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밀어붙인 인사정책이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으로 제동이 걸렸다. 당초 그의 행보는 신선하고 속도감까지 느껴졌었다. 그의 파격적인 인사조치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충분한 이슈거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이다처럼 시원했던 문 대통령의 언행에 벌써부터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직접 인사 발표와 업무 지시를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대해 ‘사이다’ 국정 운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5월 10일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지명을 직접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도 취임 당일 지시했다. 이후 12일에는 국정교과서 공식 폐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 15일에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과 세월호 참사시 희생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등의 업무지시가 잇따라 나왔다. 17일에는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을 전격적으로 지시하면서 검찰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일에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깜짝 인사’를 발표했다. 이처럼 과감하고 거침없는 국정 운영과 파격적 인사 발탁으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문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이 저 정도일 줄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필자 또한 몇주전 변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와 반가움으로 칼럼을 적었었다. 그러나 취임 4주를 넘기면서 문 대통령은 현실의 벽에 마주한 듯한 모습이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변곡점이 됐다. 낙마에 이를 정도의 하자는 없어 인준을 받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부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 면탈과 부인의 그림 강매 등 몇몇 의혹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주요 쟁점은 부인의 위장전입이었다. 더구나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 이유를 처음에는 ‘출퇴근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강남 학교 배정을 위해서’라고 말을 바꿔 정직성에도 의문을 남겼다. 이 후보자가 아들의 병역 면제 관련 진료 자료를 제출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끝내 거부한 것도 청문회 취지를 흐렸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들의 공직 인사 배제를 공약했다. 취임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면서 비리 공직자에 대한 궐기를 다졌다. 이렇게 호언장담을 해놓고 주요 인사인 총리 후보부터 이를 적용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통하는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임명 12일만에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이유가 건강과 교수 재직시 부적절한 품행에 대한 구설이라는 점에서, 형식상으로는 자진 사퇴지만 사실상 경질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한 4년 7개월여 동안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로 연평균 7900만 원씩 총 3억6100여만 원을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인사 청문회 또한 빨간불이 켜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는 현재까지 채택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가장 시급한 외교부 장관 후보도 문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채용 기준에서 벗어났다. 딸의 위장전입을 인정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야(野) 3당이 모두 '부적격' 입장을 정해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사드 배치 등 외교 현안도 산적해 있기 때문에 현 정부로서는 조속히 외교부 장관을 임명해 일을 진행하고 싶을 것이다. 지난 몇 주간 유리천장을 깨고 파격적이라고 발표된 후보자들은 위장전입, 세금탈루라는 민낯을 보여주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신선한 인사라는 찬사가 지탄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취임 직후였다면 곧 해명에 나섰을 것 같은 문 대통령의 입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탈세 등 의혹이 장관 업무를 못할 정도의 결정적 하자는 아니라며 애초에 공언했던 채용원칙에 대해서는 따져볼 생각이 없어보인다. 지금 집권당이 되고 나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대선 득표율의 두 배를 넘어선 높은 지지율이 말해주듯 정치적 반대세력조차 기대감을 표시하는 상황에서 인사청문회에서의 야당의 비판과 공세가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인사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 혹독하게 정부 인사를 물고 늘어졌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장관 후보자들은 국회 동의가 없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의례적으로 야당 협조를 구하는 모양만 취하고,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다면 여야는 충돌로 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야당시절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야당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인사조치에 대한 문제점은 일단 인물에 대한 판단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국가의 주요 리더가 될 정도의 인물이면 어느 정도 정보가 축적돼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상대방을 탄압하기 위한 용도로 쓰여서는 안 되지만 본인 진술과 몇몇 지인의 평판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정보가 축적돼 있어야 인사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원칙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애초 공직자 배제 5원칙을 정했으면 아무리 탐나는 인재가 있더라도 예외를 두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를 개념치 못한 인사들을 계속 기용하다 보니 제2, 제3의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장고 끝에 장관 후보 11명 중 9명이 대선 공신으로 채워졌다. 지난 대선 때 1000여 명의 교수가 문 대통령 캠프에 합류하고 전직 외교관, 장성, 관료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선거 때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이제 국정 운영을 하는 데는 이들이 되레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선거용과 통치용 인재는 다르다. 지금이라도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시야를 넓혀 인재를 찾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은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 청산과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 공약을 잘 살펴보면 성장과 창출보다 분배와 청산 쪽이 훨씬 많다. 이런 한(恨)풀이식이라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겠지만 국민 통합을 이뤄내긴 힘들다.  정권 초반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문회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엄정한 검증을 해야 한다. 여소야대와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개혁 성과를 담보할 유일한 길은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 그리고 과감한 협치다. 이를 위해 지명한 내각 후보의 철회가 필요하면 선제적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문재인이 넘어야 할 첫번째 장벽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후보 문재인’이다. 더불어 야당측도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검증보다 흠집내기로 위상을 세우려 한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번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현직 대통령의 파면 위에 세워졌다. 갈 길이 멀고, 가야 할 길도 험난하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을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초자연적이고 무결점의 신(神)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 또한 후보자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인사청문회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도덕성과 국정 능력 검증이라는 본령에 좀 더 충실한 청문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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