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조롱당한 충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노련한 국정 운영은 못 해도 반칙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 최소한 원칙을 세우는 개혁 정도는 추진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40여년간 한낱 아녀자에게 휘둘려온 정황들이 봇물 터지듯 밝혀지면서 그의 정치적 자산은 공중분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필자는 그의 하야(下野)에 한표를 던진다.  종합편성채널 방송인 JTBC가 지난 24일 일명 비선실세로 밝혀진 최순실씨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200여 개의 파일을 분석해 박 대통령의 중요 연설문과 국무회의 발언, 청와대 인사 발표문 등 44건을 공개했다. 모두 공식 발표 이전에 최씨 컴퓨터에 저장됐으며, 최씨가 수정한 흔적은 물론 실제 연설문에 반영된 사례도 발견됐다.

        사건은 지난 7월 문화재단 미르 K 스포츠 재단이 재단설립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8백억원에 이르는 돈을 걷었는데, 이에 청와대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국정농단을 한 최순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지난 10월 최씨의 최측근이 “최씨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고 JTBC 와 인터뷰한 것을 시발로 최씨의 비리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결국 박 대통령이 TV 화면 앞에 섰다. 최순실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25일 취임 전은 물론 취임 후 상당 기간 최순실씨에게 ‘연설과 홍보’에 관한 의견을 물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이는 박 대통령 스스로 최씨가 연설문을 계속해서 수정했음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도 안 돼 최씨가 연설·홍보만이 아닌 국정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각 언론 보도로 무더기로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 인사 관련 서류, 북한 관련 정보가 최씨나 그 측근 사무실에서 나왔다. 정부 차관이 최씨 측근에게 수시로 이력서를 보내며 인사 청탁을 한 사실도 드러났으며, TV조선이 확보한 동영상에서는 최씨가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대통령의 옷 제작을 지휘하고 있었다. 최씨가 국정 자문위 비슷한 모임을 여러 개 운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거의 매일 밤 논현동 사무실에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각 수석실 보고 서류를 들고 왔고, 최순실씨가 그걸 읽어보면서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최씨와 최씨 측근의 비선 모임에서 장관을 만드는 것까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이후 가장 곤혹을 치룬 이는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얼마전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한 탓이다. 하지만 그는 봉건시대까지 들먹이며 결단코 사실이 아님을 강조했지만, 결국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로 이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봉건시대’ 발언은 대국민 조롱거리로 길이 남게 되었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과는 육영수 여사 서거 후부터 인연을 맺으며 언니 동생 사이로 40년지기의 인연을 맺어왔다. 요 얼마 동안 밝혀진 최씨의 천박한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다. 최씨는 “학교 결석하지 말라”고 지적하는 딸아이 선생님한테 돈 봉투와 쇼핑백 들고 쫓아갔으며, 대학 지도교수까지 찾아가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막말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권력형 치맛바람으로 130년 역사의 명문 사학인 이화여대를 쑥대밭 만들었다. 이렇게 자란 딸은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라며 교만의 끝을 보였다.

         이 엽기 모녀의 대형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랏일 한다는 명분으로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수백억짜리 재단을 만들어 막대한 뒷돈을 축적했다. 청와대를 굳이 들락거리지 않아도 최씨가 강남에서 끼리끼리 아는 사람 몇 불러다 놓고 국정을 논의하고 청와대 자료며 인사 파일까지 보고받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박 대통령의 4대 국정 지표 중 하나인 문화융성 관련 세부사업을 짜고 사업별 예산까지 책정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TV 조선은 2014년 중반 최씨측이 만든 5개의 문서에 12개 사업, 1800억원대 예산이 적혀있었고 문화창조센터 건립, 한복패션쇼 등 상당수가 이미 집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것을 확인했다. 또, 최씨가 최근 바뀐 정부와 국가정보원 상징 선정에 관여했다는 등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문양에 ‘변형된 태극’이나 용(龍) 등이 들어 있어서 일각에선 이를 ‘무속’ 측면과 연결하고 있다. 국정원도 지난 6월 18년간 써온 상징을 교체했다. 일각에서는 용 문양이 있는 미르재단 상징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3년 2월 박 대통령 취임식 당시 진행된 ‘희망이 열리는 나무(오방낭 복주머니)’ 제막식 행사도 무속 신앙과 관련지어 거론되고 있다. 오방낭은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음양오행 원리에 따라 만든 전통 복주머니이다. 최근 공개된 최씨의 태블릿PC에서 ‘오방낭’ 초안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됐다. 뭔가 무속 신앙과 관련된 냄새가 풍긴다. 이들 사이가 무속신앙을 매개로 엮여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하게 최순실로부터 철저하게 농락을 당한 이유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최순실은 6명의 부인을 둔 최태민의 다섯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이다. 최태민이 누구인가. 그는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의 교주였다. 최태민이 40년 전 박근혜에게 접근한 것도 바로 이 사이비 종교를 매개로 했다. 비명에 간 육영수 여사의 현몽을 들먹이며 박근혜에게 접근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상식의 차원에서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닌 사이비 종교에 미친 한 아줌마가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며 40년간의 인연을 배경삼아 CF 감독, 호스트바 직원, 팔선녀들과 함께 밀실에서 국가 예산을 주무르고, 자신의 재산을 늘리고, 장관들을 호령하며, 국가 사업을 추진해왔다. 청와대 참모진이며 정부 부처는 허수아비이고, ‘최순실에 의한, 최순실을 위한, 최순실의’ 정부가 되어가는 것을 박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검찰도 부끄럽다. 3개월 가까이 핵심 혐의자의 도피, 관련 증거의 은닉과 폐기를 결과적으로 도운 셈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지난달 29일 고발장을 접수시킨 이후로도 한 달 가까이 좌고우면해왔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한국과 독일의 최씨 사무실과 거처를 취재하고, 쓰레기통까지 뒤지며 그나마 남아 있는 물증들을 찾아냈겠는가. 최씨는 해외도피 57일만에 지난 월요일 한국으로 돌아왔고, 검찰 조사중 긴급 체포되었다. 그러나 ‘진짜 규명은 이제부터’라고 할 정도로 밝혀야 할 의혹이 많다. 최종적으로 검찰의 몫이다. 짜고치는 ‘정치쇼’는 더이상 용인될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위기는 북한이나 중국, 일본 때문이 아니라 오직 박 대통령의 우매함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최순실 의혹을 덮기 위해 개헌이라는 국가적 사안을 이용하려고까지 했다. 지난 몇년동안 필자는 지인들과의 의견마찰을 불사하면서까지 박근혜 정부를 믿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 인한 배신감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국내외 성난 민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마저도 상실했으며,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다. 국민을 우롱한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와 개각 단행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의 권력 서열 1위에 최순실을 올려놓은 책임은 확실히 져야 한다. 선택은 하나다. 하야(下野)만이 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심을 추스릴 수 있다. 대통령의 빈자리가 생겨 또다른 권력 구조가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한낱 돌팔이 무녀보다는 부족할 리 없다. 무능한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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