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건너편에 앉아 식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남자 넷의 모임이었다. 언뜻 들어보니 포커스 신문사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포커스 신문사가 마음에 안드는 광고주를 사전 통보도 없이 빼버린다며 신문사의 횡포가 하늘을 찌른다고 욕을 해댔다. 이어서 필자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놨다. 그들 중 한명은 필자가 명품 가방만 사고, 명품 옷들만 구입한다며 아주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떠들고 있었다. 또 무슨 말들을 하는지 더 귀를 기울였다. 성질 더러운 마누라를 만난 필자의 남편은 피죽도 한그릇 못 얻어 먹고 사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또 한사람은 필자를 너무 잘 안다며 자랑삼는 분위기도 잠깐 연출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필자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나가는 길에 잠시 그들의 자리 옆으로 다가가 정말 나를 잘 아느냐고 물어봤다. 깜짝 놀란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었다. 지난 10년동안 주간 포커스 신문사는 한두달이 아니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1년 이상 광고비를 안 낸 악덕 광고주 몇 외에는 일방적으로 광고를 뺀 적이 없다. 비록 체납이 많이 된 광고주라 하더라도, 정해진 기한까지 광고비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부득이하게 광고 게재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하는 공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필자에게는 제대로 된 명품백이 하나 없다. 그리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종종걸음으로 과일 쥬스에 아침, 점심, 저녁, 도시락 3개, 아이들 간식까지 만들고 나서야 출근한다는 것은 실제로 필자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아는 나의 일상이다. 그런데 어째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인냥 근거없는 거짓을 사실처럼 떠들어대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근거로 포커스 신문사를 비방하고 개인적으로 필자를 뒷담화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날 필자를 처음 대면한 그들의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하는 얘기를 그냥 주워 들었다는게 그들의 변명이었다. 필자를 잘 안다고 허세를 부린 사람은 필자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애꿎은 물만 계속 마시고 있었다. 하기야 ‘서울도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그 말이 딱이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척을 한다는 뜻이다.

        왜 사람들은 일명 뒷담화라고 하는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일까? 콜로라도 같이 작은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김 아무개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하면 일주일 후에 김 아무개는 벌써 죽어 있을 정도로 왜곡과 비난이 난무한 곳이다. 작은 동네일수록 소문은 오해를 낳고, 심지어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뒷담화는 오해의 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뒷담화를 즐긴다. 얼마전에 주유소를 팔고 새로운 사업체를 찾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잘하는 부동산 브로커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김모 부동산은 사기꾼이고, 이모 부동산은 인간성이 덜 됐고, 박모 부동산은 잘난척을 해서 싫다고 했다. 나름 친한 사이라고 하면서 모인 친목회에서도 험담은 계속된다. 김씨는 코수술을 하고 난 뒤에 얼굴이 더 이상해졌고, 이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하더니 한국가서 보톡스 맞고 와서 싹 바뀌었다고, 박씨는 남편 잘 만난 탓에 평생 일도 안하고 돈만 쓰면서 살았으니 그런 팔자도 없단다. 배가 볼록 튀어나온 여자들이 딱 달라붙는 레깅스 바지를 입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의 험담도 만만치 않다. 김씨는 맨날 술집만 들락거리더니 술집 여자와 눈이 맞아 이혼했고, 이씨는 재산도 없으면서 큰소리 뻥뻥치는 허세가 작렬이고, 박씨는 배신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절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요주의 인물이고, 정씨는 평생 마누라 두들겨 패고 살았는데, 돈복은 있더라 면서 무심한 하늘을 탓하는 험담도 등장한다.

       과연 이들이 정말 떠들어내는 것처럼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이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험담을 통해 상대방을 끌어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평가를 높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인간의 험담을 이용한 연구도 있었다.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험담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신용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마디의 험담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신용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일의 욕구불만이 가슴속에 침전물처럼 쌓여 심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까지 도출됐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험담이 어느 정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때와 장소를 가린 어느 정도의 험담은 인간관계를 깊게 하고 더욱더 발전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하며, 우울증도 극복해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험담은 생활의 필요악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찰하면 뒷담화에는 단순히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싶다는 욕구가 담겨져 있어 때로는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무대나 영화 장면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자신의 아픔이 등장인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화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다. 험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험담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묘한 공범의식이 자리잡으면서 서로 친밀감이 형성되고 마음의 응어리도 어느 정도 풀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험담이 남을 낮춰야 자기가 높아진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에 제멋대로 살을 붙여 재미거리로만 둔갑시키는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나를 아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제일 쉬운 것은 남의 허물을 얘기하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나의 외모를 제대로 보는 것도 내가 아니라 남이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의 원판도 보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역상만 볼 수 있다. 그만큼 자신에게 객관적일 수 없다. 험담은 지나치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된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 왜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왜 그리도 질투가 나고 배가 아픈지, 우리 안에는 분명 악마와 천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진정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남을 비난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내 선택이 지혜로울 수 있도록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인격의 절반은 완성한 셈이다.” 이미 습관화된 험담을 갑자기 없애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험담 세번에 한번 정도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간관계인 만큼, 기분 좋게 험담을 받아주되 뒷담화는 말그대로 대화 뒤에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남의 상처가 반드시 나의 위로가 되는 것만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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