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두 달을 남겨놓고 있군요. 이맘때면 늘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참 속절없이 간다는 것입니다. 이민 생활은 더 빨리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 지는 것 같군요. 그럴 때마다 제 자신 스스로에게 충고도 해보고 위로도 해 봅니다. ‘야, 조금 느리게 가도 돼!’, ‘참 많이도 바쁘고 애 많이 쓰며 달려 왔잖니?’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해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작’한다는 것과 ‘마무리’한다는 것 사이는 그 경계가 모호할 수 있지만 그런 간격을 스스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삶의 활력과 심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뒤 돌아 보면 금년 한 해에도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매이게 했던 것들, 앞으로도 나를 매이게 할 것들, 그래서 목사이기에 한 구도자로서 평생 그것들에 매여 살게 될 것만 같은 마음 과 ‘삶의 우상’들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자리 잡은 ‘생활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 우상들에 사로잡혀 살다보면 한 쪽만을 중요시 여긴 나머지 다른 한 쪽의 가치와 소중함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금년 한 해, 아니 한평생 그렇게 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늘 남습니다. 나도 한국인이기에 한국 사람들의 심성 속에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생활 우상’들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크기’의 우상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큰 것’을 선호합니다. 제 속에서도 늘 이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큰 차’ ‘큰 집’ ‘큰 교회’등등. 우리네 현실은 거대담론과 물신주의가 팽배합니다. ‘큰 것’아니면 눈을 돌리고 모두들 큰 것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큰 것’ 옆에는 항상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있습니다. ‘큰 것’에 눈을 떼지 못하면 ‘작은 것’의 가치와 소중함,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작은 것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나는 귀머거리요 장님이라는 생각에 귀가 열리고 눈이 떠지는 기적을 위해 기도합니다.

         둘째는 ‘외모’의 우상입니다. 외모, 외형,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강조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명품을 입으려고 하고, 성형수술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람은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처럼 되어버렸고 결국 가벼움과 경박함의 문화들이 미스메디어를 장식해 갑니다. 그리고 전염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내면에는 '못 생긴 것'에 대한 갈망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가 '못 생겼다'고 하던 것들이 결코 못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못 생김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 바꾸어 이야기하면 연약함 속에 들어있는 강인함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변으로 밀려나있던 '못 생긴 것'을 통해서 '희망'을 보는 사람들, 신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소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잘 생겼다' 혹은 '못 생겼다'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난한 자들, 떠돌이들, 병자들, 여성들, 어린이들 그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못 생긴 것'들 이었지만 오직 예수님의 관심은 그 '못 생긴 것'들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못 생긴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속도’의 우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느릿느릿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빨리빨리’가 한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정말로 빨리 가고 있는 것일까요? 더 빨리 가고자 해서 벌어졌던 슬픈 과거들을 우리는 참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 와우아파트 붕괴, 참 많이도 무너졌습니다. 산을 오를 때에도 천천히 가면 빠른 걸음으로 갈 때에 보지 못하던 수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숨도 가쁘지 않습니다. 산행의 목적이 정상탈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을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가는 길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 풀 한포기에 눈길을 주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지요.

         이렇게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큰 것’, ‘잘 생긴 것’, ‘빠른 것’들 이라는 ‘삶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이제는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들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껴보며 살고 싶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큰 것, 더 예쁜 것, 더 많이 빠른 것이 신앙보다 위에 있고, 추구해야 할 가치보다 위에 있음으로 인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율배반적인 말 같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것이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못생긴 것이 결코 못 생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느린 것이 결코 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금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잃어 버렸던 것들, 놓쳐 버렸던 것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눈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반쪽 마무리가 아니라 온전한 마무리가 되겠지요? 잃어버렸던 다른 한쪽의 소중함, 그리고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치들, 그 곱디고운 아름다움들을 향해 귀가 열리고 눈이 떠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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