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이틀간 만났다. 이번 회담은 '세기의 담판'이라 할 정도로 개최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두 '스트롱 맨'의 첫 대좌가 국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미국 측에서 지속적으로 북한 선제 타격과 관련한 언급이 나온 상황이다 보니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맥빠지게도 '구체적 행동'에 대한 합의 없이 끝났다. 공동성명은커녕 포장용 언론 공동 보도문조차 내놓지 못했다. 북핵과 미사일에 대해 각자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압박은 예전보다 다소 구체화되어 보인다. 역대 미 정부는 북의 본질을 오판했고 이후에는 현실을 회피해왔다. 오바마 정부에선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북핵을 방치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을 잇따라 제재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 주석을 부른 자리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한 시리아를 공습함으로써 북한이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경우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또, 미국은 회담 직후인 지난 8일 싱가포르에 배치돼 있던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을 한반도 인근 서태평양으로 이동시켰다. 유사시 한반도에 가장 먼저 투입할 전략적 전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하겠다"는 강력한 언급까지 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변했을까. 1989년 북의 비밀 핵시설이 노출되었지만 북을 완충지대로 보는 중국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북은 이를 국제사회의 약점으로 보고 핵과 미사일 능력을 끌어올려 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중 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북핵 해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는 중국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번에도 중국은 한·미 방어 훈련을 북의 위협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았다.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방어용으로, 중국은 공격용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핵실험만 아니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핵을 막으면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우리 기업들만 괴롭히고 있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중국 내 영업은 각종 규제책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화장품 회사들은 봄날을 맞고 있다. 지난주에도 한국 식품들이 생산 날짜와 위생 증명서의 날짜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트집을 잡아 통관을 불허했다. 또 중국국가여유국은 여행사를 통한 한국관광을 금지했으며, 베이징 왕중 국제여행사 역시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한국 상품을 모두 취소했다.

         일본도 한 때 중국의 보복을 받은 적이 있다. 2010년 8월에 중국의 어선들이 센카쿠 제도에서 어업 활동을 하다 적발됐다. 일본 순시선이 데리고 가 재판을 하려고 하니 중국 정부에서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때 중국이 취한 조치가 대륙붕 개발과 10월 UN에서 총리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또 일본이 위험하니 관광을 가지 말라면서, 지금 한국에게 하는 보복 조치와 비슷한 수준의 관광금지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일본의 첨단제품을 만드는데 가장 필요한 금속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고 일본인 관광객이 베이징을 여행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간첩이라며 체포했다. 하지만 일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것을 WTO에 제소해서 이겼다. 그 후 일본은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을 했고, 결국 희토류 수출을 하던 그 중국 기업이 파산하고 말았다. 이어 2012년 센카쿠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겼다. 그때도 일본은 일본 국민, 정치인, 정부, 언론이 하나로 뭉쳐서 중국에 대적했다. 이런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일본에 손 대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대한민국 정도는 압박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핵무기 개발과 전세계 금지 화학무기인 VX까지 사용해 서슴없이 암살을 자행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는 없고, 국가 안위를 위해 사드배치를 하는 한국에만 보복을 가하는 중국이 참 치졸해 보인다. 대국(大國)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무색할 정도다. 이런 치졸함에 당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과 국정농단하면서 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을 뜯어냈다고 하지만, 사실상 한국경제를 망가뜨린 규모는 그 수백억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대북이나 외교문제에서도 그의 무능함은 나라를 망가뜨렸다. 눈에 보이는 과실만으로 대통령의 죄를 판단할 수 밖에 없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히 새 대통령이 곧 선출된다. 지금은 상대방을 물어뜯고 있지만, 대선직후에는 서로를 향한 질타를 중단하고, 우선 중국의 보복조치에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과거 일본의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한 대처를 거울삼아 우리도 중국의 사드배치 보복에 의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은 달라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판이하게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보복하면 중국만 손해를 봤다. 그래서 2년만에 정상화 된 것이다. 일본은 대중 무역 적자국이고 한국은 최대 흑자국이다. 무역관계에서 권력구도는 무역적자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또, 일본은 세계에서 대외순자산이 가장 많은 나라다. 3.5조 달러를 해외에 투자해놓고 있다. 부자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이 규제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 국고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전체가 보유한 채권 대비 18% 비중이다. 중국이 한국 채권을 팔아 치운다면 채권시장에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보복을 다루면서 이구동성으로 수출지역 다변화를 외쳤다. 하지만 이 방법은 탁상공론에 그칠 수도 있다. 제조 인프라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제조대국이 되려면 모든 소재, 부품회사들이 몰려가서 서플라이 체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너무 긴 세월이 예상된다. 지금은 소비재만 딴지를 걸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제품에 대해 비관세 장벽으로 한국제품을 규제할지 모른다. 마늘 파동이 있었을 때 스마트폰 수입을 금지시켰을 만큼 중국은 무모하고 공격적이다. 그때 한국은 곧바로 중국에 굴복했다. 규제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때문에 사드 발사대의 운영은 그리 급하지 않다.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차기 정부에서 사드 논의를 해도 된다. 주한 중국대사가 협상의 문을 열어 놓자고 했다. 외교력을 발휘해서 국익에 유리하게 이용해야 한다. 사드로 애태우면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최대한 국가적 이익을 끌어내야 한다. 한국이 주체적으로 얼마든지 한반도 문제를 이끌 수 있다. 지금은 미국에 온갖 이권을 다 바치는 꼴이다. 그러나 그렇게 굽신거린 한국이 얻은 것은 변압기 철강 등 관세 폭탄이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모두 뺨을 맞고 있는 꼴이다. 이제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이 명확해졌다. 중국에 굽신굽신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리를 취하자는 것이다. 사드 배치는 북한이 제공했다. 따라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가 나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미국으로부터도 받아낼 것도 확실히 챙겨야 한다. 점진적인 사드 배치의 결정은 오히려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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