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포화 속으로>라는 한국 영화가 덴버에 개봉했을 때, 우리는 시놉시스와 출연배우를 따지지 않았다. 단지 한국영화가 덴버에서 상영된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71명의 학도병의 위대한 희생을 그린 실화였는데, 차승원과 빅뱅의 탑, 권상우 등 유명배우가 대거 출연한 영화였다. 한국 영화 전문 배급사인 ‘JS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가 덴버에서 <포화 속으로>를 상영한다면서 본지에 협조를 요청했을 때 필자는 개인적으로 배급사가 콜로라도까지 신경을 써 주어서 기뻤다. 그리고 뉴욕, LA, 아틀란타 등 큰 도시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가 덴버에도 온다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포화 속으로> 이후 4년 동안 덴버에서 한국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대도시에 비해 그다지 흥행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컸다.

         이렇게 우리가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을 무렵, <변호인>이 덴버 상영을 결정했다. 이 때가 2014년 2월이었다. 한국영화의 최고 흥행 배우인 송강호, 김영애, 조민기 등 한국에서 잘 나가는 배우들이 모두 나오는 영화였고, 참으로 오랫만에 이 곳 극장을 찾은 한국영화여서 우리 한인사회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으며, 이 <변호인>을 기점으로 덴버에 한국영화의 상영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8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명량>이 들어오면서 콜로라도에서 한국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명량대첩’을 그린 전쟁액션대작이었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해상 전투와 스펙터클한 액션을 스크린에 담아내고, 명품배우 최민식을 통해 이순신 장군을 새롭게 탄생시킴으로써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에서도 개봉하자마자 7백만을 돌파하면서 흥행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던 명량은 당시 미주에서도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는데, 이곳에서도 그랬다. 오로라 센츄리 극장은 총기사건 이후 가기를 꺼려하던 한인들이 많았지만, 명량을 보기 위해 할 수 없이 오로라 극장을 찾았을 정도로 명량의 인기는 대단해 연장 상영까지 결정했었다.  <명량>과 약 1주일 정도 개봉 시기가 겹친 영화 <군도>도 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백성을 착취하는 탐관오리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모인 의적의 대결을 그린 <군도> 역시 오로라 센츄리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군도>에서는 민초들을 수탈하는데 앞장서는 무관 ‘조윤’에 강동원, 그에 맞서는 백정 출신 의적 ‘도치’는 하정우가 각각 열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2015년 새해가 밝자마자 <국제시장>이 덴버 상영을 확정지었다. <국제시장>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그 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 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 그려냈다. 그 옛날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잃어버린 동생을 되찾은 장남 덕수, 그의 이야기는 한국전쟁,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과 같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한 눈에 보여주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영화, 황정민이 펼치는 눈물 폭탄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아, 아직까지도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상영된 한국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라는 여운을 가지고 있다. 배급사측에서는 <국제시장>부터 오로라 극장 말고, 다른 극장을 원했다. 많은 한인들이 총기사고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여론을 접수한 탓이었다. 그래서 포커스는 한인들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의 아라파호 극장을 적극 추천했다. 이때부터 시범적으로 아라파호 극장에서 상영을 했는데, 국제 시장의 다음 영화인 <암살>에 대해 오로라 센츄리 극장에서 상영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오로라 극장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단절되었고 아라파호 극장에서 한국영화의 전부를 상영하고 있다. <암살>의 영어명인 ‘어쌔신’의 제목이 총기 사고가 난 극장에서 상영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그해 8월에 <암살>, 9월에 <베테랑>, 2016년 1월에 <히말라야>, 2월에 <좋아해줘>, 7월에 <부산행>, 8월에 <인천상륙작전>과 <터널>, 그리고 지금은 <밀정>이 상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한국영화들이 자주 상영될 때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국내 2개의 영화배급사측은 덴버 상영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한인 인구가 많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콜로라도는 영화배급사 입장에서 본다면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곳은 분명 아니었다. 영화관 정보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필자는 배급사측에 한인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오로라와 덴버 메트로 지역의 영화관들의 리스트를 정리해서 보냈고, 광고비와 상관없이 적극적인 홍보를 약속했다. 늘 부랴부랴 보내온 영화포스터는 덴버용이 아니어서, 신문사에 도착하면 이곳 영화관 주소를 타이핑해서 별도로 프린트해, 이를 각 마켓이나 식당 등에 일일이 나가서 붙였다. 커다란 홍보용 영화 스탠딩 포스터도 필자의 남편이 영화관으로 들고가 직접 설치를 하곤 했다. 이처럼 포커스 신문사가 지난 3년동안 제일 노력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영화의 덴버 상영을 정착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영화에 대한 반응이 시들한 것 같아 염려스럽다. 변호인과 명량까지만 해도 영화 포스터를 붙히고 있으면 “이 영화 너무 보고 싶었다. 여기서도 상영하냐”면서 수선스러운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그런데 <좋아해줘>와 <터널>은 상영 일주일만에 영화를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자주 영화포스터를 붙히는 바람에 “또 한국영화를 하나보네”하면서 일상처럼 넘기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덴버에 한국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것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개봉한 후 첫 주가 가장 중요하다. 이왕 보러갈려면 첫 주에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첫 주의 관람자 수에 따라 연장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배급사측에서도 상영 첫 주에 보러갈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필자는 새 영화가 들어올 때마다 흥행에 실패해서, <포화속으로> 다음에 있었던 긴 공백기간을 갖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배급사측에서도 흥행 실패가 잦으면 포스터나 홍보물을 일일이 택배로 보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콜로라도 한인사회는 앞으로 적어도 몇년동안은 재미와 상관없이 덴버에서 상영되는 한국영화를 지속적으로 봐야하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덴버를 일년 내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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