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오늘도 어제의 그때가 되어, 널브러진 시간 속의 한 조각이 된다.
기억의 지속(스페인어: Persistencia de la Memoria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 1904∼1989)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특별히 시계의 모습이 특이한 형태로 그려져 있어, 녹아내리는 시계(Melting Clocks), 늘어진 시계(Droopy Clocks) 등으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작품은 파티가 끝난 후의 여름 밤을 그리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의 집 근처의 작은 해변이 마주 보고 있는 바위며 앙상한 올리브 나무 등,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을 그리겠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달리가 눈에 익은 풍경을 보며 구도를 잡고 있는데, 느닷없이 저녁 식사 때 나왔던 말랑말랑한 까망베르 치즈 접시가 떠오르는 것이다. 달리는 거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이 풍경을 나머지와 다르게 보이도록 그리는 것이었다.

      그림을 보면, 관 모양의 상자 위에 까망베르 치즈처럼 녹아서 늘어져 있는 시계가 걸쳐져 있다. 바닥에는 뚜껑이 열린 회중시계가 기형 머리의 목에 안장처럼 얹혀 있다.  죽어버린 나뭇가지에도 축 늘어진 시계가 널려 있다.  왼쪽에 보이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형태의 주황색 회중시계에는 개미떼가 들끓고 있다. 개미는 죽음과 부패한 것에 달라붙는다. 그 옆의 늘어진 시계에도 파리가 앉아 있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또 시간의 흐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근대의 상징으로서의 시계는 시간 흐름의 선형성을 단적으로 상징하는데, 달리는 멈춰진 시계는 선형적 시간의 붕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구성 요소들을 왜곡하여 소멸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반면 뒤의 배경은 매우 밝게 묘사되어 있어 아이러니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해안선의 황금색 절벽 풍경은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바닷가 마을인 피게레스라고 한다. 화가의 마음 속에 지속되는 고향의 기억이다. 항구에서 저무는 석양의 풍경을 보고 이 그림을 그린 달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오줌 누던 유아시절의 황홀경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의 붕괴를 선택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추면서, 과거의 황홀경을 기억으로 불러옴을 이 그림은 보여주는데, 이 작품이 <기억의 지속>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녹아내리는 듯한 형태의 시계는 달리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으며, 개미떼에 뒤덮인 시계는 죽음을 상징한다. 녹아내리는 듯한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한 느낌을 더한다.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는 존재로, 시간은 기억을 유지하는 매개가 된다. 이 작품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의 왜곡을 묘사한 것 같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달리는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 등지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난폭한 성격 때문에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인상파나 입체파 등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으며 꿈, 환상의 세계를 정밀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달리는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천재'였을 뿐 아니라, 잠수복 차림으로 강연을 하고, 삶은 가재를 머리에 얹은 채 기자 회견장에 나타나는 등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 '괴짜'였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시간의 편재성이 떠오른다. 집요하고도 정확한 시간의 총알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타내고 있는 시계는 눈 녹듯 녹고, 치즈처럼  부드러워지고, 물처럼 흘러내린다. 즉 이 작품은 시간을 초월하여 시간은 인간의 인식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아무리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시계 침의 움직임을 당영한 것으로 여기며 평생을 보내도, 시간은 결코 규칙적이지 않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간의 불규칙성과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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