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13~15일 사흘간 베이징에서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집단 폭행,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결례, 국빈 만찬 내용 비공개, 문 대통령의 '혼밥' 등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중시했던 주문은 거의 반영되지 않아 ‘무엇을 위한 정상회담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로 인해 ‘빈손 굴욕 외교’라는 비판과 함께 한중수교 25년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지난 13일 베이징에 도착할 때 문 대통령을 환대한 사람은 시진핑 주석이 아니라 조선족 출신 차관보급인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였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왔을 때는 장관급인 '왕이'부장이 환영했었다. 시진핑 주석은 난징 대학살 80주기 추도식에 갔다고 하는데, 이는 문 대통령을 초대해 놓고 부하직원한테 영접을 맡긴 상황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첫날부터‘외교 혼밥’을 하게 되었다.  문 대통령이 13일 저녁과 14일 아침·점심 세끼 연속 중국 인사와 식사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의 3박 4일 방중 기간 열끼 중 중국 쪽 인사와 식사한 건 국빈 만찬과 16일 충칭시 당서기와의 오찬 단 두끼뿐이었다. 중국 서열 2위 리커창 총리는 그날 베이징에 있었지만 문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손님 입장의 문 대통령이 15일 오찬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오후로 면담을 잡았다. 이것이 무슨 국빈 방문인지 납득할 수 없다.

             국빈 만찬은 의전 관례상 시 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문 대통령 내외를 대접하는 자리다. 그에 상응하는 예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양국 모두 국빈 만찬이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진행됐는지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는 '양 정상의 모두 발언이 없다'는 이유로 만찬장에 취재 기자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국빈 만찬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길이 없다. 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정상회담장에서 '국빈'인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동격'인 것처럼 팔을 툭툭 치면서 국제사회의 일반적 외교 규범에도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이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이다. 한국 외교장관이 시진핑 주석을 친구 대하듯 팔을 툭툭 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두 정상은 회담후 의례적으로 있는 공동 성명도 없었다. 국빈 방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만찬 행사는 만 하루 가까이 사진 한 장 공개하지 않다가, 한국 측만 뒤늦게 비공식 촬영한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반면 중국 매체에서는 이와 관련된 보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중국 측은 문 대통령 국빈 방문 사흘 동안 딱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서, 그 모습조차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각각 했다. 발표만 따로 한 게 아니라 내용도 달랐다. 우리 측이 성과로 가장 앞세웠던 '한반도 평화·안전 4대 원칙'도 중국 발표문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수교의 초심을 명심'하며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우려를 존중'하라며 훈계하는 듯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국가 최고 의전이 따르는 국빈 접대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 대통령 수행 기자 집단 폭행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방중 둘째날 중국 경호원들이 한국기자들을 폭행했다. 폭행은 베이징 시내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행사장에서 문 대통령을 따라 이동하던 기자들을 중국 경호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10여 명의 경호원이 기자를 에워싸고 얼굴에 발길질을 하는 등 잔인한 폭행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취재원의 말을 들어야 하는 기자와 경호원 사이의 실랑이는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빈으로 초청받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집단 폭행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중국 외교부는 "누군가 부상을 당했다면 관심을 표명한다"고 했다. '사과'는 고사하고 '유감' 표명도 아직 없다.

            가장 중요한 북핵 문제에서도 우리측은 구체적 대북제재 조치를 거론하지 못했다. 우리측 회담 결과 발표문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데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고 했을 뿐이다.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에 대해서도 꺼내지 못했다. 사드 문제에서 정부가 바랐던 ‘봉인’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시 주석은 “한국측이 이를 적절히 처리하기 바란다”며 3불(不) 후속조치를 거듭 압박했다. 중국의 CCTV 앵커도 문 대통령에게 "3불 이행 약속과 후속 조치를 설명해달라"고 수차례 질문을 바꿔가며 요구하는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참으로 비교된다. 지난달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는 시진핑으로부터 황제의전을 받았다. 시진핑은 자금성을 통째로 이용해 만찬을 열었고, 천안문 광장까지 비워 환대했다. 국빈 만찬 때의 관련 자료와 함께 여러 사진들을 전세계에 공개했으며, 국영 CCTV를 필두로 한 중국 매체들이 영상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트럼프 외손녀가 중국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만찬장 대형 스크린에 나왔고, 이런 장면이 다 공개됐었다. 트럼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머니에 넣었던 손도 뜨끔하면서 빼낸 시진핑이었다. 중국이 우리에게 이런 홀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 대통령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 대통령의 편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것이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솔직한 심정이다. 국빈 방문이자 시진핑 주석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란 국민의 기대감 때문에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들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성과를 거뒀다. 260여 명의 경제사절단을 꾸렸다. SK그룹, 한화그룹, 현대자동차, LG, 삼성전자 등 주요 그룹 총수급 기업인들이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동행했다. 여기서 우리 기업의 미래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이 “책임 있는 태도” 운운했던 과거 발언보다 수위가 낮아진 것도 진전이다. 15일 리커창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양국 경제ㆍ무역부처 간 채널 재가동과 소통 강화를 언급한 건 사드 보복 철회 공식화로도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빈 자격으로 초청된 대통령치고는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했고 결과도 미흡했던 것이 현실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분위기 조성과 북핵 대응 등을 위한 중국과의 협조 체제 구축에 마음이 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일정을 짠 것이 아닐까 싶어 아쉽다. 한 민족의 역사를 보면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언제나 갑질을 해왔다. 최근에는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에게 수 개월간 당해오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다시 해빙 모드로 돌아섰다지만 언제 또 변덕을 부려서 우리에게 갑질을 할 지 모른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해빙 모드로 돌아선 이유는 3불 정책에 있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얼마동안 부드러워질지 확실치도 않다. 더욱이 이는 주권 포기에 해당되며 한미동맹에도 치명적이다. 결국 우리 정부는 집요하게 3불 확인을 요구하는 중국과 주권 훼손에 대한 비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를 낮추고 중국을 높여서 중국의 협조를 얻겠다는 것은 중국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이웃을 아래로 보고 짓밟아온 나라다. 이번 중국의 박대와 기자 집단 폭행은 우연이나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시종 '국빈 초청'의 외교적 관례를 지키지 않았다. 이번 방중의 굴욕은 중국이라는 국가의 오만하고 폭력적인 본성과 한국 정부의 굴욕적 태도, 무리한 정상회담 추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일이다. 시 주석은 두 달 전 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집권 2기를 열면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시대를 열겠다며 이를 '중국몽(夢)'이라 지칭했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 대통령 일행을 불러놓고 벌였던 이 무례한 행태는 우리에게 '중국의 악몽'으로 남을 듯하다. 이번 방문으로 우리 대중외교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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