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크리스마스를 맞아 시애틀에서 알고 지내던 미국 할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할머니가 뜻밖에도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한국 남자를 칭찬했다. 석양이 지고 있을 무렵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타이어가 터져서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동양인 남자가 도로에 서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자신의 차를 세운 후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친절한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걱정스러웠다. 자신을 보고도 아무도 차를 세우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혹시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닌지, 넉넉해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굶주린 듯한 인상이어서 솔직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쩌면 추위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커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차 밑으로 들어가 타이어를 바꿔주었다. 수고비를 주려고 했지만 이 또한 거절했다고. 자신은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와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서 추위에 빨갛게 언 손을 흔들며, 할머니를 배웅까지 해주었다. 얼마나 고마웠지는 모르겠다며 쉴새없이 그를 칭찬했다.

              지난 2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 니말 씨가 주택 화재 현장에서 90대 할머니를 구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할머니가 미처 화재 현장에서 나오지 못한 사실을 알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니말 씨는 결국 할머니를 구했지만 얼굴과 폐 등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3주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니말 씨는 불법체류자였다. 불법체류자 의인 1호인 셈이다. 이에 대한민국 법무부는 니말 씨의 불법체류 벌금을 면제하고 치료비자(G1)까지 내줬다. 결국 그는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지난 4월 김해의 한 순경이 생활고 때문에 고철을 훔치다 붙잡힌 50대 남성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남몰래 생계지원을 해 온 것이 알려졌다. 그는 동파이프와 알루미늄 조각이 사라진다는 신고를 받고 한 달여 잠복근무를 하던 중 공장 창고에서 알루미늄 조각을 손수레에 싣고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오는 50대 남성을 붙잡았다. 순경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미혼인 그가 가족도 없이 시멘트 포장공으로 일하다 전신에 심한 피부병을 얻었고 발가락도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성은 범행을 시인했으며 공장주들을 직접 찾아 사과했고, 공장주들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선처를 당부했다. 조사를 받은 후 돌아갈 집이 없어 막막해하는 남성에게 순경은 긴급생계비를 도와주고, 병원 치료비와 식사까지도 주머니를 털어 해결해줬으며 주말 숙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경찰서를 직접 찾아 순경의 ‘뒷바라지’를 전하며 “아들뻘 되는 형사에게 너무 따뜻한 정을 받았다”며 “열심히 살면서 갚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 폭탄 테러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도운 노숙자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맨체스터 경기장 인근에서 노숙을 하던 한 남성이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현장으로 달려와 부상자들을 도운 것이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들을 지혈하고, 얼굴에 못이 박혀있는 어린이를 구급차가 올 때까지 보살폈다. 그의 용감한 행동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한 시민단체는 그가 지낼 수 있는 집을 위해 온라인 모금사이트 '저스트 기빙'(Just Giving)을 개설했고, 모금액은 순식간에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7월 플로리다 한 해변에서는 피서객들이 힘을 모아 9명의 일가족을 구했다. 로버타 가족은 물놀이를 하던 중 아들이 사라진 걸 알고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갑자기 조류가 빨라지는 구역에서 아들과 함께 갇히게 되었다. 이를 본 나머지 가족 7명도 보드를 타고 나갔다가 다 같이 조류에 휩쓸렸다. 바다의 깊이는 4.5m에 달했다. 이들 가족이 익사 직전 상황이었을 때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한 여성이 남편에게 알려 구조를 요청했고, 그 남편은 주변에 있던 청년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만든 피서객 구조대는 어느새 80명이나 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손에 손을 잡고 해변에서부터 조난한 지점까지 인간 띠를 이어갔다. 조류에 휩쓸려 위험한 상황에 놓였지만, 80명의 피서객들이 만든 인간띠로 전원 무사 구조했다. 보도된 사진을 보면 바다 안쪽까지 간 사람들은 거의 몸이 다 들어간 아찔한 상황이었다. 모두가 합심하지 않았다면 구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하고 있는 아저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상북도 칠곡에 사는 남성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6학년짜리 딸이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중고라도 컴퓨터가 한 대 있었으면 한다면서 통화 내내 말끝을 자신없이 흐렸다. 열흘이 지나서 22만원 정도에 쓸만한 것이 생겼다며 할머니 집으로 들고 찾아 갔다. 들어서자마자 넉넉해 보이지 않는 살림이 눈에 들어왔다. 설치하고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어, 컴퓨터다!' 하며 손녀가 들어섰다. 학원 다녀와서 실컷 하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집을 나선 손녀는 정류장에 서 있었다. 설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정류장에 서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하고 가는 길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한 10분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참으면 안돼?" "그냥 세워 주시면 안돼요?" 패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다. "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리자 하고 담배 한대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가슴 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조석 시트에 빨갛게 피가 있는 것이다. '아차, 첫 생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에 묻었고, 당장 처리할 물건도 없을 것이고,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텐데, 아까 사정 봐서는 핸드폰도 분명 없을 텐데. 아저씨는 아내한테 전화했다. 이차 저차 얘기를 다 했다. 아내가 택시를 타고 그 쪽까지 선뜻 오겠다고 했다. "생리대 샀어?" "속옷은?" "바지도 하나 있어야 될꺼 같은데…"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니 세 칸 중에 한 칸이 닫혀 있었다. "얘, 있니? 아까 컴퓨터 아저씨 부인 언니야." 그 소녀는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챙겨온 물건을 내밀자 소녀는 울기 시작했다.

           부부는 집에 돌아가는 도중 다시 돌아가 봉투에 10만원 넣어서 물건값 계산이 잘못 됐다며 할머니에게 다시 드리고 왔다. 지난 11월에는 전 재산 20달러로 한 여성을 도운 노숙자의 인생이 180도 변했다. 뉴저지 출신의 한 여성이 한밤중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자동차 LPG 연료가 떨어졌다. 차는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몹시 당황했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주유소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노숙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겁이 났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남자는 전 재산 20달러로 기름을 사서 돌아왔다. 한때 구급차 운전기사였던 그는 1년 전, 직장을 잃었다. 이후 여성은 그의 은혜를 갚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2주 동안 매일 음식과 조금의 생활비를 건넸다. 그러나 정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옛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고펀드미’에 조니의 사연을 올려, 모금을 시작했다. 이 사연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금까지 무려 160,000달러라는 거금이 모금되었다. 그는 경제적으론 가난했을지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부유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2018년 무술년 황금개띠해가 밝았다. 올해는 우리 모두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용기, 먼저 미소를 보낼 줄 아는 따뜻함을 가진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포커스 신문도 사건사고가 아닌,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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