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날지 몰랐던 고통의 시간이 마침내 끝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지난주 남편이 콜로라도 대학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수술 나흘 만에 퇴원을 했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우선 지금까지 함께 걱정해 주고 격려해 준 지인들에게 감사를, 대학병원의 의료진들에게 존경을,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나눔 정신에 고귀함을, 그리고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오늘 이 글을 쓰려 한다. 남편이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은 5년전이었다. 한국에 놀러갔다가 친정 언니의 제안으로 별 생각없이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6개월 이내에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듣게 되었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인데 왜 하필 간경화일까, 의사는 의도치않게 부모로부터 간염에 감염되어 대부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40대 후반에 간경화 말기, 간암으로 발전해 50대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고 말해주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필자는 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울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나한테 일어난 것이다. 미국와서 고생만 하다가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이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애초에 계획했던 모든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다른 병원 두 곳을 예약해 다시 한번 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오히려 마지막에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는 간암의 징조까지 보인다는 더욱 참담한 결과를 받았다. 한국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부모님은 잘살아 보려고 미국에 갔건만, 병에 걸린 사위가 불쌍해서, 홀로 힘겹게 병간호를 해야하는 딸이 안스러워 한없이 울었다.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찰을 받았다. 결과는 한국과 같았다. 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식도 정맥 색전술부터 시작했다.  그해 4번의 시술을 거치면서 20파운드가 빠졌다. 그 때마다 죽음과 절망이라는 단어가 교차했다. 그래서 남편은 일을 줄이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우리 부부는 결정했다. 아침·점심·저녁 식사는 기본이고 해독쥬스는 아침에, 과일쥬스는 오후에, 고구마, 달걀, 현미피만두, 호밀빵 샌드위치, 현미콩떡, 브라질리안 너트, 아몬드, 피칸 등은 간식으로, 여기에 여주, 토마토, 브로콜리, 당근, 양배추, 돼지감자, 차가버섯, 상황버섯 그리고 장수죽에 명안밥 등 나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좋다는 것만을 골라 바꿔가며 매일같이 차로 마셨고 식단을 짰다. 그결과 진단 2년만에 식도 혈관 시술도 필요 없게 되었고, CT 촬영도 증상이 심각하지 않은 환자처럼 1년에 한번만 하면 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실제로 골프, 테니스, 태권도를 즐길 정도로 겉모습은 건강해졌다. 의사도 이러한 호전에 놀란 반응이었다. 그렇게 안정기에 접어들었는가 했는데, 작년 2월 1년 만에 찍은 CT에서 암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우리 가족은 또 다시 절망에 빠졌다. 병원측에서는 간암은 간경화 말기에 으레 진행하는 절차이며 크기가 크지 않아서 괜찮다며 위로했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또한번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2번의 항암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암의 흔적이 사라졌고, 병원측은 간이식 대기자 리스트에 남편의 이름을 올리는데 합의했다. 이후 필자는 24시간 내내 전화기를 놓치 않고 병원에서 걸려올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병원으로부터 도너가 있을 것 같다는 3번의 전화를 받았고 마침내 4번째 콜에 성공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남편의 옆에서 “환자가 간 이외의 모든 장기가 대단히 건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을 완벽하게 마칠 수 있었다. 상태가 기적같다”면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렇게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었다.

     갑자기 지난 5년동안 필자에게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밖으로는 주간 포커스 신문사를 음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날뛰었고, 안으로는 남편과 아이들의 먹거리와 집안일 때문에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종종 걸음을 쳐야했다. 힘들고 지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절망 속에서 배어나오는 한숨 소리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었다.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놓은 음식들이 과연 그 사람의 몸에 적합한 것일까, 내가 정한 일상 계획표가 괜찮은 것일까' 하루에 서너번도 더 자신을 의심했다. 하지만 남편은 필자를 신뢰했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미국의 의학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싸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곧 우리는 자녀들을 책임져야하는 부모이기에 서로를 위로하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때론 환자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가족이 약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처음 병을 알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 치료를 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있었다. 병의 증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편의 경우는 결국 장기 이식을 해야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경우는 도너의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간 이식의 경우 남의 간을 이식받으려면 직계가족부터 검사를 해야하며, 검사를 거부하는 가족들은 도너를 포기한다는 편지를 작성해야만이 가족이 아닌 사람이 기증자가 될 수 있다. 더우기 미국 시민권자의 경우는 한국에서 기증자가 될 수 없다. 이처럼 한국은 기증자가 되기 위한 절차도 까다로운데다 장기 기증자 수도 적다.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사상으로 인해,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할 때가 되면 시신 훼손을 꺼려 거부하는 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콜로라도 대학병원의 간이식 수술 성공률이 99% 라는 사실, 기증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미국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의 선택은 옳았다.

     사실 5년전 한국을 가기 전 해에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받지 못했다. 여러번의 전화를 걸어 메세지를 남겨 놓았지만 답변을 듣지 못한 채 1년이 흘렀고, 한국을 나간 김에 건강검진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병원 측은 1년후 확실한 간경화 말기 환자로 돌아온 남편에게 환자 리스트에서 누락되어 혈액검사 결과를 알리지 않았고, 간경변 진단이 늦어진 부분에 대해 사과했다. 그 때도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필자의 선택은 의료진도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달라는 당부 밖에 할 수 없었다. 이후 의료진은 이식 수술까지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의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에 감탄하기에 이르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집도의가 직접 나와 필자의 손을 잡아주면서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켜주기도 했다. 내가 사는 이 곳에 콜로라도 대학병원과 같은 곳이 있어 참으로 영광스럽다. 지면을 빌어 모든 의료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결코 금수저가 아니었다. 온갖 마음고생, 몸고생하면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흙수저들이다. 늘 돈이 부족했고, 늘 바빠서 사랑도 부족했다. 지난 5년동안 우리 부부는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런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눈물로 희망을 품었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필자는 지금 지난 세월 겪었던 여정을 간단하게나마 적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지금 투병 중인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 전해지길 간절이 바란다. 죽음 직전까지 서로를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작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기를. 이렇게 힘들고 어두웠던 시간 속에서 필자의 손을 잡아 준 지인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또, 미국서 보험혜택을 받지 못했던 남편의 약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수 년 동안 택배로 보내주신 한국의 부모님, 특히 비록 성사되지 않았지만 남편에게 본인의 간을 기증하기 위해 그 어렵고 힘든 도너 테스트를 마다하지 않았던 가동빌딩 김동식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귀한 생명을 나눠 준 기증자를 생각하면 차마 감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온몸에 전율이 돋고 눈물이 난다. 그로 인해 야박했던 우리의 마음에도 사랑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살린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 인해 나눔의 행복을 평생 잊지 않고 실천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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