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열릴 때면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동질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을 응원한다. 비록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인이며, 영원히 한국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금은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한창이다. 16일 현재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로 종합 10위에 머물고 있다. 올림픽이 22일까지 열리니 그전에 메달 몇개는 추가되겠지만 종합 순위가 확 올라갈 확률은 낮다. 한국의 역대 올림픽 최고 기록은 4위로 안방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88 서울 올림픽이었다. 또,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한 저력도 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의 참가국 수는 206개국이다. 이 많은 나라 중에 10등 안에 들면 상위 5% 정도 되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같은 조그만한 나라에서 상위 랭킹을 이어간다는 것이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리우 올림픽에서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 양궁 대표팀은 올림픽 역사에 기리 남을 만하다. 남녀 단체전, 개인전 모두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정말 장하다. 특히 여자양궁 한국 대표팀은 단체전 결승에서 러시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올림픽사에 남을 8연패(連覇)의 위업을 이뤘다. 한국의 여자양궁 단체팀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우승했다. 그동안 세계양궁연맹은 한국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기 방식을 바꿨다. 쏘는 화살 수를 줄였고, 세트제 승부도 도입했다. 하지만 한국양궁협회는 규정이 바뀌면 곧바로 새로운 훈련 시스템을 찾아내 적응했다. 이번 대표 선발전에서 슛오프(동점 시 마지막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것) 경기의 배점을 높인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또 런던 올림픽 직후 시작된 ‘과학화’를 통해 선수들의 정신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도 이번 대회에서 결실을 봤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의 대역전극 또한 대단했다. 펜싱 남자 에페 개인 결승전에서 기적같은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따낸 박 선수의 긍정 주문이 지금 인터넷에서는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고 되뇌인 주문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동시득점이 인정되는 에페 종목의 특성상 경기 후반 4점을 역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박 선수는 마침내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격의 진종오 선수는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193.7점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세계 사격 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다. 결선 9번째 발에 6.6점을 쐈지만, 마지막 10발 중 8발을 10점대 과녁에 침착하게 명중시키면서 왕좌를 지켜냈다. 진종오는 이 종목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에 이어 사격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속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또 진종오는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따내 양궁의 전설 김수녕(금 4 은1 동1)과 함께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됐다. 이렇게 15일 현재 대한민국은 양궁에서 금메달 4개, 펜싱과 사격에서 금메달 각각 1개를 따내 총 6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썩 좋지만은 않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8강진출에 실패했고, 기대했던 세계랭킹 1위인 배드민턴 남자복식의 이용대와 유연성 선수까지 8강에서 무너져 결승진출에 실패했으며, 여자 핸드볼의 예선탈락, 금메달 기대주였던 레슬링의 김현우의 동메달, 대거 메달을 기대했던 유도마저 은메달 한개와 동메달 한개에 그쳤다. 우리의 마린보이 수영의 박태환은 출전부문 모두에서 예선탈락을 했으며, 남은 1500m는 아예 출전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참담한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야유와 빈정거림을 보내는 네티즌들을 보면서 참으로 야속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이들 선수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2016년 상반기 최고의 한국영화라고 평가를 받은 ‘4등’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 이름은 준호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번번이 4등에 그치는 초등학생 수영선수다. 아들을 시상대에 세우고 싶은 엄마가 뛰어난 코치를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는 말 그대로 극성이다. 아들의 매사를 관리하는 것도 모자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의 성적을 올리고 싶어한다. 그 즈음 준호 엄마는 아이들의 순위를 올려주는 실력이 대단하다는 전 국가대표 출신의 코치를 찾아가 준호를 부탁한다. 그러나 아이 성적에 안달하는 아내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러게 취미로 시키라고 그랬잖아.” 남편의 말에는 순위가 최우선이고 시상대 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세상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다. 코치한테 맞고 난 뒤 2위를 차지한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매맞은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만년 4등에서 2등을 차지한 기쁨을 내색했다. 그리고 준호의 부모는 아들의 성적을 위해 그 체벌을 감수할 것인지 망설인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는 1등이 아니면 대접받지 못하는 비정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의 장혜진은 4년 전 4등으로 런던행 올림픽 티켓을 놓친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4년 후인 올 봄, 리우 올림픽 양궁 대표팀 최종 선발전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3등으로 태극 마크에 턱걸이한 장혜진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고는 4등으로 아쉽게 탈락한 강채영을 찾아가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점수 차이는 단 1점. 강채영도 지난해 양궁월드컵에서 3관왕에 오른 실력자다. “국가대표 되기가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한국 양궁은 이렇게 매번 잔인한 봄을 빚어냈다. 스물아홉 살 장혜진이 대표팀에 뽑힐 수 있었던 것은 명성에 기대지 않는 양궁의 공정한 시스템 덕분이었다. 공정한 원칙 덕분에 어제의 4등이 오늘의 1등이 되었다. 그리고 4등을 믿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모든 선수들의 땀을 보았다. 비록 순위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야유해서는 안된다. 실수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의지에 박수만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올림픽은 자존감을 잃고 흙수저, 금수저 논란에 빠져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올림픽 영웅들의 ‘캔두이즘(Candoism·뭐든 할 수 있다)’이 주는 울림도 컸다. 메달을 목에 건 영웅들 뿐만 아니라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 모두에게 어려움을 딛고 대한민국의 대표주자로 뛰어 준 것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립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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