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모두 잘 아시지요. 당연히 이겨야 하는 토끼인데도 한없이 느린 거북이에게 달리기 경주에서 졌습니다. 왜일까요? 거북이는 오직 하나만 바라보고 인내하며 끊임없이 쉬지 않고 푯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자신의 경쟁 상대인 거북이를 바라봤습니다. 한없이 느린 거북이를 보니 자만심이 솟아나 여유를 부리고 중간에 잠을 자게 되서 지게 된 것입니다. 거북이 역시 토끼를 바라봤다면 그 경주를 포기 했을 것입니다. 결코 따라 잡을수가 없음을 알기에.... 이처럼 성도들도 오직 푯대이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사단이 아무리 우릴 넘어뜨리고 공격해도 사단 바라보지 말고 세상에 도움 청하려고 세상 바라보지도 말고 오직 우리의 푯대이시고 대장되신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성도들이 넘어지는 이유가 '나는 이렇게 했는데 저 사람은 왜 안 해! 라는 생각으로 사람 바라보니까 넘어집니다. 희생하신 주님 바라보면 그 사람을 향한 판단이 아니라 긍휼의 중보가 대신합니다. 그러면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사랑하는 대상을 늘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닐까요? 주님과 사귀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과 사귀십니까? 주님과 데이트 하십니까? 주님과 사랑 하십니까? 과거의 우리의 모습은 사단의 종으로 살면서 그와 관계를 맺었었지만 우리를 그 올무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과 이제는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귀는 삶이 기독교의 삶입니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바울 사도의 고백과 같이 오직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 유명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았기에 나 역시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향하여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복 받기위해 하는 모든 봉사, 헌신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 이런 행위는 기독교가 아니라 세상 종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거저 받은 그 사랑의 힘이 나를 봉사하게 하고, 희생하게 하고, 헌신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핍박한 것은 예수 믿는 자 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핍박한다고 하십니다. 빛 되신 주님을 만나 눈이 멀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일단계 신앙의 단계입니다. 사울도 이것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 다음 그가 가진 첫째 질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 예수님을 깨닫기 소원하는 마음, 그분과 사귀기 원하시면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실패의 원인이 주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작이고 기초인데 이 기초가 바로 서지 못하기에 넘어지고, 자빠지고 떠납니다. 사울이 가진 두 번째 질문이 '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이까?' 주님께 구한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얻은 해답과 관계 회복으로 순종하며 소명과 사명을 이루어 나갑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도움 구하는 삶 이것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면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이러한 자가 천국 생활하다가 천국 갑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통로는 오직 십자가입니다. 이 천년 전의 십자가 사건을 보지도 못했고, 그때에 있지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현실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보고, 믿고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살인자였던 사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예수님을 만났기에 가능했습니다. 창녀가 변하여 거룩한 여인으로, 사기꾼이, 세리가, 강도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종교인들은 완벽하게 율법을 지켜내기에 힘씁니다.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심에 자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의가 드러나면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닌 종교인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자랑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속에서 기독교와 종교인의 삶이 잘 나타납니다. 완벽하게 살았다는 자기 의를 가진 자보다 자신이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은혜로 살아감을 깨닫는 겸손함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독교의 삶입니다. 인간의 선행을 아무리 쌓아도, 의로움을 쌓아도 결코 갈수 없는 길이 하나님과의 멀어진 굴곡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 십자가로 다리를 놓아주신 분이 땅에서 천국까지의 길을 놓아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또 나를 위하여 지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실패 하게 될 것이요, 어려움을 자처 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과 사귀십니까? 주님을 사랑 하십니까? 주님과 동행 하십니까? 이 질문 앞에 네! 네! 네! 라고 대답하시는 모든 분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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