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라는 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모나코가 한 개의 국가인 줄 몰랐다. 단지 프랑스 남부의 작은 휴양 도시쯤으로 생각했었다. 프랑스 니스 시에서 모나코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반대편으로는 이탈리아 국경이 마주하고 있는데 이 또한 10여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서 ‘국가’가 아니라 조그마한 도시라고 생각하기 쉬운 곳이다. 화창한 날씨의 모나코는 필자의 추억의 사진첩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기억된다. 모나코를 들린 이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몬테카를로 카지노와 해양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레이스 켈리 왕비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영화배우에서 한 나라의 왕비가 되기까지, 비록 비운의 죽음을 맞긴 했지만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 그레이스, 그녀의 나라이기도 하다.

공식 이름은 모나코 독립공국이다. 나라의 면적이 얼마나 작은지 한국의 행정구역 ‘구’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다. 인구 또한 3만여 명 정도로 이곳 콜로라도의 한인 사회와 비슷하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때로는 프랑스에 소속되어 험난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살고 있는 영토를 자랑하려는 자신감이 오늘날의 모나코를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토에 대한 자신감은 가질 만 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아 있지만, 더욱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한 택시기사와의 만남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줄지어 서 있는 택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변 풍경 때문인지 이런 모습도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한국에서 줄지어 호객하는 영업용 택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모든 택시가 벤츠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살던 필자는 벤츠 자동차를 보고 위압감이 느껴졌었다. 한국에서는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벤츠 자동차가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잡아탈 수 있는 택시로 위상이 격하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아무리 택시라고 해도 벤츠인데, 요금도 비쌀 것이라는 생각에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서 왕궁과 박물관을 구경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고, 박물관 앞에서 주차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허름한 반바지에 커다란 배낭을 매고 길바닥에 앉아 지도를 보고 있는 필자에게 그 택시 운전사는 택시를 타겠냐고 물었다. 돈이 없다는 말에, 그는 “택시비는 아주 저렴하다”면서 “모나코를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기분좋게 대하면 이후 그들은 모나코를 대접받았던 장소로 기억하게 되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택시를 타는데, 택시가 모나코 관광의 시작이다. 택시가 벤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면서 온화한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지중해를 바로 앞에서 굽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 모나코, 이 나라가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이런 마음 때문이다. 면적은 작지만 보기 드문 특징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관광휴양지로 손꼽히게 되었고 나라 크기를 훨씬 능가하는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모나코는 3만여 명 밖에 되지 않는 국민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자치 국가이다.

여기 콜로라도의 한인 사회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속에서 하나의 자치 커뮤니티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자치 커뮤니티라고 해서 미국사회와 동떨어져서가 아니라 융화하되, 한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들의 자랑을 널리 알리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화합을 위한 진통을 겪을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약간의 과장이 들어간 자랑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얼마전 한 식당에서 본 진경이다. 미국 사람들과 함께 온 한인이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말은 이랬다.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MSG(인공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 안 좋다,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조미료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먹고 나면 하루 종일 속이 안 좋다. 가격이 저렴해서 좋아하고 있는 미국인에게 재료가 중국산이니까 다른 걸 먹는 게 좋겠다”면서 미국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한인을 보면서 우리의 것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새삼 알게 됐다. 우리끼리 하는 말과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특별히 나쁘지 않으면 우리 음식에 대해서 물어보는 외국인들에게는 좋다고, 맛있다고 말해주면 된다. 우리나라 음식뿐 아니라 모든 나라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와 재료에 대한 의문은 항상 가지고 있다. 굳이 부정적인 부분만 골라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히 한국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음식뿐 아니라 교육도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도 칭찬하는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 굳이 우리가 나서서 험담할 필요는 없다. 한 은행에서 한국의 잘못된 교육체제 때문에 몇 십 년을 공부해도 영어를 못한다면서, 자신의 영어수준을 합리화하는 사람도 봤다. 덴버 한인들이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서 살 수 있다면 이 곳에서도 모나코 왕국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대외적으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것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