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두가지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번째는 대한민국의 안보이고 두번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이념의 틀인 ‘역사 교과서 개정’건이다. 사실 이는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은 별 성과없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쳤다. 그러나 깨달은 점도 있다. 미국이 예전의 동맹국이 아니고, 중국이 겉으로 보이는 만큼 우호적이 아니며, 일본이 한국의 논리를 절대 받아드릴리 없다는 사실이다. 그 한 예로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국제적 규범 위반 사항에 “한국도 목소리를 낼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의도적인 외교적 일탈이다. 과거 같으면 설사 회담 내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해도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하더라도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중국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달라고 공개 주문하는 것은 힐난에 가깝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연일 내뱉고 있으며, 미국 언론들은 사드 배치 문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등을 조명하며 한국의 친중 행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특필하고 있다. 이에 오바마까지 나서서 한국을 은근히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이것은 분명 미국의 변화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만큼 한국을 채워줄 것도 아니다. 중국은 한국을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우호교류의 천 년 역사를 이어가자”고 했지만 우리는 침략과 종주의 역사를 기억할 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인연은 기억에 없다. 최근 중국이 EEZ 재조정을 통해 이어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 가시화 되면서 그들의 ‘침략적인 천 년의 버릇’이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언제나 뒤통수 담당이다. 변한 것은 없다. 위안부 문제의 ‘조기타결을 목표로’는 그냥 방치해두겠다는 말의 또 다른 외교적 표현일 뿐이다. 일본은 언제나 그랬지만 관민이 때를 맞춰 적절히 상반된 목소리를 내는데, 어떤 쪽이 진심인지 늘 헷갈리게 한다. 정부는 여전히 신사참배하고, 위안부 책임 없다고 하고,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하는데 민간인들은 ‘사죄한다’, ‘일본 정부의 개헌 반대한다’는 등 엇박자를 놓는다. 무엇보다 일본이 미국의 비공식 대변자인 양 행세하고 미국 또한 일본의 그런 역할을 방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 옛날의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아님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외교와 안보체제가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댔다. 아마 이 싸움은 박 정부가 사할을 건 싸움이 될 듯하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좌파와의 싸움을 계속해왔다. 이석기 의원의 단죄, 통진당 해산, 그리고 이번에는 역사 교과서 개정건이다. 하지만 반대가 만만하지 않다. 역사 교과서 집필 과정의 논란이 거센 가운데 한국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현행 검정 체제에서 국정으로 바꾸는 교과용 도서 구분안을 지난 월요일 확정 고시했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는 국가가 만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 배포된다.
지금의 역사 교과서는 검정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 검정화란 각 출판사마다 허가가 내려오면 서로 다른 내용을 교과서에 실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국정화는 정부가 인정한 내용만을 교과서에 싣게 되고, 그 교과서를 전국에 모든 학생이 공부하며, 그 교과서에서만 수능 문제가 출제된다. 따라서 정권에 따라 즉, 대통령이나 여당의 역사의식에 따라 한국사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다양한 역사책이 없는 상태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 교과서만을 배우게 된다는 데 문제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국정화를 주장하는 측은 한국사를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 경종을 울릴 수 있으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실제적으로 검정 교과서들의 문제는 이번 논쟁 과정에서 확인됐다. 집필진과 그들이 쓴 교과서 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좌편향되어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북을 찬양하고 남을 비하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너무나도 분명한 6.25전쟁의 책임마저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하고, 남북 간 38선의 잦은 충돌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라 정부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는 반면,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의미를 부여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왜곡 전달하고 있다는 등이다. 즉 정부측은 이 나라의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가 자랑스러운 성취의 과정이 아니라 실패로 얼룩진 역사라고 가르치는 현행 교과서와 교육 현장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에서 잘못되고 왜곡된 내용은 걸러내야 하지만 다른 생각, 다양한 시각까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필자의 소견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자칫 독재로의 귀환이라는 의미를 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현재 검정 교과서의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국정화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파의 대응도 아쉽다. 지금까지 야당과 반대세력은 ‘국정교과서=친일, 독재 교과서’라는 선동적 논리만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야당은 지금의 검정 교과서들을 좋은 교과서, 올바른 교과서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 그렇다면 야당은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기에 앞서 정부가 제시한 검정 교과서들의 수많은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해서 국민을 설득하는 게 옳다. 박 대통령은 “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국론을 통합하는 길이다. 아직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믿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박 정부는 만약 국정교과서가 잘못 만들어진다면 더 큰  분열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 사이에 한번 믿고 맡겨봐도 될까라는 분위기가 생겨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