론이 얼마나 진정될 지는 미지수다. 2014년 12월에 발생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은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조현아가 뉴욕발 대한항공 1등석에서 땅콩을 봉지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삼으며 결국 사무장을 하기시킨 사건이다. 여승무원이 미개봉 상태의 봉지에 든 마카다미아를 쟁반에 받쳐 오자 조 전 부사장이 "이렇게 서비스하는 게 맞냐"고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승무원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전 부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매뉴얼을 운운하며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라고 고함쳤고 "내가 세우라잖아. 너도 무릎 꿇고 똑바로 사과해"라면서 황당한 갑질을 이어간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의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250여 명의 승객들은 20분가량 출발이 지연되는 불편을 겪었다. 조용히 무마되는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땅콩 리턴, 재벌가 갑질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게이트를 떠난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오는 램프리턴에 대한 항공법 저촉 여부 등으로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2년간의 재판 끝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었고, 당시 피해자였던 사무장은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니가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되었던 당시 "반드시 복수하겠어" 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동생 조현민씨는 지난 3월 광고업체와의 회의석상에서 팀장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유리컵을 던져 일명 ‘물컵 갑질’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이 광고 안한다. 제작비 한푼도 주지마라, 모든 일 중지해”라면서 8분간 폭언과 고성을 퍼부었지만“사건 당일 회의장에서 유리컵을 던진 사실이 있으나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유리컵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또, 운 좋게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은 기각된 상태다.

    실제로 동생 조씨는 초고속 승진에 회사 7곳의 임원을 겸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리지널 금수저이다. 2012년 1월부터 진에어 마케팅부 부서장으로 근무 중이던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그해 4월 자신의 싸이월드에 진에어 신입승무원 11기와 함께 안전교육을 받은 소감을 남겼다. “짧고도 긴 2주, 함께한 시간들. 말은 동기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갈 그들과 나… 언제 이런 체험 하겠어ㅎㅎ”라고 썼다.  조 전무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1년 만에 진에어 마케팅본부 본부장이 되었고 2016년 7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한항공에서의 쾌속 승진은 더 눈부시다. 2007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그룹에 발을 들인 조 전무는 2008년 부장, 2010년 상무보를 거쳐 2014년부터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여객마케팅부 전무를 겸임했다. 같은 기간 2010년 한진칼 자회사인 정석기업의 등기이사, 2011년 한진에너지 등기이사, 2016년 6월 한진칼 비등기 임원을 맡았다. 2014년에는 한진칼 자회사인 정석기업의 대표이사를, 2016년 8월에는 같은 한진칼 자회사인 한진관광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난해 4월에는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로써 조 전무는 진에어 부사장, 한진관광·정석기업·칼호텔네트워크 대표를 동시에 맡으면서 대한항공 전무로 일하고 있었다. 필자는 올해 초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봉송 장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지난 1월 광화문 세종대로 구간에서 성화를 손에 든 조양호 회장의 뒤편에는 조현아씨와 조현민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JFK공항에서의 땅콩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143일을 구치소에서 지내고, 2년간의 재판 끝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선고받은 지 3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보도자료가 배포됐다.‘풍부한 호텔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씨의 복귀 선언이었다.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도  곧 소환된다. 공사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을 폭행한 혐의다.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갑질 의혹 영상에는 한 중년 여성이 공사현장에 있던 직원을 밀치고 고함을 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렇게 이씨까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한진일가의 모녀가 동시에 경찰 수사를 받게됐다. 조현아의 남동생인 조원태 역시 2000년에 교통 단속 경찰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경찰관을 치고 도주하다 시민에게 붙잡힌 적이 있으며, 2005년에는 70대 할머니에게 폭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사실 대한항공이라는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만 빼면 조씨 일가의 갑질행태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윗사람들의 횡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사람들이 입다물고 있었을 뿐이고, 원래 세상은 그렇다고 포기했을 뿐이다. 어쩌면 이번에도 잠시 불타오르고 있을 뿐 곧 잠잠해질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청와대에 청원을 하고 정치권에서도 여론을 의식해 한진그룹에 압박을 가한다 해도 잠시동안은 어떤 제재가 가해질 수 있겠지만 곧 다시 원상 복귀된다. 이미 조현아 사건을 통해 조씨 일가는 내공이 생긴 상태다. 하지만 다행히 직원들이 달라졌다. 가면까지 쓰고 촛불을 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 직원들의 결기가 느껴진다. ‘승진에서 누락될 것이다’ ‘밥줄이 끊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이들은 이겨낸 것 같다. 땅콩회항 당시에는 일부 당사자들의 일로만 치부됐지만 이번에는 조 회장 일가족 폭행·폭언은 물론 밀수와 해외재산 은닉 등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경찰은 물론 관세청·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이 움직였다.

    가장 바뀌어야 한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물론 세상이치로 볼 때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의 횡포를 약자들이 완전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이를 실천하는 용기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현아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온통 떠받들기만 받고 자란 재벌 3, 4세대의 오만함이 지적됐다. 조현아가 경영자로서의 자질에 앞서 심각한 인격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생의 물컵갑질 사건으로 더 확실해졌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는 귀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신분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는 만큼, 윤리적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뜻의 프랑스어다. 그러나 돈많고 갑질놀이에 푹 빠져 살아온 조씨 일가의 재벌 사전에는 이런 의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국가가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 돈이 많은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적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질과 밀수 등 각종 불법 행각을 벌인 한진 총수 일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모두가 수긍할 만한 단죄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이번 일련의 사건으로 국민들이 받은 사회적 박탈감과 충격을 완화시키고, 다른 재벌들이 다시 한번 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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