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딱맞는 표현이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정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여기저기 걸쳐있는 관계들이 많아져서 어느 정도가 가까운 사이인지, 어디까지 자신의 팔로 감싸안아야 하는 사안인지 구별하기 힘들 때가 있다.  얼마전 한 지인이 10만달러가 넘는 돈을 사기당했다면서 울먹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최근에 가깝게 지낸 사람이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에 솔깃해서 아내 몰래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지난 5년간 새벽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세탁소에서 허드렛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이었는데, 6개월만에 최소 두배, 최대 세배까지 부풀려 주겠다는 말에 홀랑 넘어간 것이다. 타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그로서리점들의 청소를 독점한다는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설명회에도 참석해서 사업전망은 믿을 만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하지만 돈을 투자하고 두어달이 지나도 일의 진척이 없었다. 그리고 석달 후 3만달러를 더 보태면 곧바로 일이 진행될 수 있고 아니면 처음에 보낸 10만달러 전부가 날아갈 수 있다며 전형적인 꼬리물기식 사기 전략에 돌입했다. 그는 자칫 힘들게 일해서 번 초기 투자금 10만달러까지 잃어버릴까 두려워 이리저리 빌려서 간신히 3만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에게는 그 어떤 청소 일도, 투자금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투자를 권유한 사람으로부터 한달에 5천달러씩 갚겠다는 각서 한장만 받고 지금까지 속을 태우고 있다. 이러한 사연을 털어놓는 그에게 필자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더니, 그는 어이없게도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어떻게 신고할 수 있겠냐면서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끔 주류 언론들이 소수 민족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보도 성향을 보이는 것 같아 불만을 품을 때가 있었다. 우리의 생활 습관상 고추를 뒷문 밖에서 말릴 수도 있고, 고기를 냉장고에 빨리 넣지 않고 실온의 도마 위에 일정 시간동안 올려놓을 수도 있으며, 행주를 락스물에 항상 담궈 놓지 않거나, 김밥에 제조일자를 일일이 표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모텔을 경영하는 업주들의 입장에서 모텔 종업원이 불친절하다거나, 방 내부가 청결하지 못하다는 신고가 일년에 몇번 정도는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일에 논란의 여지를 두고 주류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할 때면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 웬 호들갑일까? 더 심한 곳도 있을텐데’ 하면서 당하는 비즈니스를 오히려 두둔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에 덴버 포스트지와 9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콜팩스 길의 어느 한인 소유의 모텔은 사정이 달라 보인다. 9뉴스에 따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약, 강도, 폭행, 매춘 등의 범죄가 이 모텔 부지 내에서 혹은 인근 도로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것을 견디다 못해 이웃 주민들이 덴버시에 폐쇄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덴버 경찰은 이 모텔에서 지난 5년동안 230여 건의 범죄신고가 들어왔고, 이중 150여건이 올해 접수되었다며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짜증스러운 말투가 역력했다. 이미 주류언론에 보도된 내용이었지만, 재발방지 차원에서 사실 내용을 기사로 게재했는데 같은 동네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람으로부터 같은 한인들끼리 감싸주지 못한다는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가 봐도 부끄럽고 잘못된 사안을 가지고 신문사로 당당하게 전화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경우는 팔이 안으로 굽어도 너무 굽어 보인다. 무엇보다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모색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몇 년 전에 한인 단체장이 주차된 타인의 자동차를 자신의 열쇠를 이용해 긁은 적이 있었다. 피해차량의 주인이 건물주에게 CCTV에 찍힌 영상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몇 시간 후 범인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피해차량 주인은 흑인이었다. CCTV 영상을 보면 한인 가해자는 자신의 차량을 멀찍히 세워놓고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지나서 건물입구로 들어갔다. 그때의 영상을 자세히 보면 그의 손에는 열쇠꾸러미가 쥐어져 있었고, 그 열쇠를 세워 자동차 측면을 뒤에서 앞으로 쭉 그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무렇지도 않아서 영상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피해 차량 주인은 길길히 날뛰면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건물주의 끈질긴 설득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수리비만 받아내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이 사건은 한인 단체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한 종교기관의 주요활동인사로서 마땅히 지녀야할 도덕성이 결여된 후안무치한 사건으로, 한때 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은 필자에게 “사람은 누구나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를 이해해라”면서 그를 두둔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원죄’와 ‘범죄’는 엄연히 다르거늘 본인의 반성이 전혀없는 상황에서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죄를 덮어 주자는 생각은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가히 파격적이다. 사건 발생 직후 그는 "왜 그랬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줄 돈 다 줬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화까지 냈었다. 그 어떤 반성도 없었다.

         지난주 아이들과 함께 실내수영장을 갔다. 추운 날씨 탓에 실내수영장은 고만고만한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어린이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있는데 옆에 있는 두 엄마가 서로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이들의 딸 2명이 미끄럼틀 출발점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먼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려던 아이의 등을 할퀴어 빨간 자국이 났고, 울면서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자신의 아이를 보고 화가 난 엄마가 등을 할퀸 상대방 아이를 혼내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요즘 아들바보, 딸바보라는 신조어를 종종 듣게 된다. 귀엽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지만, 반대측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는데 앞뒤 사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내 아들은 착하니까 사고치지 않는다. 상대방 애가 잘못한 것”이라며 팔이 완전히 안으로 굽어버린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제 식구 무조건 감싸기 식의 행동은 잘못한 사람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우치고 반성하는 기회를 막을 뿐만 아니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더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재발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정당성도 잃게 된다. 같은 교회나 종교를 가진 사람이어서, 옆집 사람이라서 무턱대고 감싸안을 요량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내 가족이라든지 내가 아는 사람의 주장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상대방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성의 잣대를 이용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혜안도 갖춰야 한다. 필요하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만, 타이밍은 반드시 반성이 선행된 후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안으로만 굽는 팔’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혹시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내가 적정선을 지키고 있는지, 민폐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자기 성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팔을 곧게 뻗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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