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캐빈의 친구들은 필자의 집에 자주 놀러 온다. 방과 후에도 와서 저녁을 먹고 갈때가 많고, 주말이면 으레 우리 집 지하실에 진을 치고 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계속 집에 있으니 먹을 것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한 두명이 오는 것도 아니고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오다보니 먹을 것을 준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한창 많이 먹는 아이들에게 매번 피자만 시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에븐'이라는 아이가 식탁 위에 놓여진 김통을 가리키면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처음으로 김과 밥을 맛본 에븐은 그 맛에 매료되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김과 밥을 찾았다. 또다른 백인 친구인 에론은 에븐이 흥분한 그 맛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집에 왔다가 역시 소금이 뿌려진 조미 김과 따끈따끈한 밥맛에 흠뻑 빠졌다. 이후부터 필자는 캐빈의 친구들을 위해 별다른 메뉴를 고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캐빈의 친구들은 처음에 “Seaweed and Rice”라고 말했다가 점차 “김하고 밥 주세요”라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배웠냐고 하니까 캐빈이가 우리 집에서는 한국말을 하나쯤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애들은 집에 들어 올 때와 나갈 때는 비록 어눌한 발음이지만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인사한다. 여기에“아줌마, 아저씨”까지 배워서, 이제는 “안녕하세요, 아줌마, 김&밥 주세요”를 연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랑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이 한국말로 말하고, 한국 음식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신나는 일이어서 마트를 갈 때마다 김은 빠지지 않고 장바구니를 채우곤 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친구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캐빈의 한국어 수준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여전히 “Did you 이빨 닦어? Did you 숙제했어?” 라는 브로큰 코리언을 자기 동생과 사용하고 있다. 자기들끼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생활 속에서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아이들은 일상 대화 중에 반은 한국어, 나머지 반은 영어로 말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차츰 영어를 더 많이 쓰게 되면서 결국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진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아마도 캐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올해로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571돌을 맞았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퍼져 있는 외국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영어 남용 사태는 한국이 더 가관이다. 스포츠계는 특히 더하다. 한국의 프로야구팀에서 캐치프레이즈(구호)를 ‘올웨이스 비 위드 유(always B with you)’를 사용한 것을 본 적이 있다.‘항상 그대 곁에 야구가 있다’라는 의미지만 한글을 쓰지 않고 영어로만 구성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어린이에게 꿈을’이라는 한글 구호로 명확하게 뜻이 전달됐던 것과 비교하면 아쉽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구호를 ‘투게더, 리:스타트! 비 레전드!’(Together, RE:Start! BE Legend!)로 정했다. 또, 최근 몇 년간 삼성은 ‘예스, 위 캔!(Yes, We Can!)’ ‘예스, 원 모어 타임!(Yes, One More Time!)’‘예스, 킵 고잉!(Yes, Keep Going!)’등 영어만으로 구호를 정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기아 타이거즈가 사용하는 ‘All new Stadium! All New KIA TIGERS!’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로축구 구단인 부천 FC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자’라는 의미로 ‘Move Forward’를 쓰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일까, 아니면 단순히 영어 좀 하면 있어 보인다는 허세일까.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한글의 문자학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얼마 전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60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공통된 뜻을 가진 문자 내용을 누가 더 빨리 입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한글이 영문과 일문보다 더 빠른 입력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한글 창제의 제자 원리와 관련이 깊다.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 이유를 아는 세계 유일의 문자이기도 하다. 그 창제 정신이 자주, 애민, 실용에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에서는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 상(King Sejoi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는데, 이 상의 명칭은 세종대왕에서 비롯된 것으로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훌륭한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한 한글이지만 정작 한국인들의 한글 사랑은 그다지 깊지 않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지나친 학구열은 가나다보다 ABC를 먼저 배우게 하고, 한국말도 못하는 세살배기 아이에게 영어 만화영화만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은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된다. 조기유학의 열풍도 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또 공문서, 도로 표지판, 유적지 표석 등에도 틀린 글자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의 언어 파괴 현상은 심각하다. 신조어가 난무하고 이모티콘, 줄임말 등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문법상 잘못된 표현, 틀린 맞춤법이 예사로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욕설, 은어, 비속어 사용은 도를 넘어섰다. 하물며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도 뜻이 모호한 영어가 숱하게 등장해왔다.

          이 곳 미국에 살면서 한인 부모들 중에는 한국말을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많은 한인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영어를 먼저 걱정한다. 필자도 아이의 학년이 높아지면서 영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한국어로 일기를 쓰고 한국 동화책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의 영어 읽기, 쓰기 성적은 영어만 사용하는 다른 미국 아이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꾸준한 한글교육이 결코 영어 성적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글날의 유래는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해당하는 날을 추정한 결과, 늦어도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에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이 한글날로 확정되었다. 한글날의 원래 이름은 ‘가갸날’이었다가 일제 강점이었던 1928년‘한글날’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찌됐던 한글날의 지금 날짜인 10월9일은 광복 이후에야 온전히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영어만 잘하는 아이들이 잘나 보이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인들도 모국어를 하지 못하고 영어만 하는 2세들을 ‘바나나’라고 비아냥거린다. 외모는 동양인인데 속은 백인인 아이들의 모습을 바나나에 비유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모욕을 감내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이 미국땅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들의 몫이다. 한국말을 해야 한국식의 사고를 공유할 수 있다. 또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일은 부모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기에 더욱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유한 글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여 곳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한 민족에게 글이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우리는 이에 자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글날을 맞아 글을 못 읽은 국민들을‘어엿비’여겨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의 깊고 높은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우리에겐 ABC보다 가나다가 먼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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