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에서는 마리화나 합법화가 대세다. 콜로라도, 워싱턴, 오레곤, 알래스카, 네바다, 워싱턴DC, 매사추세츠에 이어 새해 첫 날에는 캘리포니아, 5일에는 버몬트가 새로 합류함에 따라 미국에서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는 모두 9개 주로 늘었다.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도 30개에 이른다. 이로써 미국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약 6,400만 명이 마리화나 합법화 지역에 살게 된 셈이다. 오래전 유럽을 여행했을 때가 생각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어둑어둑한 새벽안개 속에서도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다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휑한 기차역 광장 앞에는 휴지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고, 버스 정류장에는 허름한 옷깃을 여민 노숙자들 몇몇이 모여 밤새 못다잔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내 몸보다도 큰 배낭을 짊어지고 예약된 유스호스텔로 발길을 향했는데 가는 길목에는 암스테르담 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공창들이 즐비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홍등가다. 이 곳 공창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유스호스텔을 가려면 반드시 그 홍등가를 지나야 한다. 유스호스텔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여행객들, 특히 배낭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저렴한 호텔이다. 고객의 대부분이 대학생과 젊은이들이다. 이른 새벽에 그 길을 지나갔을 때는 화려한 조명을 보지 못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동네 구경을 나갔는데 열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화끈한 밤을 약속한다는 문구와 함께 대여섯 명의 여성들이 벌거벗은 채 겹쳐 누워 있었다. 그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리화나를 1달러에 판다는 얘기도 늘어놓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에게 마리화나는 범죄였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세계적인 외환은행, 유럽 최대의 어음교환지역, 국제 금융의 중심지라는 지식을 가지고 암스테르담에 들렀는데, 실제 접한 이미지는 달랐다. 암스테르담의 이미지는 문란(紊亂)했다. 그 소년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역전을 돌아 시내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 옆으로 즐비해 있는 상점의 상품들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보기에도 민망한 사진이 박혀있는 엽서와 성인 난감들이었는데, 물건마다 마치 관광 기념품인냥 암스테르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물건을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소년들도 홍등가 앞에서 만난 그 소년과 비슷한 또래였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 이틀 후였다. 그 날도 대충 유명 관광장소를 둘러보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홍등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여성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필자를 보고 꺼려했지만 며칠 째 계속 만나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이죠?” “예…”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는 곧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저렇게 어린 애가 전단지 돌리고, 마리화나 팔아도 되요?”라고 말이다.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다 그래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성이 문란해졌고, 다운타운에는 섹스 박물관까지 있을 정도로 십대들에게도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었다. 정부에서도 성과 관련해 미성년자들을 크게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인들에게만 허용되어야할 문화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청소년들에게도 노출되어 있었다.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모두가 무감각해져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가랑비쯤이야 어떻겠느냐고 생각하지만 가랑비를 계속 맞다가는 옷은 아예 다 젖어버린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과학문명이 1분마다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아이들과 어른들의 생각도 그만큼 동떨어져 버렸다. 과거의 우리에게는 범죄로 치부되었던 마리화나가 미국 최초로 콜로라도에서 합법화 되면서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마리화나를 합법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콜로라도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금 마리화나 천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미국 최대 인구주인 캘리포니아가 ‘마리화나 합법 공간’이 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더 커지고 있다. 샌디에이고, 산타크루즈,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팜스프링스 등을 중심으로 모두 90여 개 마리화나 판매점이 일제히 영업을 시작했으며, 마리화나 취급 업소에서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다 새벽에 매장 문을 열자마자 마리화나를 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만 21세 이상 성인이라면 1온스 이하의 마리화나를 구매, 소지, 운반, 섭취할 수 있으며 구매자는 판매점에서 샘플 흡연도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시민권자 거주자가 아니라면 ‘한 번쯤은 호기심에 해볼까’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내 형법상 대한민국 국민은 마리화나를 사용한 장소가 미국이라고 해도 국내에서 처벌받게 된다. 국내법은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를 결합한 형태로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서 행한 범죄도 처벌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행여 호기심으로 마리화나 흡연, 매매, 소지, 알선 등을 하게 되면 마약류 관리법에 따라 한국에서 엄격하게 처벌받는다. 특히 영주권자도 국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한다. 콜로라도에서 마리화나가 합법적으로 판매된 지 4년째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재도 유해지고 있다. 21세만 넘으면 여행자들도 거주자와 같은 용량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도 마리화나를 피워도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내 마리화나의 대중화에 앞서온 곳이 바로 콜로라도이다.

    마리화나 가게들은 아이들이 “저기 뭐하는 곳이냐, 가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린색의 착한 분위기로 간판을 만들어 놓았고, 이제는 덴버 뿐 아니라 오로라 한인 타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법으로 21세 이상이라고 규정해놓았다고 해도 이를 절대 지킬 수 없는 것이 십대들이다. 주류 언론에 따르면 중학생들 중에도 벌써 마리화나를 접해본 아이들이 20%에 이른다고 한다.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1학년의 아들을 둔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소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한테서 담배 냄새와 다른 냄새가 옷에서 난다는 얘기를 했다.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들이, 거짓말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몰래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민 온 이유는 자식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돈벌이에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 먼 타국에서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문사로 전화한 그 학부모는 다행히 일찍 알아차렸다. 그래서 우리 예쁜 자식들이 마리화나에 병들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마리화나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리화나가 마약, 코카인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고, 흡입이 많아지게 되면 일상생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행위에 무감각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작년 콜로라도내 교통사고 사망자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유 중의 하나가 마리화나에 취해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한 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평생 갈 수 있다. 나쁜 것과 퇴폐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이 되어버린 네델란드의 그 소년들처럼 말이다. 호미로라도 막으려면 자녀에 대한 관심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단순한 관심보다 적극적인 간섭이 필요하기도 하다. 마리화나가 이미 법적으로는 합법화가 되었지만, 우리의 정서상으로도 완벽하게 합법화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올 한해는 한인사회의 십대들이 진정한 녹색지대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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