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지르고 보자’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필자의 생활철학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필자의 생활은 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집안의 모든 결정은 군인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야만 진행이 되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약간의 반항심이 가미된  생활철학이었을 수도 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내가 대학을 서울로 올 수 있었던 것도, 공부 한다고 방학때 집에 내려가지 못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것도,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 2차를 통과하고도 면접날에 보따리를 싸서 아프리카 탐험대에 합류한 것도, 돈 벌면서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태평양을 건넜던 것도 모두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됐었다. 덕분에 많은 도전을 해냈지만, 이렇게 일을 저지를 때마다 깨달은 것도 있다.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떠벌리고 저지르는 것도 좋지만 끝맺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벌써 12월에 접어 들었다. 올 한해는 주간 포커스에게는 뜻깊은 해였다. 망한다, 망한다 했던 세월이 10년이 지났고, 지금은 번듯한 기업체로 성장한 포커스 신문사를 보면서, 이 곳 언론사에도 한인사회에도 참으로 많은 도전들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 2009년, 포커스 신문사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1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콜로라도 유력일간지인 락키 마운틴 뉴스가 파산했다. 당시 락키 마운틴 뉴스지가 상황을 발표하면서 덩달아 덴버 포스트지 또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언론사들의 경영악화 실태가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했었다. 이 파산신청과 함께 매각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신문사가 자사 신문을 통해서 자신의 파산을 발표했다는 일이다. 그리고 신문사가 문을 닫으면서 락키 마운틴 신문 대신 덴버 포스트지를 받아볼 수 있고 환불도 가능하다며 자세한 정보를 웹사이트를 통해 꼼꼼히 알려준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인사회는 많이 달랐다. 

       포커스가 창간할 무렵 덴버에는 9개의 신문 및 정기간행물이 발행되고 있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연예스포츠, 콜로라도 타임즈, 신호등, 복스 코리아나, 크리스챤홈, 주간중앙, 주간저널까지. 여기에 포커스까지 가세를 했으니 그야말로 콜로라도는 한인 신문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포커스와 콜로라도 타임즈만이 남았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슬그머니 문을 닫았다. 락키 마운틴 뉴스처럼 문을 닫는다는 공지를 낸 신문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구독료에 광고료까지 떼먹는 신문사도 있었다. 속이 곪아 터질 때까지 태연한 척하면서 구독을 강요하고, 광고료까지 받아 분별없는 일을 일삼았다. 복스 코리아나는 더 어이가 없었다. 문을 닫는다고 해놓고는, 또 복간을 한다면서 두어달 부스럭거리더니 소리소문없이 또 사라졌다. 내일 문 닫을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 신문사를 비방하고 폄훼하더니, 닫을 때는 돈 떼먹고 사라져버린 것이 우리 한인사회의 신문사들의 마무리였다. 신문사는 책임감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언론사의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될까 걱정스럽다. 실수를 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는 한국일보가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신문이었다. 한국일보에 입사하려면 학벌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트 집단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의 최고봉에 있었던 한국일보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1면에 大統領(대통령)이라고 써야하는데, 犬統領(견통령)이라는 한문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한자의 큰 大(대)자 오른쪽 위에 점이 하나 더 찍혀 개 犬(견)자가 되어 버렸다. 개통령이라는 말이다. 다음날 신문에는 ‘견통령을 대통령으로 정정한다’ 는 기사가 나갔다. 필자 또한 언론사에 몸담은 20여년을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물론 포커스도 지난 10년동안 실수가 더러 있었을테고, 그때마다 바로잡으면서 포커스 팀원들은 힘을 합쳐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신문 제작의 응당한 절차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태도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 원칙은 한주한주 만들어지는 주간 신문의 마무리 작업에 투입된다. 

         이제 우리는 2016년을 잘 마무리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칭찬은 보태고, 잘못은 인정하면서 주변에 깔아놓은 빚도 정산하면 좋을 듯싶다. 인간관계의 정리가 가장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배신과 참담함을 금치못하며 연일 집회를 열고 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는 40년 지기로, 박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그를 부추겼고, 대한민국의 예산 책정, 장차관 인사, 문화융성이라는 이름으로 수천억을 주물렀으며, 내놓으라는 대다수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딸과 조카는 부정 입학, 친척과 지인은 다양한 사업체로 각종 이권을 누렸다. 최씨는 청와대 비서실에도 호통치며 명령을 내린 대한민국의 천하를 주물러 온 대통령 위의 대통령이었다. 이 결과 박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안과 친박계의 하야 건의를 동시에 받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기 못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지금 새누리당의 친박근혜계가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하면서 탄핵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의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퇴진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는데다, 탄핵 소추안의 발의가 임박해지자 박 대통령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급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친박 핵심들이 퇴진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만으로 박 대통령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모셨던 박 대통령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박 대통령은 공부 열심히 할 필요없고,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할 필요 없으며, 오직 줄만 잘 서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걸 일깨워준 역사상 가장 무능력한 대통령이지만,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당한 국민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한번은 제대로 된 마무리를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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