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야구에 미쳐 학교 수업시간에도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 선생님 몰래 이어폰을 꽂고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경기결과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필자는 어느새 열광적인 롯데 팬이 되어 있었다. 간혹 일요일에 사직구장에서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으면 1시간이나 걸리는 야구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야구시즌이 되면 월요일만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야간경기가 있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할 때에도 야간 경기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학원을 빠져 나와 야구장으로 향했다. 한 번은 선생님이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서 몰래 학원 담벼락을 넘다가 담 밑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지붕을 망가뜨려 물어준 적도 있다. 그 뒤로 한동안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지만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악착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야간경기를 관람하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밤 9시30분경이 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학원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과 얼추 맞는다. 이렇게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피해가면서까지 야구에 미쳤던 것은 야구에 대한 매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과 관중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팀을 목청껏 응원한다는 것이 좋았다. 홈 구장에서 경기를 할 때에 사람들은 응원을 하기 위해서 1루 타석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다. 홈 구장 선수단 자리 위쪽이다. 그렇게 앞 뒤로 모여 앉아 응원하고, 기뻐하고, 때론 화를 내고, 그러다가 안면도 익히고, 싸웠던 친구와도 화해를 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끈끈한 동료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설령 자신이 응원하던 팀이 경기에 패했다고 해도 ‘우리 편이 이렇게 많다니…’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찼다.

고등학교, 재수학원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됐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혼자 잠실구장을 찾았는데, 롯데의 홈 구장이 아닌 탓에 지금까지 앉았던 1루석이 아니고 3루석 뒤쪽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홈 구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허전하기도 하고 썰렁했다. 홈 구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함성과 힘찬 응원가도 들을 수 없었고, 그리고 끈끈한 무엇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 뒤로 야구장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기숙사에 마련된 공동 룸에서 동향 애들을 모아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92년도인가,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을 목전에 두었을 때 우리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롯데가 우승했고 우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날의 감동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사실 이 야구에 대한 추억은 오늘 아침, 롯데가 오는 12일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때 사직구장을 개방한다고 밝히면서 생각이 났다. 롯데는 이날 한화와의 홈경기가 끝난 후 사직구장을 개방하고 응원단을 동원해 응원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생각만해도 재미 있을 것 같다.

지난 2002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를 기억한다. 한국 대표팀이 4강까지 올라가는 신화를 쓰면서 한국과 해외 동포사회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필자가 살았던 시애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는 어울려서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니 아쉬웠다. 그런데 다행히 다시 한번 끈끈한 그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포커스 문화센터를 오픈 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해왔지만 이번 월드컵 응원전을 위해 개방할 수 있어 더욱 뜻 깊다. 특히 지금까지 한인사회 역사상 동종업계인 신문사가 함께 행사를 치른 경우가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주간 포커스와 코리아 위클리가 공동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동포화합의 의미도 크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꿈에 도전할 23인의 태극 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포커스 문화센터는 6월12일 토요일 오전 5시부터 개방한다. 새벽 시간이어서 일어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먼 이국 땅에서 함께 모국 팀을 응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오랜만에 우리 편이 정말 많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도 아이들을 데리고 일찍 집을 나설 생각이다. 우리의 응원과 함성이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힘이 된다면, 그깟 잠쯤은 다음날 자도 된다. 응원용 태극기도 준비되어 있으니 태극기 힘차게 휘날리며 응원해보자.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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