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은 원자력 발전소를 더이상 사용하지 말자는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건 공약임과 동시에 취임 이후 바로 실행에 들어간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 지속 여부를 논의해온 공론화 위원회의 결과가 지난주에 발표되면서 그의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종 결론은 건설 재개 59.5%, 건설 중단 40.5%로 건설 재개다.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할 것이라고 점쳐졌지만 결과적으로 19% 포인트나 격차가 났다. 박빙일 것으로 예상됐던 당초 여론조사와 달리 건설 재개가 큰 차이로 앞선 것은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 정책이 가져올 충격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공사 재개가 결정된 신고리 5ㆍ6호기를 제외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현재 24기인 원전을 2038년까지 14기로 감축하며,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의결했다. 즉 정부는 공론화위에서 결정된 신고리 5ㆍ6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계획대로 축소하거나 폐쇄하겠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40년간 우리나라의 전기 발전 역할을 해왔던 고리원전 1호를 폐쇄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 설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 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는 폐쇄하고, 5·6호기 또한 곧 건설을 중지하겠다"며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천명했었다. 하지만 이번 신고리 5·6에 대한 공사 재개 결론이 나면서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자 또한 지난 6월 칼럼을 통해 탈원전 정책은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임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신중한 자세를 역설한 바 있다. 다행히 공론화위를 통해 신고리 공사 재개 결론이 났지만 처음부터 복잡한 에너지 정책을 비전문가들의 단기간 공론화로 결판 짓는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았다. 고난도 수학 문제를 여론조사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의 탈원전 공약은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소수의 환경론자가 주도했다.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총동원해도 부족할 일을 문외한 471명에게 떠맡겼으니 이런 난센스가 없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 안전위원회가 38개월 간 심의 끝에 지난해 확정해 30%나 진척된 사업이다. 이미 1조6000억 원을 투입해 진행한 공사를 대통령 공약이라며 중단하겠다는 정부의 급격한 정책 추진이 문제였다. 원자력 비중을 줄이고 싶다면 경제와 일자리에 충격이 큰 신규 원전 백지화보다는 노후 원전 조기 폐로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탈원전은 새 정부가 들고나오기 전까지 국민적 이슈가 된 적이 없다. 새 정부는 처음엔 주로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위험'의 근거로 든 것은 대부분은틀린 사실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이었다. 당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일본 동해안 여섯 단지 원전 18곳 가운데 지진으로 원자로나 격납 건물이 손상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123층 롯데월드 타워가 규모 7.5 지진을 견디게 설계됐는데 신고리 5·6호는 철근 밀집도가 롯데월드 타워의 20배라고 한다. 안전이 문제라면서 가장 안전한 3세대 원전인 신고리 5·6호기를 못 짓게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위험' 주장이 먹히지 않자 정부는 '원전은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원전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뒷받침해왔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연평균 1600억 달러의 에너지 연료를 수입했다. 이 중 원전 원료인 우라늄 수입은 0.5%인 8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 0.5%의 연료 수입액으로 전력의 30%를 공급했다. 1982년부터 2015년까지 33년간 소비자 물가는 274% 상승했는데 전기 요금은 49%만 올랐다. 원자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또 정부는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LNG와 신재생 발전을 늘린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복잡한 국제 정세에서 LNG 공급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도 러시아의 변덕에 수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즉 탈원전은 에너지 명줄을 다른 나라에 맡겨버리는 길이다. 원자력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도 왜곡이다.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원전이 59기, 발주되거나 계획 잡힌 게 160기, 검토 중인 것이 378기나 된다. 원전 가동 31국 가운데 독자 모델 원전을 수출한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 등 6개국뿐이다. 독일, 영국도 못한 일이다. 원전은 자동차, 조선, IT와 함께 한국이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분야다. 즉 정부는 우리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50년간 노력해 일군 원자력 산업을 내다 버리겠다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반도체처럼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정밀 산업도 원전이 지탱해주는 안정적 전기가 떠받치고 있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공론화위의 신고리 5·6호 건설 재개 결정이 난 이후 문 대통령은 '원전 수출'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원전 해체 기술 수출'을 강조했다. 원전해체 연구소를 설립해 "해외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했다. 탈원전으로 원전 수출이 불가능해질 것이란 지적이 일자 원전 해체 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작은 데다 사업 기간이 15년으로 길고 사업비의 약 40%가 소모성 경비여서 수익성도 낮다. 게다가 원전 해체 시장은 미국·프랑스·독일 등의 선발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적다. 우리가 원전 건설에선 세계적 경쟁력을 지녔지만 원전 해체 기술력은 선진국의 60~70% 수준이다. 연구용 원자로를 제외하면 한 번도 원전을 해체해본 적이 없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41%였지만 유권자 대비 지지율은 32%였다. 전체 유권자 4247만 명 중 3280만 명(77%)이 투표에 참석한 선거에서 1350만여 명의 지지로 당선됐다. 다시 말해 그는 전체 국민의 3분의 1도 안 되는 지지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반대한 59% 국민의 생각을 살피고 배려하는 것이 '41% 대통령'의 의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소수의 처지를 무시하는 것 같은 행보를 이어왔다. 정권 취임 이후 쏟아낸 정책과 인사들은 하나같이 '적폐 신드롬'에 사로잡힌 좌파 노선 일색이었다. 처음에는 신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머릿속에는 보수·우파를 내몰아야 하는 철학이 꽉 자리를 잡은 듯하다. 취임 100일 보고대회에서도 '촛불 혁명'과 '국민 주권 시대'를 여러 번 강조했다. 자신의 당선이 온 국민의 뜻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인사와 과거 청산, 좌파적 정책들은 정권이 바뀌면 다음 정권에 의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자기 정권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은 어쩔 수는 일이겠지만, 나라를 보전하는 안보는 물론이고 임금 인상, 복지 혜택, 탈원전 같은 것은 한번 정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올린 임금과 주어진 복지는 하향이 어렵고 한번 닫은 원전은 다시 열 수 없다. 때문에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에너지 백년대계를 논해야 한다. 대뜸 탈핵 선언부터 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신재생 에너지는 앞으로 연구 개발해야 할 분야이다. 그렇다고 신재생에 몰두하는 에너지 정책은 '신재생은 선(善)이고 원자력은 악(惡)'이라는 환경 운동권의 궤변논리에 사로잡혀 국가 미래를 놓고 도박을 계속할 순 없는 일이다. 아무리 '탈원전'이 대선 공약이라 해도 국가의 사활이 걸린 에너지 정책을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성급하게 추진해선 곤란하다. 점차적인 진행과 구체적인 방안, 국민들의 동의가 병행되지 않으면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10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할 에너지 대계를 5년 대통령이 정해선 곤란하다. 뾰족한 대안도 없이 탈원전에 집착하는 저의가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공론화로 초래된 손실만 1000억 원이다. 한국에서 '탈원전'이란 구호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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