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휴간을 맞아 포커스 전직원도 겸사겸사 휴가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새해 계획을 세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7년도의 절반이 지나가버렸다. 우리에게는 한해 계획도 중요하지만 백년 계획을 세워야하는 일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고, 에너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을 공식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 설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는 폐쇄하고,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빨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하면서한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였던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을 영구 정지시켰다. 탈원전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는 후보 시절의 공약 이행을 공식화한 것인데, 대통령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선언이다. 정권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탈핵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2%대인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노후 원전 폐쇄와 원전 건설 중단 등을 통해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약대로라면 한국내 24기 원전 중에서 2030년까지 11기가 설계수명 종료로 폐쇄되고, 추가 건설이 예정된 9기는 백지화된다. 문 대통령은 경주 지진을 통해 우리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 말대로 우리는 국토 면적당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고리원전 단지의 경우, 반경 30㎞ 안에 380만명이 살고 있다. 또, 문 대통령 지적처럼, 그동안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낮은 가격과 효율성만 앞세워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에 대한 고려는 뒷전에 두었다. 역대 정부는 값싼 전기요금과 원전 수출에 대한 기대를 내세워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고, 그 결과 대도시 주변에 세계 최고 수준의 핵발전소 밀집지대를 만들고 말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듯 원전은 한번 사고가 나면 그 피해가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수만년 관리가 필요한 핵폐기물을 내놓으니 원전은 결코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안전관리를 강화할 때 따르는 비용, 핵폐기물 처리 및 관리 비용, 폐로 비용 등을 고려하면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세계 각국에서 탈핵 정책이 확산되는 이유다. 여기에 공감하는 국민도 상당수일 것이다. 물론 안전성만 따진다면 원전을 없애는 것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만 못하다.

            에너지 걱정만 없다면 '원전 없는 세상'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우리는 에너지 자원의 98%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력 공급에 있어서 원자력과 석탄발전을 합치면 전체 전력 공급의 70%나 된다. 최근 미세먼지 발생으로 노후 화력발전소가 폐쇄되는 마당에 원전까지 중단한다면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경제력에서 뛰어난 원자력의 강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전원별 전력 생산단가는 ㎾h당 원전이 48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169원, 풍력 109원보다 월등히 싸다. 정부가 원전 폐쇄에 따른 전력 부족분을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 개발로 대체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열악한 개발 여건에다 기술의 불확실성, 낮은 경제성으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자력 전기를 모두 천연가스 발전으로 대체한다면 LNG를 연간 19조원 더 수입해야 한다. 풍력·태양광은 아직 대용량 에너지를 공급할 능력이 못 된다. 선진국들 사이에 탈원전이 추세라지만 모두 공론화를 거쳤고 우리와는 여건도 다르다. 한국의 전력 수요는 해마다 4.4%씩 늘어나고 전력예비율은 늘 아슬아슬해 급기야 2011년에는 폭염에 따른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의 산업용 전력 요금이 인상되면 일본의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재빠르게 보도했다. 그동안 한국은 원자력발전 덕분에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전기 요금을 낮게 유지했고 이것이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과 투자를 부르는 마중물 역할도 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보고 있다. 일본 산업계 입장에서는 비싼 전기 요금 때문에 한국보다 원가 부담이 높았는데 한국의 전기 요금이 오르게 되면 그만큼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호재라는 것이다. 신문은 한국의 원전 수출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간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아베 총리 집권 후에 원전을 다시 도입했다. 원전 사고를 겪었지만 역시 원전밖에 없다는 이유로 다시 원전 증설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원전 확대 정책을, 스위스·스웨덴은 에너지 확보 수단이 많고 경제 규모가 크지도 않다. 독일의 탈원전도 17명으로 구성한 '안전한 에너지 공급 윤리위원회'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11시간에 걸친 생방송 TV 토론과 의회 표결 과정도 거쳤다. 물론 그 전에도 오랜 토론이 있었다. 그래도 후유증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급증했지만 지난 10년 사이 주택 전기 요금이 78%나 올랐다. ‘원전 대국’인 프랑스에서 전기를 사다 쓸 처지에 빠졌다. 이것이 엄연한 탈핵 선언 국가들의 현주소다.

           에너지 문제는 어느 쪽이든 양면이 있다. 만약 탈핵 정책으로 가면 어렵게 쌓아온 원자력 기술의 맥(脈)이 끊겨 버린다. 다음엔 원자력 산업을 새로 일으켜 세우기도 힘들게 된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수십 년 동안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에너지 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5년 임기다. 어떻게 보면 짧은 기간이다. 할 수 있는 결정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다. 탈원전이나 교육 체계의 근간을 손대는 것과 같은 나라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문제는 5년 임기 대통령이 자신의 선호나 편견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사 밀어붙인다고 해도 5년 뒤에 바로 뒤집힐 수 있다. 무턱대고 탈원전을 추진했다가 안전을 얻는 대신 청구될 전기료 폭탄, 수출 적신호, 전력수급 난제, 단가인상, 일자리 상실, 원자력 기술력 도태 등의 위험부담에도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수출 확대에 초점을 맞추던 원전 업계는 이번 '탈원전' 선언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원전 해체를 위해서는 폐연료봉 처리를 비롯해 방사성 폐기물 관리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원전 1기를 해체하는 데 최장 20년에 걸쳐 1조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단 1개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지금 원자력과 석탄 의존도를 줄인 후 무엇으로 에너지 대안을 삼을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조차 없다. 풍력·태양광은 바람이 안 불고 구름이 낀 날은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 그나마 유럽은 국가 간 전력망으로 이어져 여차하면 이웃 나라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전력에 관한 한 섬나라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탈원전 선언은 듣기 좋은 장밋빛 구호로만 남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핵국가’로의 대전환은 국민 합의가 중요하다.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에너지 백년대계가 시급하다. 대뜸 탈핵 선언부터 할 일이 아니다. 지금 정부는 원자력에 적대적인 시민 단체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임기 후도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탈원전'이 대선 공약이라 해도 국가의 사활이 걸린 에너지 정책을 공청회나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성급하게 추진해선 곤란하다. 물론 환경정책에 맞춘 신생에너지 개발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점차적인 진행과 구체적인 방안, 국민들의 동의가 병행되지 않으면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지금이라도 국회 논의를 비롯해 공론화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얻는 게 마땅하다. 국민이 수 십년 동안 영향을 받을 '원전 중단', 5년 대통령 아닌 국민이 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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