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계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 각당의 공천을 받기 위한 몸무림이 한창이다. 매시간마다 바뀌는 정당의 입장을 뉴스로 정리하는 것도 힘들고, 당리당략에 의해 공천을 받은 후보도, 버림받은 후보도 서로에 대한 비난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어 요즘은 한국 뉴스를 아예 접하기가 싫어진다. 더구나 새누리와 더민주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한 88명 중 미주 교민은 한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한국 정부에 대한 교민들의 서운함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각 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되는대로 이번주부터 총선 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이 ‘전과 기록’이다. 공직선거법 제49조 4항은 후보등록 신청자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가운데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의 범죄경력에 관한 증명서류’를 들고 있다. 실효된 형도 포함된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의 범죄 경력’의 법정 약칭이 ‘전과 기록’이다. 멱살만 잡아도 벌금 100만원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사소한 범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치계의 의지로 분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 라인은 솜방망이가 된 지 오래다.

      선거법이 후보 등록과 함께 전과 기록 제출을 의무화한 것은 2002년 3월 개정 때부터였으니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아니라 ‘금고 이상의 형’이 전과였다. 국회가 법을 매만지면서 ‘전과’를 들먹여 자신이나 동료를 옭아매는 것이 내켰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감히 맞서지 못하는 국민적 공분이 있었다. 폭력 조직이 정치판에서까지 어슬렁거리는 것을 참다 못해 전과기록 제출 법제화 여론이 점화된 것은 1996년 1월 초의 일이다. 조폭 두목이 서울 용산구 의원으로 변신한 뒤 그 지위를 이용해 나이트클럽 등 검은 사업으로 범죄조직을 비호해 온 전말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그 해 1월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공직 선거 출마자들에 대해 국민이 충분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후보의 전과 기록 공개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분명히 밝힌 것도 이러한 국민의 공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거법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2000년 2월의 개정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가 ‘금고 이상의 형’ 기록의 마지못한 공개를 거쳐 2010년 1월 선거범죄, 정치자금법 위반 범죄 등의 ‘100만 원 이상 벌금형’으로 그 범위를 조금 넓혔다가 2014년 2월에 지금처럼 ‘100만 원 이상 벌금형’으로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회의 정의(正義)는 느려도 보통 느린게 아니다. 그래도 전과 기록 공개가 지금으로선 극히 자연스러운 의례가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4년 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의 전과자 비율은 20%였다. 이번주 후보 등록 마감 후 전과 비율은 얼마나 될 지 사뭇 궁금해진다. 평범한 일반인은 살면서 일생에 한번 경찰서 가기도 힘들다. 법을 어겨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교통사고로 인한 도로 교통법 위반이나 동네 싸움에 휘말린 폭력 처벌법 위반 선에서 그친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예비후보자들은 전과자 564명에 범죄 종류만 해도 200여 가지가 넘는다. 물론 똑같은 전과자라고 해도 그 내용은 다르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국사범이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을 받아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반면에 타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폭행과 방화 등의 강력 범죄자도 8명이나 된다고 한다.

      법을 만들고 지키며 솔선해야 하는 공직자가 되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범죄를 저지른 예비 후보자들도 보인다.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공문서 위변조자, 음주운전, 타인의 재산에 해를 입히거나, 사기죄, 횡령, 장물 취득범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과자, 특히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면을 받는다. 선거법을 어겨도 4명 가운데 1명은 사면을 받았고, 복권된 비율은 더 높다. 선거사범 가운데 절반이 복권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니, 부정 선거를 치르다 적발되어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복권되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실형 선고를 받았을 경우에는 석방되고도 5년 정도 지나야 사면을 청할 수 있고, 프랑스는 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사면을 하지 않고 있어 한국보다는 처벌의 수위가 강력하다. 그렇다면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한국의 공직자들과 비슷한 인격적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단체장이 아닐까 싶다. 실지로 한인회장의 선출 과정에는 이런 요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려면 3년이내 파산 선고를 했거나 금고 이하의 형을 받은 자, 혹은 제명 및 해임된 전적이 있으면 입후보할 수 없다고 회칙에 명시되어 있다. 즉, 전과 기록 없이, 최소한의 사람됨이 증명된 인사만이 단체장 후보라도 될 수 있다. 반면, 조용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도덕적 기준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영주권’은 아니다. 이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불법 체류자는 범죄자와는 경우가 다르다. 비록 영주권이 없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때문에 영주권이 없는 사람도 한인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그리고 범죄자가 아닌 이상 영주권의 유무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영주권이 있건 없건 확인절차도 없이 무조건 영주권이 없거나 불법 체류자라고 매도해 괴소문을 퍼뜨리고, 영주권을 눈으로 직접 봐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황당한 말을 입에 올리는 자들이 있다. 이 좁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특성상,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모략을 꾸미는 일은 전과 기록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런 인간들이야 말로 이민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없는, 한인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다. 영주권과 이민국을 들먹거리며 한인사회내 불안을 조성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다면 그나마 인격적 심사를 통과한 한인회장이나 간부들이 나서 척결해야 한다. 또한 사기 전과 기록을 가진 이들이 한인사회에 들어와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것 역시 한인회의 직무유기이다. 물론 한인회가 그 많은 사람들의 전과기록을 일일히 다 조사할 수는 없겠지만, 빤히 보이는 전과 기록의 보유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을 내버려둬서도 안된다는 얘기이다. 한인회는 다른 단체들과 차별된다. 말그대로 한인사회를 위한 대표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인사회의 현안을 잘 들여다보고, 범 동포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근원자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어 한인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일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한인회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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