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베트남 여성 1명 체포, 다른 용의자 5명은 추적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김정남은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해 독침을 맞고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사망한 북한 남성이 쇼핑구역에서 쓰러졌다. 이 남성이 출입국대를 통과하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김정남의 시신이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병원의 응급실 관계자가 “사망한 북한 남성은 1970년생(김정남은 1971년생으로 알려짐)이며, 성은 ‘Kim(김)’”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간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김정남의 내연녀가 말레이시아에 거주한다는 설이 있었다. 과거 김정남은 2014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같은해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30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1971년 5월 10일 출생했으며,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에게서 태어났다. 김정남은 1981년 스위스 베른 소재 국제학교에서 유학한 뒤 1980년대 중후반 제네바종합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던 선례에 따라 1990년대까지 ‘황태자’로서 후계수업을 받아왔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고 1998년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정보기술(IT) 및 군사 분야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김정남이 낙마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나리타(成田)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었다. 2001년 5월 아들 및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김정남은 이후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마카오와 베이징(北京) 등지를 오가면서 해외생활을 해왔다. 특히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주로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후 김정남이 북한의 권력 세습을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이복형을 암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공포통치’가 자신과 같은 백두혈통까지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된 2010년 10월 일본 TV아사히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며 “(다만) 해외에서 언제든지 동생(김정은)이 필요할 때 도울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의 집권 체제가 굳어진 이후 최근에는 북한 내 정치상황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해왔다. 김정남이 피살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마카오 또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22) 군과 해외공관을 떠돌고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의 신변 역시 위험에 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용의자 1명 체포, 베트남 국적 여성
총 6명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

        한편,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인 베트남 국적 여성이 1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은 “김정남 암살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된 여성으로 간주되는 도안티흐엉(29)을 체포했다”며 “도안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포 당시 혼자였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짧은 치마 차림에 짙은 립스틱을 한 도안은 1988년 5월 31일생으로 출생지가 ‘남딘(Nam Dinh, 南定)’이라고 적힌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남이 김철이라는 명의의 가짜 여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도안의 여권도 가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국내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이 실제 베트남인을 고용했거나 비밀공작원의 언어·태도·습관 등을 오랜 기간 교정시켜 베트남인으로 신분세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도안과 함께 범행을 한 여성 용의자 외에 남성 용의자 4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이들의 뒤를 좇고 있다. 남성 4명이 망을 보고 도주로를 확보하는 동안 여성 2명이 암살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도주중인 남녀 용의자 5명이 북한과 베트남 국적이라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체포된 도안은 북한과의 관련성이나 암살 의도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중화계 매체인 중국보는 “여성 용의자들을 태워준 택시기사에 따르면 이들 중 한명이 자신이 베트남에서 유명한 인터넷 스타이며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왔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5년전인 2012년부터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으며,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을 발송한 적도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15일 밝혔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의)’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로, 반드시 처리해야 되는 명령이었다. 정찰총국 등은 지속적으로 암살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오랜 스탠딩 오더가 집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보고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스탠딩 오더란 명령권자가 한 번 내린 명령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령 취소’를 언급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을 뜻하는 군사용어다. 이 원장은 “2012년부터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 번 있었으며, (이후)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서신을 발송해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응징명령을 취소해주기 바란다. 저희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도망가는 길도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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