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지난 9일 개막해 17일간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겨울 스포츠 축제는 4년 후 베이징을 기약하며 아쉽고도 화려한 작별 인사를 했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92개국 2,920명의 선수는 102개의 금메달을 놓고 전 세계의 팬들과 함께 올림픽 역사를 써내려 갔다. 한국은 대회 마지막날 올림픽 사상 최초로 여자 컬링과 봅슬레이 4인승에서 각각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금 5, 은8, 동 4개로 종합 7위에 올랐다. 과거 한국은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같은 종목에서나 메달을 땄고 김연아 같은 천재적인 선수 한둘로 버티는 나라였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선 불모지였던 썰매, 스키 등의 종목에서도 고루 좋은 성적을 냈다. 노르웨이가 2회 연속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독일, 캐나다,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시설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도시들에서 개최된 탓에 여러 걱정들이 많았지만 올림픽은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조직위원회와 1만 6000명의 자원봉사자들, 많은 공무원이 애쓴 결과다. 한국 선수단의 메달 성적이 당초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국민도, 선수들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2관왕 최민정이 쇼트트랙 1500m 후반부에서 보여준 압도적 질주는 국민들에게 쾌감을 안겨줬다. 결승에 오른 여자 컬링팀은 전국적인 컬링 신드롬을 낳았다. 이승훈은 한참 동생뻘 후배들을 이끌고 선전하다가 기어코 금메달을 따내 스피드스케이팅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림픽 도전 70년 만에 설상 종목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스노보드 이상호도 대견했다. 팀추월에서 왕따 논란을 일으킨 김보름은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딴 후 '죄송하다'고 울먹였고 국민들은 '괜찮다'며 박수를 쳐줬다. 넘어지면서도 1등으로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또 넘어지고도 금메달을 목에 건 여자 3000m 쇼트트랙 계주 경기는 온 국민이 얼싸안고 기뻐하기에 충분한 명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올림픽 최고의 '깜짝' 스타는 단연 '아이언맨' 윤성빈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윤성빈의 적수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아시아 최초 썰매 종목 금메달, 대한민국 최초 설상 종목 금메달 등 스켈레톤 종목 최초 타이틀을 여럿 가져가며 지난 설날 국민을 향해 '금빛 세배'를 했다. 선수들이 딴 메달 뒤에 얼마나 큰 노고가 감춰져 있는지는 국민들이 잘 안다. 자신의 한계와 싸운 선수들의 노력, 정정당당하게 승패를 가르고 그 결과에 승복하며 경쟁자와도 악수하는 멋진 스포츠맨십이 빛났다. 필생의 라이벌로 금·은메달을 나눠 가진 빙속 여제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포옹하는 장면은 스포츠의 진정한 감동을 선사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국민들은 모처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선수들 덕분에 환호하고 아쉬워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평창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며 울고 웃었다. 올림픽 독점 방송권을 가진 미국 NBC의 중계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유튜브를 보거나 비공식적으로 올려진 영상, 그리고 한국 뉴스를 실시간으로 검색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번 올림픽은 대회 운영 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개·폐회식은 10년 전 베이징올림픽 때의9분의 1 예산밖에 안 썼지만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한류가 어우러진 콘텐츠로 주목을 받았다. 타임지 등 외신들은 평창올림픽 경기장 시설, 숙소, 음식, 편의시설, 운영 능력이 역대 최고라며 찬사를 보냈다. 또, 평창은 테러없는 '안전 올림픽'이었고, 단 2건의 금지 약물 복용 사례만 적발된 '클린 올림픽'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하계올림픽, 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 몇 안 되는 국가가 됐다. 개회식이 한국의 태고와 미래를 보여줬다면, 폐회식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폐막식의 주제는‘미래의 물결(Next Wave)’이었다. 4년간 고된 훈련의 결과를 이번 대회에서 쏟아낸 선수들은 기쁨을 만끽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쾌지나 칭칭나네' 반주에 맞춰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은 손을 잡고 정답게 입장했다. 개회식 최대 하이라이트로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드론쇼는 이번에도 현장 실시간 쇼로 펼쳐졌다. 수백 개의 드론이 마스코트 수호랑 모양을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커다란 하트로 변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평창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에너지를 한데 모은 국민적 열기와 우리 선수들의 땀과 눈물로 일궈낸 성취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결정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공정성’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스포츠 정신과 개인을 희생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2030 젊은이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팀이 보여준 ‘최악의 팀워크’는 페어 플레이를 기대한 관중의 실망을 샀다. 그 이면에 빙상연맹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비판이 커졌다. 북한예술단·응원단 파견, 김여정·김영철 방남 등 여러 정치적 카드가 동원되면서 ‘평화올림픽’이냐 ‘평양올림픽’이냐는 논란도 있었다. 북핵이라는 상존하는 위험을 애써 눈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측에 끌려다닌다는 비판과 함께 남남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남한 북한의 김영철에 대한 국론은 심하게 분열되었다. 그는 6·25전쟁 이후 우리 군(軍)에 가장 큰 살상 피해를 입힌 장본인이다. 그가 지휘한 정찰총국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에 어뢰를 쏴 우리 해군 46명이 숨졌고, 그해 11월 23일엔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군인과 민간인 5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시같으면 우리 군이 발견하는 대로 처단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 김영철이 대표단 단장이라는 명찰을 달고 내려와 올림픽 폐막식장 귀빈석의 우리 군 통수권자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김영철이 가는 곳마다 우리 국민 통행을 막아가며 국가 정상급으로 모셨다. 김영철이 행여 자신의 방남에 반대하는 제1 야당 의원들과 마주쳐 기분이 상할까 군사 지역으로 빼돌리는 심기 경호까지 했다. 미국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맞닥뜨린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데면데면한 모습은 최고조에 달한 미국과 북한의 갈등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17일간의 ‘올림픽 휴전기’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조금의 시행착오도 용납되지 않을 중차대한 북핵 대치 국면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도 높고, 포괄적인 제재를 공표하는 날 이방카와 김영철은 폐막식에 앞뒤로 앉았다. 남북 단일팀 등으로 평창에서는 해빙의 열기가 높아진 듯이 보였지만, 한반도가 직면한 냉엄한 북핵 대치 현실은 변한 게 없음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우리도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임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가 정상회담 등 남북대화에 과욕만 부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선수들은 선전했고, 관중들도 경기 자체를 즐기며 선수들의 투혼을 아낌없이 응원했다. 남북단일팀 등 정치적 논란과 함께 막 올린 이번 올림픽은 정치 논리가 침해할 수 없는 스포츠정신, 인간승리의 의미를 일깨우며 마무리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부터 30년, 그간 한국 스포츠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 주었던 자리이기도 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은 모두가 크게 만족한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단일팀과 공동 입장을 통해 한국에서 스포츠를 넘어서는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했다. 남북 선수단은 태극기와 인공기, 한반도기를 함께 흔들며 각국 선수단, 자원봉사자, 관람객들과 함께 올림픽 정신 아래 감동적인 마무리를 연출했다.‘평창의 평화’가 지구촌의 미래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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