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트럼프가 기조연설에서 내보인 국정철학은 첫째도 둘째도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였다. 그는 외교와 대외통상에서 강력한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펴 나갈 것을 재확인했으며, 취임식 직후 밝힌 국정기조도 모두 ‘미국 우선’을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에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미국 우선 외교정책, 일자리 창출과 성장, 미군 재건, 법질서 회복,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을 6대 우선과제로 공개했다. 하지만 트럼트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한 각계 반응은 혹독했다.

       트럼프가 연설에 할애한 시간은 16분 정도였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5분가량 짧았다. 그러나 연설 곳곳엔 살벌하고 직설적인 단어들이 쓰였다. 그의 취임사에는 화합과 감동, 책임이 빠졌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을 기득권과 욕심 많은 외국에 희생된 빈곤한 우범지대라고 규정했다. “엄마와 아이들은 빈민가에서 가난에 허덕이고, 나라 전역에 묘비처럼 버려진 공장들이 있고, 범죄와 갱단과 마약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잠재력을 훔쳐갔다. 미국의 살육(carnage)은 이제, 여기서 멈춘다”라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력이 그동안 미국을 ‘대학살’ 또는 ‘살육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어 온 오바마 대통령 부부나, 90년대 미국을 책임졌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전 대선후보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는 오바마 부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화합의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핵심코드인 감동이 빠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무엇을 해줄지 생각하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지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며 냉전과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희망’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취임사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전무했다. 책임도 빠졌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 무조건 바꾼다’ 라고 외쳤다.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또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을 어떻게 포용하며 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트럼프의 취임사에 대해“전임 대통령의 취임사에 자주 등장했던 자유, 정의같은 단어들이 빠지고 ‘살육’이라는 단어를 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주간지 뉴요커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암흑의 연설’로 표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취임사라기보다 집회에서나 나올 만한 연설이었다”고 혹평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백인들에게 집중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폄하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처음부터 끝까지‘미국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선’이라는‘미국 우선주의’였다.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의 시대가 개막함에 따라 세계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그는 국경을 닫고, 보호무역을 하고, 미국이 우선인 외교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은 이미 공언한 대로 탈퇴하고 무역협정으로 미국에 해를 끼치는 국가에는 “철퇴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 후보자에게 무역협정 위반사례를 전부 찾아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공약을 그대로 옮겨 10년간 일자리 2500만개를 만들고 연 4% 경제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법 질서 확립을 위해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 지우기도 바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행정명령으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 폐지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백악관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에너지 개발을 줄이던 전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뒤집고, 미국 내 셰일가스, 원유, 천연가스 생산을 늘려 수입을 줄이고 미국인의 에너지 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전세계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는 와중에 가장 긴장하는 것은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안보·통상 등 모든 분야에서 대중(對中) 공세를 강화할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해왔다. 중국의 팽창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하나의 중국’ 흔들기를 시도했으며, ‘힘을 통한 평화’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미·중 통상 충돌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경제팀은 중국과의 ‘불공정 무역’을 바로 잡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중국도 맞대응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취임식 후 중국 관영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 “무역 세금 이민 외교정책과 관련한 모든 결정을 미국인과 미국 가정의 이익을 위해 하겠다” “두 가지 간단한 원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라. 미국민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등 미국 우선주의 원칙이 담긴 부분을 부각시켜 소개하면서 앞으로의 험난한 미중 외교관계를 전망했다.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심 우려하면서도 일단 상호 간 협력을 강조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본 언론은 “국제 질서와 세계 경제의 앞날에 우려를 높이는 출범”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 우선주의에는 일본 우선주의로 대항하는 수 밖에 없다”는 과격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의견을 전하는데만 급급했을 뿐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대해 눈에 띌만한 소신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맞아 한국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우선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튈까 우려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황이 어지러울수록 우선 한·미 동맹의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대결 구도가 첨예화될 때 모호한 중립은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국강병이다. 국론을 통일하고 국력을 배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때다. 대한민국에 부국강병이 실현되어, 우리가 ‘대한민국 우선주의’를 외칠 때마다 미국의 파워만큼이나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두려워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축제처럼 치러져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이러한 전통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취임식이 진행된 워싱턴 DC에는 취임식 참석자보다 반대 시위에 나온 미국인들이 더 많았다. 그간의 자업자득이다. 트럼프는 상대편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증오를 확산시키는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 결과 인종·종교·계층·성 차별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켜 취임식 날조차 거국적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85%의 지지율을 받으며 취임한 것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제 그의 정책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쩌면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트럼프 시대에 혜택을 받을 일이 의외로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비난보다는 동조와 화합의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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