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난주에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만 봐도 그렇다. 이번 기념식은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가슴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보수정권 9년 동안 제창이 금지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행사의 백미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이 노래를 5.18 기념식에서 제창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해마다 5.18 기념식은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적폐청산을 내걸고 당선된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했다. 1997년에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2003년 정부 주관 첫 공식기념식이 열린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또 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갓 태어난 딸을 보러 완도에서 광주로 왔다가 사흘 뒤 계엄군의 총탄을 맞아 19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사연을 전하며 울던 유가족에게 다가가 “아버지 묘소에 같이 참배가자”며 위로한 장면은 국내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태 이후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끝을 맺자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12.12 사태로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김대중의 석방 등을 요구한 민주화운동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폭도들이 일으킨 5.18 사태로 불렸다가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고, 2011년에는 관련 기록물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2001년 12월 18일을 기준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사망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명에 이른다. 이 투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발로가 되었다.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문 대통령의 인사정책도 남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첩 인사의 실패를 잘 알고 있다. 결국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되어 감방으로 갔다. 인사의 총체적 부실이 방증되었다. 반면 문 대통령의 파격인사는 연일 화제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비검찰 출신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그동안 민정수석자리에는 검찰출신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비검찰출신인 조국 교수를 앉힌 것은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정통 경제관료 출신 이정도 기획재정부 예산심의관을 임명한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측근이 아닌 공무원을 발탁함으로써 권력형 비리의 악습을 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역임한 자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두었다. 이로써 새 정부의 재벌개혁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국가보훈처장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예비역 장교가 임명된 것도 파격적이다. 피우진 처장의 발탁은 여성 공직자를 30퍼센트 기용하겠다는 공약 실현의 신호탄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당 전역에 맞서 싸워 이긴 피 처장의 선택은 인사조치를 넘어 정의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는 '판잣집 소년가장'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예산처와 재정부를 두루 거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임명했다. 또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비고시 출신의 여성 외교관으로서 유엔 기구 최고위직에 오른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깜짝 발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측근인 양정철, 전해철, 이호철 즉 ‘3철’이 문 대통령의 당선과 동시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스스로 권력에서 거리를 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했다. 이 때문인지 정권교체 2주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80%를 넘었다. 자유한국당의 40%도 ‘문재인이 잘하고 있다’ 고 답했다. 또한 대선 과정에서 매일 아침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도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너무 잘하신다. 지금은 문제인 태풍이 분다”며 호평했다.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직전까지 시위에 가담했던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권퇴진과 전교조를 포함한 학원개혁, 등록금 인상 반대 등을 위해서였다. 그때 시위대의 시작과 끝은 항상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필자가 가사를 보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이다. 그러나 좌파나 북한 편에 서서 데모를 하지는 않았다. 우리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당면 과제만을 걱정하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가끔 노총에서 과격한 시위를 할 때는 좌파의 개입을 의심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의도는 그렇게까지 불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어른들의 생각은 “데모는 빨갱이와 좌파들이 하는 것”이라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군부정권의 잔재일 것이다.

         이제는 분열주의를 획책하는 이런 색깔론은 사라져야 한다. 박정희나 박근혜에 대해 비판하거나 이명박이나 기타 보수 인사들에 대한 비난을 가하면 당장 종북이나 친북 혹은 좌파나 빨갱이로 매도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친일파들이 주로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잘 알고 이를 단죄하려는 항일독립투사 출신을 모략하여 살해하기 위하여 빨갱이 사냥을 시작한 것으로부터 색깔론은 이 땅에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과 그 주변에 있는 측근 인사들을 친북이니 좌파니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과거적 일을 문제 삼으려면 박정희 친형의 친일경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순반란사건 당시 남로당 군사부장 시절의 경력부터 의심해야 공평하다.  필자는 대선기간동안 문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다. 그 어느 후보도 탐탁치 않았다. 오래전 박근혜를 응원했었고, 때문에 실망도 컸으며, 그래서 탄핵을 찬성했지만 지금은 법정에 선 그를 보면서 측은함이 크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 국민의 손으로 문 대통령을 선출했으니 아낌없이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이 난세를 헤쳐나갈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인물과 정당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더이상 굴욕스러운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서 안된다. 싸움하는 모습도 더이상 보이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불통의 시대에 질려버린 대한민국 국민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의와 불통의 대통령 시대를 끝내겠다’며 소통과 통합을 강조한 서민 대통령을 천명했다. 가장 존경한다는 세종대왕을 리더십의 롤모델로 정했다. 국민과 눈을 맞추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이다. 그의 다짐이 바탕이 되어 파격적인 인사 단행과 정책들로 현재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희망이 일고 있다. 설렌다. 유래없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는 파국을 맞았지만, 우리는 결국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자랑스런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미국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존경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오랫동안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으로 남길 바란다. 더불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그의 비장한 각오가 훗날 <전국민을 위한 행진곡>도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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