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 승리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법 절차에 따라 파면되는 첫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날은 국민의 힘으로 국정농단을 심판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새롭게 시작된 날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탄핵사유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점이다. 이정미 소장권한대행은 결정문에서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으며,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를 했다"면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소수의견 없이 이 판단에 재판관 8명 모두가 동의했다. 일부 쟁점에 대한 보충 의견만 첨부되었을 뿐이다. 전원일치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이는 파면 결정에 헌법적·법률적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것으로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음을 뜻한다.

         재판부는 우선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은 헌법과 국가 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고 고시했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함께 774억원을 불법 모금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용을 주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는 부분이다. 예상대로 결국 이 문제가 결정적 탄핵 사유가 됐다. 헌재는 "(이런) 위헌·위법 행위가 재임기간 중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최순실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긴 점' '언론의 의혹 제기를 오히려 비난한 점'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한 점' 등을 통틀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위헌·위법 행위에 대한 헌재의 최종평가는 한발 더 나갔다. 이를 손익계산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헌재는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받은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국가적 손실보다 크다”고 했다. 여기서 헌재는 이익의 크기가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파면시키지 않으면 국가적 손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이 위임한 신성한 권력을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주었으며, 사인을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분노한 민심에 밀린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만들었을 때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 헌재의 추가 설명대로, 공무원을 임의로 파면했다거나 블랙리스트를 은밀히 가동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너그럽게 해석하면 그냥 통치 범위에 속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머리를 매만지고 방에서 어슬렁거렸다고 해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느냐는 도덕적 논란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권력을 은밀히 나눠 가졌다는 사실을 헌재는 적시했다.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대변성과 책임성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보다는 ‘덜’ 자의적이고 덜 강압적이었는데 대체 무엇이 잘못인가? 내가 챙긴 돈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유신시대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치관, 공주로만 살았던 그녀의 인생관에는 진정한 국민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무 차례의 촛불 호소에도 답하지 않았고, 헌재와 특검의 소환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의 탄핵은 역대급 불통시대를 이끈 결과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은 끝났다. 대한민국의 최고 사법기관의 결정에 불복할 수는 없다. 이제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정말 중대한 국가 현안들과 마주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힘 없는 나라, 부패한 나라라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남은 것은 승복과 통합으로 새로운 공동체,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헌재 평결 직후 헌재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태극기 집회 참석자 3명이 숨진 것은 그 과정이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갈등은 컸으나 우리가 법 절차에 따라 매듭지었다는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극에 달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6%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했고, 92%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조사가 발표되었다. 다시 말해 국민의 90%가 탄핵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극소수들의 저항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 석달동안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강조했다. 이때마다 콜로라도에 살고 있는 골수 친박 어르신들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무조건 친박’을 확인했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지만 자기 분에 못 이겨 소문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무조건 비박’을 확인시켜준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지난 석 달간 우리 사회는 탄핵 찬반 세력으로 갈라져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그 사이 나라 밖에선 전에 보지 못한 불길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미국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통령이 취임했다. 과거에 보지 못한 대북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미 통상 분야에서도 새로운 틀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은 사드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 보복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은은 이복형을 암살하고 미사일 도발을 거듭중이다. 일본은 대사를 소환한 채 일언반구 없다. 이처럼 안보와 경제 등의 복합위기가 밀려들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탄핵 반대 세력의 승복이 절실하다. 더 이상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먼저 나서야 한다. 태극기 집회를 이끈 일부 지지자들의 과격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이 나고 이틀 만에 삼성동 자택으로 퇴거하면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밝혀 실질적으로 헌재 결정의 불복 의사를 드러냈다. 탄핵 결정으로 인한 충격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의 결정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이중적인 태도는 끝까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박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심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분열과 갈등은 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18대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제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가 시행된다. 투표일로 5월 9일이 거론되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조기(早期) 대선이다. 비상 선거인만큼 이전의 대선과는 달라야 한다. 지난 석 달간 우리 국민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국민들의 이 깊은 상처를 치유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탄핵을 반대했던 국민도 존중하는 '100%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선출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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