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자 단속의 아이콘인 아르페이오 전 마리코파 카운티 경찰국장을 지난 25일 사면하겠다고 전격발표했다가 인종주의 논란이 거세지자 살짝 발을 빼는 척하면서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취임후 첫 사면권을 행사하겠다고 지명한 사람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점은 버지니아 유혈사태가 진정되기도 전에 인종주의 문제에 또다시 기름을 부은 것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무리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악명 높은 아르페이오 사면을 단행하기 위해 "아르페이오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범죄와 불법 이민의 재앙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라며, "조 아르페이오는 현재 85세이며, 지난 50여 년간 국가를 위해 존경받을 만한 봉사를 했으므로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전하며 트럼프의 입장을 합리화했다. 아르페이오는 1993년부터 2016년까지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히스패닉계를 상대로 인종차별적 심문을 벌여 논란이 됐었다. 아르페이오 밑에서 근무하던 경찰관들도 히스패닉 주민들을 ‘망할 멕시칸’, ‘멍청한 멕시칸, ‘멕시코 쓰레기들’ 등으로 부른 것으로 드러났다. 미 법무부는 지난 2011년 그가 불법 심문과 인종 프로파일링(인종에 기반해 용의자를 찾는 수사 기법)을 관행적으로 해왔다는 결론을 내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범죄 혐의점이 없는 불법체류 이민자를 구금해온 관행에 제동을 건 연방지방법원의 명령에 불응한 채 자의적으로 이민법을 해석해 지속적으로 불법체류자를 구금하도록 관할 경찰에 지시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기소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면 6개월 구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여하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후 첫 사면권 행사를 이런 사람을 위해 사용하려 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아르페이오의 인종차별적 행동을 암묵적으로 옹호하고 자신의 지지자를 보호한다는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지난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현재 미국내 인종주의 갈등을 심화시킨 샬러츠빌 유혈사태는 샬러츠빌 시의회가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반대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남부연합군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지난 12일 동상 앞에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등의 평화적인 피켓을 들고 행진 중인 시위대를 향해 자동차 한 대가 무자비하게 전속력으로 질주해 여성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다. 용의자는 히틀러와 나치에 미쳐있는 백인우월주의자였는데, 이들은 링컨과 달리 노예해방을 원하지 않고 백인 우선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리 장군의 동상 철거 결정을 비난해왔다.

          지금 트럼프를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의 내통 스캔들이 아니라 감출 수 없는 극우 본심을 드러냈다는데 있다. 그는 이 폭력시위를 벌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양쪽을 함께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다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인종차별은 악”이라며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듯 했지만 곧바로 다시 “두 편 모두에 책임이 있다”며 말을 바꾸면서 인종차별 세력을 두둔했다. 트럼프가 공공연하게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우호적이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이들은 트럼프의 가장 견고한 지지층이자, 불가능해 보이던 그의 백악관행을 견인해 준 공신세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샬러츠빌 테러는 누가 봐도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집토끼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졸렬한 생각으로 국가지도자로서의 도덕적 책무를 저버렸다. 트럼프의 발언은 성범죄자를 비판하면서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자가 원인제공을 한 측면도 있다”는 식의 궤변과 다르지 않다.  이번 유혈사태를 이끈 KKK(Ku Klux Klan, 쿠클럭스클랜)는 인종차별주의적 극우비밀조직이다. 그들의 역사는 남북전쟁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860년대 남북전쟁 후 연방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급진파들은 해방된 흑인들을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여 내전 이전의 백인들의 권력 구조를 붕괴시키려고 했었다. 이에 흑인들의 정치 참여에 반발한 남부 백인들은 급진적인 지하 저항세력의 중추 조직인 KKK단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1차 세계대전에 승리하고 애국적 보수주의가 전국을 휩쓸면서 KKK 회원 수는 한때 45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2차 대전 후 트루먼 대통령이 군대에서 흑백 차별을 금지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위헌으로  공식 규정하면서 그들의 활동도 제약을 받았다. 이후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활동은 하고 있지만 그 위세가 예전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극단적 자국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트럼프가 집권하자 일부 극우 백인층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얼마전 남편과 함께 시민권 선서를 하러 갔다. 시민권 선서식은 덴버 다운타운 소재 법원에서 열렸는데, 그 날 우리에게 일일히 시민권을 전달해준 판사는 흑인이었다. 그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시민권자가 된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몇명에게 주어졌다. 멕시코 출신의 한 남자는 미국에 와서 29년만에 시민권자가 되기까지 정말 긴 여행을 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고령자인 82세의 스리랑카 출신의 할머니도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통역을 통해 전했다. 버마 출신의 한 남성도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도중에 부모를 잃었지만 그들도 아들이 미국의 시민이 된 것을 기뻐하실 것라고 했다. 이날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36명이었는데, 이들의 출신국가는 무려 19개국이나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그들도 이민자 출신인 백인들이 자신들만이 미국의 주인인 양 행세를 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기에 대통령까지 합세를 한 모양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자 단속은 나름 법을 어긴 이들을 대상으로 미국인들의 권리 찾기라는 차원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백인만 남고 모두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져 있기에 그 의도가 심히 불손해 보인다. 굳이 주인 여부를 따진다면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았던 미국 원주민 인디언만 남기고 백인들 역시 미 대륙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은 다인종국가이며 흑인 노예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아킬레스 건은 항상 ‘인종주의’였다. 공교롭게도 샬러츠빌 유혈사태가 발생한 버지니아는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의 고향이다. 1776년,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고 썼다. 그런 곳에서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들은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와  '지크 하일(승리 만세)'을 연상케 하는  '하일 트럼프'  '하일 빅토리' 를 외쳤다. 과거 악명을 떨쳤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발버둥치는 듯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인종에 관계없이 자국의 국민이 인질로 잡혔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구출해냈다. 그래서 우리는 자국의 국민이라면 무조건 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던 미국이라는 국가를 위대하게 봤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는 흑인이나 동양인, 멕시칸 등 유색 인종의 국민들은 구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미국의 인권을 언급할 때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는 노예를 해방시켰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외치면서 미국은 국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가임을 선포했었다. 그런 링컨이 지금의 트럼프를 본다면 분명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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