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우리 귀에 들려지는 세상의 소리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거나 분노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만남이 불편하여 숨기도 하고 교제가운데 받을 상처가 두려워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아직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압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덴버에서 남아있는 그루터기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첫번째 사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지나간 시간속에서 제게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자주 생각이 나곤 합니다. 물론 제게 소중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의 향기는 시간을 거치고 나도 여전히 향기를 머금고 있을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주보를 복사하기 위해 교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토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복사를 하러 갔더니 처음 뵙는 한 남자분이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기에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하다보니까 이분은 몇 일전 새로 온 에이전트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 청소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분은 크리스챤이었고 자기가 이 사무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제게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했었지만 정말 저를 무너지게 했던 이야기는 이 부동산의 대표인 교인에게 이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입니다. 이 형제님이 본토에 살 때 그가 살 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어느 동네를 지나던 중 집 앞에 "Born again한 세입자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보고는 그 집에 들어가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 했더니 그 주인이 흔쾌히 허락해 줘서 그 집에 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 그 달 렌트비를 조금 늦게 내게 되었는데 그 주인이 찾아오더니 더 이상 렌트비를 내지 말고 그냥 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이런 주인의 자비로운 말을 듣고서는 일반 사람 같으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하나님이 이런 복을 내게 주시다니, 내 처지와 형편을 아시고 이렇게 예비해 주시다니, 아니면 정말 땡잡았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등등의 생각이 앞섰을 겁니다. 그런데 이 형제는 이런 주인의 배려를 접하고는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이 집은 내가 살집이 아니구나.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이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주인께 이 마음을 전하고 집을 옮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주인이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이웃을 위해 내려놓는 이 형제나 이어지는 사랑의 흐름이 제 영혼을 순간 흠뻑 적신듯 하였습니다. 아직 그렇게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랑의 끝자락 하나라도 잡고 싶은 소망은 여전히 있는 것 만이라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두번째 사람
하와이에서 목회를 할 때 어느 날 교회 소문을 듣고 찾아 오신 성도님이신데 하루는 새벽에 묵상하는 모임에서 당신 이야기를 쏟아내시는데 그 말씀 중 기네스북에 올라갈만한 기록과 특별한 사랑을 품고 사신 이야기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매일 새벽3:30에 일어나 김밥을 싸서 남편 도시락으로 챙겨주신 한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와이에서 리무진 택시운전을 하시는 남편이 운전 중 식사하기가 쉽지 않고 늘 차를 대기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차 안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위해 시작한 이 김밥말이 대행진이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세월이 지나서 어언 27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이 김밥말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운전대를 놓으실 때까지, 건강이 허락될 때 까지, 그리고 남편이 이제 그만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계속 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 김밥행진이 계속될 수 있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남편이 27년간 아내가 싸준 이 김밥을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아하며 여전히 맛있게 감사하며 즐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년에 한번쯤은 그만 두고 싶은 맘에 이제 질리지 않냐고 물으면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전에 워낙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때를 기억해보면 이것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답니다. 그래서 그만 둘 수 없었다는 거죠. 둘째는 27년동안 김밥을 싸면서 이 김밥을 맛있게 먹는 남편을 생각하고 또 종일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조금도 불평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는 집사님의 사랑이 이 김밥 행진을 가능하게 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두 분 사이에 놓여진 김밥에는 이민 생활의 힘든 여정을 걸어오면서 흘려야 하는 눈물이 배어 있었고 두 분이 지니고 살아온 아픈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듀엣과 같은 향기가 묻어 있었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당연한 권리나 주장함이 아니라 이것도 감사하다고 하며 소박한 것을 사랑으로 즐길 줄 아는 깊음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밥솥에서 푹 익어 김이 모락모락나는 흰 쌀밥같은 온정, 거기에 희망의 노란 단무지와 언제나 변치않는 푸른 믿음의 시금치, 이것을 뭉쳐 남편 손에 들려주는 아내의 사랑이 그 김밥에 고소하게 배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세번째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는 이곳 덴버에서 들려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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